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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속에 사는 행복한 녀자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7.02.03일 09:43
“살구꽃소녀” 김경자, 일본작곡가와 합작 이루기까지

  (흑룡강신문=하얼빈) 1980년대 중반에 연변의 많은 소녀들에게 “살구나무꿈”을 안겨준 이가 있다. 텔레비죤 화면을 통하여 전해지는 청아한 노래소리와 맑은 미소, 깜찍한 손동작과 몸놀림이 당시 흑백텔레비죤의 전파를 초월하여 무지개 빛으로 그들에게 다가섰다. 그가 바로 1980년대 연변의 아이돌 가수였던 김경자씨이다.

  일본에서도 가수생활하는 김경자

  일전에 필자는 도꾜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맑은 아침이면 후지산을 한눈에 담는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는 그녀의 집이였다.

  연변대학 조문학부 시절의 애티 나던 모습이 어언 성숙된 이미지가 흐르는 사업가의 모습으로 바뀌였어도 맑은 미소만은 여전하였다. 대학교 선후배사이, 하지만 거의 초면에 가까운지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쩔수 없었다.

  문득 낮고 다정한 노래소리가 귀가를 스치면서 긴장을 풀어 주었다. “아 목소리도 그대로이시네...” 습관적으로 흘러 나온 노래라고 한다.

  1965년 연길시에서 태여난 김경자씨는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가 철 들기전인 유치원시절부터 노래반장을 도맡아 했다. 친척일가의 잔치모임에 가면 항상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칭찬을 받군 하였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소학교, 중학교 때에 학교 선전대에서 주로 춤을 추었다는 그녀, 연변인민방송국 소년합창단에 다니면서도 자기가 가수로 활약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한다.

  아동문학작가를 꿈꾸던 그녀는 1982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역시 노래와는 인연을 끊을수 없었던 그녀는 대학교 가요제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였고 “노래 잘하는 경자”로 학교에서 소문이 나게 되였다. 아침 눈을 떠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입에서 노래가 떠날 새가 없었다는 그녀이다.

  그러던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가사 “소녀의 사랑은”을 쓴 그녀는 예술학교 작곡반의 친구한테 부탁하여 곡을 붙였다. 거의 완성된 작품을 들고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를 찾았다. 그때 음악부에 계셨던 작곡가 고창모 선생님과 작사가 석화 선생님이 당찬 그녀를 맞아 주셨다.

  들고간 작품과는 상관없이 두 분은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한국가요가 한창 류행되던 시기였던지라 한국노래 “가지 마오”를 사무실 한복판에서 불렀다.

  한달이 좀 지난후에 고창모 선생님이 가요“살구나무”를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 데뷰가 결정된것이다.

  이렇게 방송전파를 타고 노래 “살구나무”가 전 연변에 퍼졌고 또 텔레비죤 화면에서 김경자의 표현력이 화제를 낳았다.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풍격의 아이돌가수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점차 김경자란 이름이 연변대학밖에서도 널리 알려졌고 연변의 여러 작곡가 선생님들이 그녀의 목소리와 풍격에 맞는 곡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하여 “돌다리”, “산향길”, “물소리 새소리 ” 등 김경자의 노래가 한때 열풍을 일구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국가 1급 작곡가이신 고창모 선생님은 “아무튼 경자는 모든 노래를 재미있게 불렀다. 귀엽고 발랄한 그만의 풍격은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발성법이나 전문지식을 배우지 않은 형태에서의 김경자의 가창력은 연변에서 오래동안 인정할만한 위치를 차지하였다.”라는 평가를 주셨다.

  김경자씨의 인생에 노래가 동반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연길시텔레비죤방송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제2의 직업으로 계속 노래를 불렀던 그녀는 1991년 노래로 인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녀에게 당시 국제고려학회 때문에 연길에 왔던 재일교포인 남편이 첫눈에 반해버렸던것이다.

