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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무와 반세기 인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5.07일 16:04
국가 2급 안무가 한동국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일전에 기자는 40여년간 안무가로 있으면서 농악무창작에 몰입해왔던 국가 2급 안무가 한동국선생을 찾아갔다. 그는 문화대혁명이후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서 농악무를 보급하고 발전시켜온 기여자의 한 사람으로 세인이 긍정하는 연예인이기도 하다.

  1949년 왕청현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한동국선생은 9살이 되던 해인가, 연변대표팀의 일원으로 북경에서 펼쳐지는 전국소수민족문예콩클에 참가하는 둘째누나의 영향을 받아 무용에 호기심을 갖게 되였다. 1963년, 초중을 졸업한 그는 왕청현 왕청진 대천대대에서 구락부활동을 하면서 현문공단의 남일권, 김옥순으로부터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때로부터 무용과 끊기지 않은 인연을 맺게 되였다. 1965년, 한동국선생은 연변예술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면서 리금순, 최호우 등 선생으로부터 전문무용을 전수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웃학년 선배들이 연변 제1대 농악무 전문가인 하태일선생으로부터 농악무를 배우는것을 보고 농악무에 흠뻑 빠져 시간만 되면 창너머로 '훔쳐서' 배웠고 평소에는 김영록, 정영문 등 선배들과 함께 농악무를 열심히 련마했다. 1969년 연변예술학교에서 졸업한후 그는 석현종이공장 문예선전대에 배치받았다. 1971년 1월 참군하여 부대문예병으로 활약하다가 제대한후 왕청현 서위자향에 하향했다. 그때 그는 하향해온 하태일선생의 제자 박종규로부터 농악무를 전수받았다.어느 하루, 친구들과 모임장소에서 누군가 알루미늄그릇을 머리에 쓰고 돌리는 모습을 보더니 한동국선생은 알루미늄그릇으로 상모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각이였던 왕청현림업국문공단의 안무가인 리왈수선생과 함께 알루미늄그릇으로 된 상모를 제작해냈고 이를 보급시켰다고 한동국선생은 당시 상황을 회억했다.

  1978년 왕청현문화관으로 전근된 한동국선생은 전국소수민족문예콩클에 즈음하여 소집된 전 주 무용창작모임에 참가했고 당시 창작조를 책임졌던 주문화국 방죽송과장이 “농악무는 반드시 새로운 돌파를 가져와야 북경으로 갈수 있다”는 요구에 따라 룡정시문공단의 김기운과 함께 “희열”을 주제로 농악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변가무단에서 그번 콩클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희열”은 아쉽게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후 한동국선생은 문화관의 배치에 따라 농악무에 력사가 깊은 서위자향으로 가 함께 하향했던 리주형선생의 도움과 지지로 구상중인 “희열”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6~7메터밖에 안되는 무대에서 공연하려니 공간활용이 필요됐다.

그들은 중상모, 소고수와 소상모가 결합된 장면을 노리던중 중상모물채를 까치발동작과 도도리로 꿰질러 지나가는 동작이 나왔고 30미터되는 패랭이로 3, 4겹의 O형 형상을 만들어가는 동작도 고안해냈다. 또한 무용의 고조부분에서 대상모가 등장하면서 무대는 대상모가 한 사람이 독차지하게 되였다. 그러던 와중에 한동국선생은 대상모수 김만중이 돌리는 3, 4겹의 O형 패랭이속에 소상모수 량호범이 갖혀있는 모습을 보고서 소상모가 대상모의 패랭이속을 꿰뚤어 들어가는 동작을 통해 대상모와 소상모가 완벽한 호흡을 이룬 무대를 구성해 이어지는 박수갈채를 받아안았다. 그밖에도 당시 서위자에서는 대상모가 결핍한 상황에서 녀대상모수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옥이라 부르는 녀자애에게 배워줬다. 당시 이름만 부르다보니 성씨가 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동국선생이 말했다.

  1982년, 한동국선생은 현농촌문화콩클에 참가하기 위해 “희열”을 새롭게 수정했다. 그러나 재래의 농악무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농경의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새로운 발전을 고민하던중 하늘에서 별찌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전에 상모에 반디불을 달아서 돌렸다는 얘기를 들어본적도 있었는지라 반디불 대신 전등불을 달아서 돌리면 어떨가”하는 생각이 머리에 번쩍 들었다. 그렇게 희열은 “위성이 하늘로 날아오르네”로 탈바꿈하면서 콩클에서 우수종목으로 당선되였다.

  같은 해, 자치주 창립 30돐을 맞으면서 전 주 농촌문예콩클이 소집되였다. 한동국선생은 콩클에 참가하기 위해 무용 “명절의 밤”을 창작했다. 콩클에 참가하는 인원수가 제한되다보니 무용구성에 신경써야 했다. 그 해결책으로 대상모, 중상모의 물채를 개량하여 한사람이 순식간에 소상모, 중상모, 대상모를 돌릴수 있는 이음식물채를 제작하는것이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완수됐고 내용, 형식, 동작, 구도, 소도구, 음악 등 면에서 새로운 돌파를 가져온 무용 “명절의 밤”은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6년 왕청현문공단에서 업무단장, 당지부서기로 있던 한동국은 전국민간음악무용콩클에 참가할 준비로 3인무 “환락”을 창작했다. 당시 농민이였던 중상모수 김명춘, 전문장고무용수 지정선, 김춘자가 무용수로 선발되였다. 훈련 도중에서 김명춘의 키작은 결점을 미봉하기 위해 재래의 소상모, 중상모의 돌림법으로부터 소상모의 발끝세우기, 중상모의 방향바꾸기 돌림법을 새롭게 개발하기도 했다. 무용 “환락”은 참신한 형태로 콩클에서 호평을 받았고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도 취재했으며 김명춘도 길림성 왕청현 백초구진 길상대대의 한 농민 중상모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동국선생은 오늘날 농악무가 세계급 무형문화재로 등재되면서 보호받고 김명춘은 국가급 전승인으로 농악무를 계승, 발전시키고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단다. 근 반세기를 무용과 함께, 농악무와 동반해왔고 연변특색의 농악무를 고집하면서 창작과 개량을 시도해왔던 한동국선생은 남은 여생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이 깃들어있는 농악무의 발전에 자기의 힘을 보태고싶다고 말했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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