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과 잠조차 이루기 힘든 열대야로 인해 에어컨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대형 유통업체의 에어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4배 가까이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삼성, LG 등의 주요 에어컨 생산업체에서는 ‘공장을 풀가동해도 물량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에 속수무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에어컨 수요가 가장 많은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에어컨 기업들이 하나 둘씩 철수하고 있다.
중국 삼성 에어컨은 지난 2000년, 쑤저우(苏州) 지역에 처음 생산기지를 설립하여 2002년에는 연간 판매량 16만 대를 기록했으며, 2005년 판매량은 50만 대로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업계로부터 삼성에어컨의 디자인 트렌드와 판매실적의 높은 성장에 대해 호평을 받으며 중국 시장은 벌써부터 잔치 분위기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중국 시장 점유율이 2.68%, 2008년에는 2.45%에 그쳤고, 2009년 궈메이(国美), 쑤닝(苏宁) 등 중국 대표 전자유통업체에서는 판매 부진을 이유로 삼성 에어컨의 제품 입점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 2012년 6월 삼성은 중국 에어컨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삼성과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LG 역시 중국 에어컨 시장에서만큼은 로컬기업들의 치솟는 점유율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중국시장에서의 적자로 인해 내부조정을 거쳐 현재 이미 철수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성 루머가 퍼질 정도로 LG 역시 중국 시장 내 실적이 열악한 형편이다.
한국 기업뿐 아니라 일본 브랜드인 다이킨(DAIKIN), 히타치(HITACHI) 역시 매우 저조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 에어컨시장 점유율 데이터에서, 중국 로컬기업들은 두 자리 수의 점유율을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 반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의 점유율은 지속 하락세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년 간 글로벌 에어컨 브랜드의 점유율은 50% 이상 감소하면서 기업들이 잇따라 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시장에서 기(氣)조차 펴지 못하고 있는 글로벌 외자기업에 반해 거리전자(格力, GREE)를 포함한 로컬기업들은 오히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에어컨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거리전자의 상반기 에어컨 판매 매출액은 483억 3백만 위안(한화 약 8조 5,815억 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0.04%의 성장률을 보였고, 순이익은 28억 7천 2백 위안(한화 약 5,102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0.08%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중국 로컬 기업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 에어컨 시장의 전체적인 환경 악화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011년 하반기부터 중국 가전업계에는 불황이란 한파가 들이닥쳤다. 에어컨 업계도 마찬가지로 출하량이 연속 하락하면서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4분기 10, 11, 12월 각각 판매량이 70만 대, 60만 대, 50만 대에 그치면서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냈다.
올 상반기 하이얼과 거리 등 중국 업체들은 소폭의 실적 상승을 나타내며 판매량이 예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해외업체의 판매실적은 여전히 곤두박질 쳤다.
계속되는 침체에 로컬기업은 저가전략과 주요 판매 타깃을 대도시에서 3, 4선급 도시로 바꾸는 등의 노력으로 판매량 회복에 나섰고, 이에 외자기업은 대도시 판매는 물론이고 3, 4선 도시에서까지 로컬 업체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며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별 다른 기능 차이가 없다면 이왕이면 저렴한 제품을 선택하겠다는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중국 내 에어컨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거리전자 CEO 동밍주(董明珠)는 힘든 상황일 수록 차별화 된 기업경쟁력으로 글로벌 가전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언급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또한 ‘2012년 1,000억 위안(한화 약 17조 7,660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할 것이 유력시 되고 있으며, 5년 뒤인 2017년에는 2,000억 위안(한화 약 35조 8천억 원)의 매출액을 거뜬히 자신할 수 있을 것’이라 밝히며 중국 에어컨 시장이 세계를 휘어잡을 것임을 암시했다.
가격경쟁력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로컬 기업들은 앞으로 가격적 경쟁력뿐 아니라 이제 기술적 보완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다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대 소비 시장이란 이점을 거머쥔 중국 업체들에 밀려 현지 시장 전면 철수를 선언한 글로벌 기업들의 상황은 비단 에어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에어컨은 단지 시작일뿐이다.
Posted by: 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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