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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 머리 왜 자르셨어요? 개 아까워!"

[기타] | 발행시간: 2015.02.03일 14:05
[공모- 자존심 때문에] 2년차 장발남의 '장부심(장발+자부심)'

[오마이뉴스 박민규 기자]

"그... 머리 긴 복학생 오빠?"

스물다섯 살 때였다.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길러보고 싶었다. 미용실에 가지 않은 지 몇 달이 되자, 여기저기서 "왜 그러느냐"고 많이들 물어왔다. 대학생 때가 아니면 언제 길러보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주변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부모님은 아들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유, 꼴 보기 싫어. 그놈의 머리 좀 잘라라!"

맙소사.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십여 년이 훌쩍 지났건만,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 머리 긴 남자 하나 받아들일 준비도 안 돼 있다는 건가! 오기가 생겼다. 수염까지 기르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의 핍박이 시작됐다.

▲ '장발남'들의 자존심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사진. 친구들은 수차례에 걸쳐 내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이발을 권유했다.

ⓒ 개그맨 박휘순 씨 트위터 갈무리

언제부턴가 이건 자존심을 건 싸움이 됐다. 개성이라고는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스포츠머리'라는 이름의 파시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마음으로 버텼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바리캉(이발기)'의 서슬 퍼런 칼날에 억압받아 온 날들을 되새겼다. 한술 더 뜨자면 구한말 단발령에 반대하며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쳤던 조상님들까지 떠올렸다.

이른바 '털존심'을 지킬 대외적 명분(?)을 찾는 일은 쉬웠다. 대학생활 내내 록 음악과 연극에 빠져 살았다. 다가오는 공연 또는 배역 때문에 머리와 수염을 기르는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다.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남자'를 연기하기도 했다. 지인에 의하면 나는 그때부터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 사이에서 '그… 머리 긴 복학생 오빠'로 통하기 시작했다. (저 줄임표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두발 규제는 분명 폐지됐건만!

'장발남' 2년 차에 접어들며 대학교 4학년이 됐다. 문제가 생겼다. 사범대생인 나는 졸업하기 위해 '학교현장실습(교생실습)'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만 했다. 걱정과 고민이 시작됐다. 과연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알찬 실습 기간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게 아니다. 부끄럽지만, 그때 내 고민은 하나였다.

"어떡하지, 머리 잘라야 하나?"

두어 달 전 파마한 머리가 나름대로 보기 좋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 열에 서넛 정도는 내게 예술가 느낌이 난다는 둥, 긴 머리도 나름 잘 어울린다는 둥 칭찬을 해주던 참이었다. 한창 '장부심(장발+자부심)'에 취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써 기른 머리를 자르기는 아까웠다. 혼자서 며칠 동안이나 고민했다.

"학생들 두발 규제도 폐지됐는데, 교생 선생님의 두발을 규제한다니 말도 안 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뜻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 단정한 모습으로 서야 해. 장발이라니 말도 안 되지."

생각하니 이내 풀이 죽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를 찾아갔다. 실습 시작 일주일 전이었다. 실습할 학교는 서울의 한 사립 고등학교로, 내가 졸업한 학교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근방에서 가장 엄격한 두발규정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덕분에 나는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머리를 길러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당신께서 가르친 제자가 어느덧 대학 졸업반이 돼 교생실습을 하러 오다니 신기하시다면서, 별 볼일 없는 제자를 어여삐 봐 주셨다. 무척 감사했다.

옛 추억에 잠겨 은사님들과 한참을 앉아 있었다. 다음 주에 출근해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다고 말씀드린 뒤 일어나려는데, 인자하게 웃으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다음 주까지 자르고 와야지?"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바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 길로 미용실로 달려가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랐다. 그렇게 아까워하던 머리인데, 막상 퍽퍽 잘려나가는 모습을 봐도 별 느낌이 없었다. 찰랑찰랑한 장발을 완성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온갖 외압(?)에 굴하지 않고 지켜온 자존심이 무너지는 느낌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대신, 매번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나서야 미용실로 향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구레나룻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미용실 아주머니께 신신당부하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 내가 즐거웠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오랜만에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4주 뒤, 나는 훌륭한 은사님들 덕분에 실습을 무사히 마쳤다. 실습 마지막 날 재미난 일을 겪었다. 두발규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목이 말랐다. 머리를 볶고, 물들이고, 지금보다 더 기르고 싶어 했다. 한창 머리 길이에 예민한 열여덟 살짜리들을 모아 놓고 옛날 사진을 보여 줬다.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다.

"헐!!!! 쌤 대박!!!! 머리 왜 자르셨어요!? 개 아까워!"

▲ "왜 아깝게 머리를 자르셨냐"며 길길이 날뛰던(?) 우리 반 아이가 직접 그려 내게 선물한 그림. 지금 보니 저 사진, 그나마 짧게 잘랐을 때다.

ⓒ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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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빈이랑 박휘순 동갑이란 말이지...박휘순도 귀엽구먼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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