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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CSI “완전범죄는 없다”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4.01.18일 20:55
한국판 CSI, 과학수사의 모든 것



‘완전범죄와의 전쟁’은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에만 의지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첨단과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범죄의 흔적을 찾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수사관들이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정밀조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Crime Does Not Pay(범죄는 득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청와대에서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어 문구를 인용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강조하며 치안 강화를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주민등록시스템에 저장된 지문 4억여 개의 해상도와 선명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기초로 살인 강도 강간 등 중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을 다시 검색했고 미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다. 2000년 10월 발생했던 서울 구로구 커피숍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 고모 씨(41)를 공소시효 2년이 남은 지난해 5월 검거한 것도 과학수사로 이룬 개가였다.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명제를 믿는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팀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아주 작은 단서까지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한국판 CSI’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 온 힘 다해 움켜쥔 손바닥, 그 안에 사건 풀 열쇠가… ▼


속옷 벗겨졌지만 정액 검출안돼… 주인없는 담배꽁초에 혼선 가중

시신 손에서 나온 티셔츠 섬유… 우연히 묻은걸로 보기엔 많은 양

‘반쪽 증거’ 수사에 반전이…

이문철(가명·33) 씨가 눈을 감았다.

“사건 발생 당일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경찰의 의심이 이 씨를 향했다. 이 씨는 표정 없는 답을 내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징검다리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9월 22일 오후 11시경. 그날 이 씨의 아내가 죽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상복합아파트 ○○○호.

잔뜩 부은 아내의 얼굴에는 처참함만 남았다. 팬티는 발목에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브래지어는 벗겨진 채였다. 세 딸에게 물리던 젖가슴에 시퍼런 멍이 몇 다발씩 피어 있었다. 아내의 부드러웠던 살결은 부러진 갈비뼈로 구겨졌다. 사이사이 죽음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패가 진행된 아내의 몸속에는 가스가 찼고 높아진 압력 탓에 입가와 코밑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아내의 눈동자는 고집스럽게 벽 쪽을 향했다.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 닿은 곳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된 딸들의 돌 사진과 결혼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 6년차. 남편을 만나고 세 딸을 낳기까지 보낸 많은 시간이 사진에 담겨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은 한 줄로 요약됐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 심한 폭행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 골절 및 간 췌장 등 장기 파열, 강도 및 성폭행 시도, 심한 폭행.’

평온했던 밤,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건 23일 오후 1시 반. “이 사람아, 서둘러 집으로 가보게.” 일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집으로 달려왔다. 전날 밤 첫째 딸 유영이(가명)를 데리고 본가에 가 있던 참이었다. 30분 거리의 집으로 급히 차를 몰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둘째 아영이(가명·3)와 셋째 수영이(가명·1)가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도착했다. 한낮이었지만 주검이 놓인 방 안은 서늘했다. 한기(寒氣)의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두 딸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이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이 아내의 부재(不在)를 예감케 했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기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안은 현실로 바뀌었다.

거실에는 벌거벗겨진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여보….” 딱딱하게 굳은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품에 안은 두 딸의 체온이 집 안 유일한 온기(溫氣)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 목덜미에 소름이 스쳤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관에 ‘출입금지 POLICE LINE 수사 중’이란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야 이 씨는 아내의 죽음을 실감했고, 오열했다.

아내의 다리 쪽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 양 젖가슴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음모와 머리카락이 시신의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흘러내린 오줌이 이불에 흥건했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고 컴퓨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주방에서 또 다른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낯선 남자의 주민등록증도 나왔다. 남편 이 씨는 “아내에게 빚을…, 빚을 진 남자가 잠시 맡겨둔 신분증”이라고 했다. 남편은 온전히 한 문장을 잇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내의 몸에 온도계가 꽂아졌다. 직장온도 33.4도, 12시간 전 사망했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즈음이다.

