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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30년전 잊지 못할 그해 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1.12일 12:18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

◇김철우(위해)
설날 아침이다.

밥상이 차려지자 가시집 식구들과 함께 빙 둘러앉았다.

맏처남이 술병을 들고 다니며 남자들에게는 흰술을, 녀자들에게는 포도술을 잔에 넘치게 부었다.

“올해 설은 오랜만에 매부네 네 식구가 천리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셔 함께 쇠니 대단히 감사하고 기쁩니다. 자, 여러분, 새해 건강하시고 하는 일들이 잘되기를 미리 축복하며 술잔을 비웁시다.” 처남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마을에 사는 막내처제 미혼부가 말했다.

“그런데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백년손님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 습관이 있는데, 이 집 사위는 딸을 잘 거둬주지 않아서 미움개를 샀는지 술안주에 꼬꼬댁이 오르질 않았는데도 형님은 의견이 없어요?”

“아니 인제 보니 정말 그렇네. 장모님, 이 사위가 뭘 잘못해서 닭 한마리 안 잡았습니까?”

“그런게 아니라 올해는 사위가 올줄 몰라서 닭을 기르지 않았소.”

“그럼 엄마, 장마당에도 파는 닭이 없어요?” 셋째처남이 고의로 엇먹였다.

“너네 엄마는 큰사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장인어른이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아니, 아무 말씀도 없다가 왜 당신까지 합세해서 내게만 덤터기를 씌워요?” 장모님이 장인을 밉살스레 째려보며 면박 주었다.

“매부, 나같으면 지금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말겠소.” 둘째처남이 붙는 불에 키질한다.

“난 아침도 아니 먹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겠으니 누구든지 절대 말리질 마오.” 나는 일어나서 신을 신는척했다.

“이 사람 사위, 조금만 참소, 내가 방법을 연구하겠으니. 사달은 네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싱겁게 삐치개질 하냐?” 장모님은 작은사위를 흘겨보며 책망했다. 그는 셋째아들의 가까운 친구여서 늘 이 집에 드나드는 까불이다.

장모님은 그길로 신을 신고 닭사양호인 나의 외사촌형님 집에 찾아가서 묵은 알낳이 닭을 사다가 내앞에 놓았다.

“어서 목을 빼오. 내가 당장 삶아줄테니.”

“큰처남, 내가 종래로 이런 일을 못해봐서… 좀 방조하우.” 나는 정말 아직까지 한번도 닭모가지를 비틀어본적이 없었다.

“안되우. 닭목은 꼭 사위가 비틀어야 하는 법이요.” 여럿이 고아댄다. 정말 난처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한테서 “동곽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인데 개미 한마리도 밟아 죽인적이 없다.

“이 사람아 뽈은 그리 잘 찬다는데 닭 한마리 못 죽여?” 장인이 골려준다.

“자 이 신을 신은 다음 오른발을 드오.” 맏처남이 닭모가지를 비튼 다음 내 발밑에 밀어넣었다.

일장 풍파는 지나가고 갓 삶아올린 닭고기에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서로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진종일 술상을 물리지 않고 노래와 춤판을 벌리는데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을 몰랐다.

저녁상을 물리고나자 방에선 청년들이 마작판을 벌리고 정주칸에선 화토놀이 한창이다.

나는 장인 장모님과 화토판에 끼여들어 돈따기를 했는데 재수가 안 좋아 돈을 수태 떼웠다.

장인 장모님 환갑상에 술을 부어올리는 필자 부부

“장모님, 난 집으로 돌아갈 차비까지 몽땅 떼웠으니 그리 알으소.”

“안되네. 우리가 뭐 억지로 빼앗아냈나? 예로부터 도박판에선 절대로 돈을 꾸어주지 않는 법이라오.” 장인이 정색해서 거절한다.

“그럼 이 눈길에 외손자들을 거느리고 걸어 천리길을 돌아가는수 밖에. 당신 각오하우.” 나는 안해에게 눈을 찔끔하며 우스개를 하였다.

이튿날 아침은 처삼촌집에서 챙겼다.

난 신세벽에 불리워갔다.

“‘동곽선생’이 닭모가질 비틀어야 하네.” 처삼촌댁이 곁에서 지켜보며 시키는 바람에 나는 사촌들의 방조로 숱한 땀을 흘리며 간신히 맡겨진 임무를 완성했으나 서툴러서 웃음거리를 자아냈다.

처삼촌은 주량이 어찌나 대단한지 나는 억지로 마시다보니 술이 많이 과했다. 하여 아침밥도 못 먹고 슬그머니 웃방으로 피해 반나절이나 죽은듯이 누워자다가 해질녘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저녁은 또 처고모님네가 차린단다. 술상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피할길 없었다.

“고모님, 인젠 닭모가지도 싫고 술은 한방울도 못하겠으니 제발 절 놓아주세요.” 나는 손이야 발이야 빌었지만 끝내 억지로 끌려갔다. 술상에서 반주검이 되여 사람들에게 업혀 가시집에 돌아와 이튿날 점심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러다간 안되겠소. 우리 래일은 어서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도망 가기요.” 저녁에 안해와 토론했다.

“여러해만에 어쩌다가 별러 놀러 왔는데 며칠 더 놀다 가야지.” 여럿이 말려서 끝내 주저앉아 날마다 고해를 치르는데 평생에 처음으로 고달픈 설을 쇠였다. 아마 그 며칠에 마신 술이 적게 쳐서 평생 마신 술의 절반은 될것 같았다.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체중이 열근이나 줄어들었으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수 있겠다. 그후로는 다시 한번도 가시집에 가서 설을 쇠지 못했다. 산다는게 이러저런 일로 도무지 기회를 잡을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 마을 사람들이 죄다 사처로 떠나가고 빈집들만 공공묘지에 나뒹구는 해골처럼 퀭한 눈으로 저 멀리 세월의 고개너머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다.

(*응모작품 접수 메일: thk9696@163.com)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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