  1992년에 결혼하여 일본에 온 김경자씨는 딸 애미를 낳아 키우면서 가수생활을 중단하였다. 화려한 무대를 떠났어도 노래만은 놓지 않은 그녀는 재일코리안 “어머니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고 전일본 녀성 노래자랑에서 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일본의 엔카(演歌)를 접촉하게 된 그녀는 1980년대 한국가요에서 계발을 받고 자기만의 창법을 만들어낸것처럼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남다른 감성과 달콤한 목소리, 일본어 가사에 대한 충분한 리해력을 무기로 엔카를 자기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사로 적으면서 컴백을 꿈꾸어 왔던 김경자씨는 드디어 2009년에 마음으로 쓴 가사 “고향련가”,“사계절거리”,“소녀와 꽃 ”등 창작곡을 위주로 앨범 “살구나무”를 고향에서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자기가 쓴 가사를 일본곡에 리메이크한 “아름다운 약속”, 딸 애미양이 쓴 가사를 연변의 곡에 리메이크한 “평화의 잔치” 등으로 두번째 앨범 “사계절과 그리움”을 출판하였다.

  활발하고 귀여운 가수로부터 엔카와 트로트의 형식을 결합시킨 폭 넓고 성숙된 가수로 다시 가요계에 돌아 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도꾜 기치죠지(吉祥寺), 오사카 등 지역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한편 해마다 펼쳐지는 도꾜 하치오지(八王子)시의 전통행사인 본오도리(盆踊り)대회의 초청가수로 “청장고원”, “아리랑처녀” 등 중국, 한국, 일본 3개 국의 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수만명의 관중이 모이는 로천무대에서 “청장고원”을 마음껏 부르고나면 속이 후련해진다며 일본인들에게 중국노래와 우리 민족의 노래를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라고 감개무량해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노래풍격에 반한 일본의 유명한 작곡가 다카세하루히코(たかせはるひこ)선생이 김경자씨처럼 정이 넘치게 노래 부르는 가수는 처음이라며 합작을 의뢰해왔다.

  그러던 2016년, 다카세하루히코선생이 작곡한 “당신과 마음따라(あなたと心のままに)” 등 4곡의 일본가요로 일본에서의 첫 김경자 싱글앨범 두개가 동시에 출판되였다.

  일본인 작곡가가 완전한 김경자씨의 노래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한국정서를 담았다는 이 노래는 그녀본인의 영상과 함께 노래방에서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일본카라오케 죠이사운드에 올랐다.

  항상 가사에 먼저 빠진다는 그녀,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가 늘 고민하는 그녀에게 처음에는 다가서기 쑥스러웠던 가사였지만 “새로운 김경자를 만들라, 순수한 이미지의 김경자로부터 성숙된 새 령역을 개척하라”는 작곡가 선생님의 건의에 용기와 힘을 입었다는 노래 “당신과 마음 따라”이다.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무엇인지 그녀에게 물었다. “우선 엄마의 태몽이야기에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밭에서 일하는데 해님이 ‘노들강변’노래를 간들어지게 불렀다. 그러더니 양산을 천천히 내려주었는데 엄마가 얼른 그것을 받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태몽이야기,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가 자연의 소리인 것 같다는 그녀이다.

  다음은 다정한 남편은 물론 사랑스런 딸애의 존재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부모의 의지대로 중학교까지 꿋꿋이 민족학교를 다녀준 딸 애미, 아빠의 재외 연구때문에 소학교 6학년을 한국에서 다녀야 했던 1년간, 재일 코리안이라는 리유로 소외의 아픔을 겪었던 애미, 그게 언제였더냐 싶이 오늘 메이지약과대학(明治薬科大学) 약학계 대학생으로 씩씩하게 자라준 딸 애미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애미양이 15살에 쓴 가사에 사랑을 몰부어 부른 엄마의 노래여서 들을 때마다 울먹임을 걷잡을수 없는“평화의 잔치”…

  어둠이 지워지고 밝아오는 새날에

  비둘기 날개에 해살이 실려오네……

  전쟁도 끝나고 재해도 사라진 땅

  녀인들은 춤추고 새들은 노래하네……

  아, 은혜로운 대지에서

  손에 손잡는 사람들의 평화의 잔치…

  김경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른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한 녀자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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