‘반쪽짜리 흔적’만 곳곳에 남았다

사건 현장에 남은 흔적은 범인의 목적을 드러내 보이기 마련이다. 단순절도, 강도, 강간, 원한에 의한 살인 등 범인이 남긴 흔적은 범행의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반쪽짜리 흔적이 너무 많다.” 현장을 살핀 고양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이 말했다. 집 안 곳곳에 남은 수많은 흔적은 목적이 빠진 ‘반쪽짜리’였다. 속옷이 벗겨진 아내의 몸에 정액은 없었다. 방 안을 뒤진 흔적은 있지만 귀중품은 그대로였다. 화장대와 이불 밑처럼 꼭 뒤져야 할 곳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주민등록증의 주인은 범행 추정 시간 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담배꽁초의 주인도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제3자의 지문이나 족적(足跡)도 없었다. 수거된 음모는 모두 남편과 아내의 것이었다. 목적이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흔적은 수사를 안갯속으로 내몰았다.

아내의 젖가슴에서 발견된 타액의 주인은 둘째 아영이와 막내 수영이었다. 유일하지만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격자. “너희가 배가 고파서 엄마 브래지어를 벗겨 젖도 빨고 그런 거니? 너희가 속옷을 벗겼어?” 목격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2개의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남성 없음.’

담배꽁초에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당일 집에 택배를 배달했던 배달원, 아내에게 빚을 지고 주민등록증을 맡긴 남성,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 그리고 남편까지 담배꽁초 유전자(DNA)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 용의자가 없었다. 주인 없는 담배꽁초는 단서가 되지 못했다. 아내의 통화 기록도, 용의자들의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경찰은 범행시간 전후로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도 용의자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전날 밤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 남편과 딸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면 속 남편 이 씨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첫째 유영이가 아빠와 눈을 맞췄다.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는 의미를 읽은 유영이도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9월 22일 오후 11시 58분. 폐쇄회로 화면의 디지털 숫자 위로 겹쳐진 유영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현관 앞 모습이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유영이의 웃음은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보이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

‘변사자의 손바닥에서 채취한 테이프에서 남편이 당일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구성 섬유와 같은 보라색 계열 섬유물 발견. 동일한 두께 꼬임 및 성분 유사한 섬유가 식별됨.’

사건 발생 8일 뒤인 10월 1일. 아내의 손과 목에서 채취한 미세증거물 분석 결과가 고양경찰서에 도착했다. 사망 직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이 남편의 반팔 티셔츠라는 뜻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손에 남은 섬유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가 온 힘을 다해 쥐었을 때라야 남는 양이었다.

“그날 우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애들과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이들을 안방에 먼저 재웠어요. 함께 TV를 보다가 아내가 잔다고 해서 큰 애만 깨워서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내와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작은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곧바로 화해했어요. 당일 아내의 휴대전화로 보낸 ‘앞으로 더 잘 지내자’는 문자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떤 프로를 보셨죠?”

“개그콘서트를 봤습니다.”

“당일 보신 개그콘서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던 CCTV에 아내의 모습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편이 손을 흔들었던 곳, 아이가 아빠를 따라 손을 흔들었던 방향.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미소가 아닌, 눈조차 감지 못한 아내의 시신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경찰이 짐작한 ‘아내의 배웅’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뒤따라 발견된 또 하나의 CCTV 화면.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경찰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오열하는 남편을 두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내보냈다. 아내의 옆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에 타자 금세 태연해졌다. 언제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무심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머리를 만지고 이를 내보이며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사 조사실. 남편이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았다. “당신이 부인을 죽였습니까?” 남편의 호흡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애써 가다듬은 호흡이 떨렸다. “아내를 때려서 죽게 한 게 당신입니까?” 그가 경찰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짓말탐지기의 기록계 파장이 이 씨의 맥박과 호흡을 따라 요동쳤다. “담배꽁초는 아내를 죽이기로 계획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죠?” 경찰의 마지막 질문에 남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상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길 3년째. 남편은 완전범죄를 계획했다.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척한 것도,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것도 모두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셋째를 엄마의 시신과 함께 두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현장을 훼손시켜 주길 바랐다. 자식들이 직접 죽은 엄마의 시신을 더럽히길 기대했다.

경찰은 “남편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꼭 범인을 잡아 달라고 울며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행을 실토한 날, 남편은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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