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리혼녀 민족 년령 불문 돈 많은 사람 잘사는곳 나라로 시집간다
연변총각들이 왜 장가들기 어려운가? 조선족인구가 왜 마이나스성장을 보이는가? 그 리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건대 그 가운데서 첫번째 리유는 가난이다. 가난때문에 장가들기 힘들고 가난때문에 아이 키우기 힘들다.
어느 부모가 서발막대기 휘둘러도 거칠것 없이 가난한 총각에게 딸을 맡기겠는가.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새지 않은이상 어느 얼빠진 처녀가 빈털터리에게 일생을 맡기겠는가? 라는 로맨틱한 시대는 인젠 영영 지나갔다. 이런 사랑은 현실의 벽에 부딛쳐 산산쪼각났다. 결혼을 앞두고 이것저것 수판알을 튕기는것이 바로 현실이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어느새 뒤문으로 슬그머니 나간다. 승인하지 않으려 해도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왕청현혼인관리처의 집계에 따르면 2003년 1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이 현의 230명 조선족녀성들이 섭외결혼하여 외국으로 나갔다. 이들가운데 물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 녀성들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이들은 바로 돈, 그 돈때문이란다. 자기하나의 희생으로 돈 벌어 가난에 찌들어온 식구들을 도와주려는 효성의 마음으로 사랑없는 결혼을 한것이다. 더욱 놀라운것은 2003년 1월부터 2004년3월까지 이 현의 477쌍밖에 안되는 조선족남녀가 결혼등기를 하였는데 리혼수는 413쌍이나 달해 리혼률이 85%나 점했다. 그야말로 놀랍고도 믿을수 없는 수자이다. 이런 판에 어데서 애가 생겨나올가?
2000년까지만도 왕청현의 조선족인구가 8만 5000여명이였는데 지금은 7만 4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왕청현에서 제일 큰 조선족소학교인 제2실험소학교와 제3소학교가 학생원이 없어 2001년 8월에 합병하였다. 합병당시 학생수가 1500여명으로 규모가 꽤 컸지만 2년 반이 지난 오늘 950명밖에 남지 않았다. 분석에 따르면 향후 해마다 계속 200여명 줄어들 추세란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그런데 녀자가 없으니 어린애를 생산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고….지금 적지 않은 처녀들이나 리혼녀들은 민족이나 년령의 차이는 관계없이 잘사는 사람 잘사는곳, 잘사는 나라로 시집가는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돈으로 사랑을 흥정하고 돈에 메여 가정을 버리는 녀인들의 도덕성은 질책을 받아야 하지만….그녀들을 나무람하기전에 먼저 큰일에는 엄두도 못내고 작은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가락 하나 까딱않고 부모에게 얹혀 사는, 녀편에게 붙어사는 그런 남자들을 나무라야겠다. 2004년 1월호에 실린 박초란양 소설에서 쓴것처럼 지금 연변에는 와 같은 남자들이 많아지고있다. 그런것 같다.
기실 부지런히 일하여 생활을 알른알른 윤택나게 한다면 는 언제든지 날아든다. 왕청진 서위자촌의 2명 조선족총각은 2002년도에 강소성 련운항의 한 한국독자기업에서 일하면서 당지의 한족처녀를 안해로 맞아들이였다. 조선족총각의 안해로 된 그녀들은 면서 자랑스러워하였다. 그들은 지금 깨알이 쏟아지는 신혼생활에 빠져있다.
그렇다, (괴테)
사나이들이여, 우리 기죽지말고 게으르지 말고 가슴을 쫙 펴자. 힘을 내자! 농민수입증대를 위한 중앙1호문건 출범은 우리에게 잘살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기회를 다잡고 부지런히 삶을 가꿔 부자가 된다면 가 현실로 될것이다.
최명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