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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테러가 앗아간 한 가족의 행복

[기타] | 발행시간: 2017.04.22일 15:27

테러 직전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남편과 기념사진을 찍은 박모씨. 남편의 얼굴은 가족 요청으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진 박씨 가족]

지난달 22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다리. 경북 영천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다 런던 구경에 나선 일흔 살 동갑내기 부부 박모씨와 남편 방모씨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녀들이 칠순 기념 효도관광으로 보내 준 유럽 패키지 여행.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 사이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쳤다. 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궁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그로부터 몇 분 후 부부의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다리 위 관광객들이 차량을 탄 테러범의 무자비한 돌진에 깔리고 튕겨져 나갔다. 박씨도 돌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가이드를 따라 50m 먼저 걸어가던 남편이 뛰어왔을 땐 박씨의 의식은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영국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 9층 중요외상병동.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박씨에게 막내딸 방영숙(38)씨가 밥을 미역국에 말아 떠 주고 있었다. “배가 고팠나 보네…. 나트륨이 부족하다고 해 짜게 했어, 엄마.”

박씨는 당시 병원으로 옮겨진 뒤 뇌압을 낮추기 위해 두개골 일부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지난 13일 인공뼈로 대체해 덮는 수술을 받으려 했으나 출혈이 발견돼 중단했다. 이날 재수술에 나섰지만 이번엔 나트륨과 마그네슘 수치 등이 낮아 연기됐다.

“엄마가 유독 런던에 가고 싶어 했어요. 아는 분이 사시는데 공기도 좋고 살기 좋다고 했다면서요.” 런던은 자식들이 돈을 모아 보내 준 효도관광의 첫 일정지였다. 70 평생 최고의 순간을 안겨 준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가족의 삶은 무너졌다. 울산에 살던 막내딸 방씨는 8세, 10세 두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런던으로 향했다. 여행가방은 미역과 북어 등 엄마가 좋아할 음식들로 채웠다.

한국 정부, 영국과 테러 후유증 보상 협상을

테러 당시 머리를 다쳐 런던의 병원 병상에 누워 있는 한국인 박모씨. [김성탁 기자]


테러 일주일 만에 의식이 돌아온 박씨는 뇌의 충격으로 왼편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눈으로 막내딸과 남편을 알아본다는 신호를 보냈다. 코와 입에 연결된 호스로 영양제를 투여하며 버티는 기간이 시작됐다. 박씨는 테러 후 2주가 지나자 왼편 손발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 헛것이 보이는 섬망증세가 심했다. 아기처럼 떼를 쓰고 저녁엔 고함까지 질렀다. 칠순의 나이에도 지역 봉사단체에서 고령의 독거노인을 돌봤던 박씨다.

딸 방씨는 현지 한인 교회와 자원봉사단체, 여행사가 도와줘 임시 거처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지만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영국 정부는 현지 치료비는 보장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대해선 아무런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테러는 천재지변과 마찬가지로 분류돼 보험의 보상도 받지 못한다. 방씨는 “뇌를 다쳤기 때문에 후유증이 있을 텐데 한국에서 치료와 간호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영천과 런던의 교회는 박씨를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박씨를 돕고 있는 전공수 목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영국은 교통사고가 나도 후유증에 대해 15년간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나라”라며 “관광을 왔다가 테러를 당해 뇌를 다친 피해자인 만큼 한국 외교부와 주영대사관이 영국 정부와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영대사관 관계자는 “영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으나 영국내 치료비 이상 지원하겠다는 얘기는 없는 상태”라며 “한국 정부 차원의 보상 등을 포함해 외교부가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러는 남의 얘기라고 여겨 왔던 가족들은 이역만리 병상에 누워 있는 박씨를 보며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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