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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양성사업을 종신당원의 평생일로 선택하였습니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11.28일 08:25
도문시 새세대관심사업 “특수기여상”수상자 정운선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11월 21일, 필자는 도문시 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창호상무부주임의 소개로 도문시 석현진 13거민위원회에 거주하는 정운선(鄭云仙, 93세)할머니를 만나보았다.

정운선할머니는 도문시 새세대관심사업“특수기여상”수상자이다.

아침 일찍 취재길에 나선 필자의 생각이다.

ㅡ 93세 고령에 사회활동에 참가하는 그의 의식상태가 부정상이 아닐가?

ㅡ 보통 상식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고령할머니의 깊이있는 취재가 가능할가?

그런데 정작 만나고 보니 필자의 생각은 오판이였다.

휘 ㅡ 익, 집안을 둘러보니 97세의 바깥로인, 63세인 셋째아들, 세식구 평균 년령이 84.4세나 된다는 정할머니네 집살림은 그렇게도 정결했고 만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운 나지막한 할머니의 행동거지 역시 민첩했다.

이뿐만이 아니였다.년세에 걸맞지 않게 젊어 보이는 할머니는 눈귀가 밝았고 기억이 좋기로 출생지외에도 결혼, 취직, 입당 년월일을 그대로 외웠으며 필자의 채록에 지명이나 성명이 틀릴가봐 걱정이 되는듯 가끔씩 조선말에 한글(漢字)을 보충하기도 하였다.

“중국 땅에 본가 일가친척이 한 분도 없습니다”

정할머니는 1925년 5월 19일에 조선 함경남도 갑산군 회림면에서 출생했으며 소학교를 졸업했다.

정운선씨가 20세 때 중국 길림성 왕청현 소왕청림장에서 검측원으로 일한다는 서정빈씨가 옆사람들의 소개를 받고 혼자 몸으로 운선씨댁을 찾아가 청혼을 하였더니 사위감이 좋았던지 신랑감이 좋았던지 아무튼 운선씨는 4년 년상인 중국에서 온 정빈씨와 결혼, 조선서 낳은 아들을 등에 업고 중국에 오니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이 투항했고 룡정에 피난갔던 남편이 형님을 따라 석현으로 이사했었다.

“내가 조선서 결혼하고 남편따라 혼자서 중국에 왔기에 중국에 나의 본가 친척이 한명도 없습니다”

정할머니는 당년을 그리며 범상치 않은 인생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주덕해주장의 선물을 받던 날이 어제 같은데…”

그때 시절에 정운선씨만큼 문화수준이 높은 사람이 그리 흔치 않았다.

운선씨는 석현에 오자바람으로 부녀조직에 가입하여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참가하다가 석현 종업원합작사의 림시공으로 채용되였다가 정식공으로 넘고 힘든 일, 궂은일을 가르지 않고 사업에서 열과 성의를 다 바쳤다.

그는 석현종업원합작사 문시부 주임부터 시작하여 경리, 당지부서기로 발탁되고 1953년에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러다 보니 문화수준이 높고 사업열정이 높은 그녀에게 로력모범, “3.8붉은 기수” 등 많은 영예가 차례졌고 왕청현 대표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선진사업자 표창대회에 출석하여 주덕해주장이 직접 끼워주는 만년필을 선물받기까지 했다.

“주덕해주장의 선물을 받던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65년이 되였습니다.”

“죽기 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정운선할머니의 입속말이다.

아무튼 90고령 정할머니의 사업 여열은 여전하였다.

“우리 당이 어디까지나 정확하다고 믿었지요”

중국공산당이 1981년 6월 27일 제 11기 6중전회에서 채택한 “중국공산당 건국이래 약간의 력사적 문제에 관한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은 당과 인민에게 수많은 재난과 혼란을 준 내란이다”고 결론하였다.

“내란”은 정운선이 석현종업원합작사의“주자파(走資派)”라며 그한테 “주자파”란 꼬깔모자를 씌웠고 그더러 “주자파”란 목패를 목에 걸고 밤낮이 따로 없이 투쟁을 들이댔다. 게다가 “깊이 파내고 깊이 비평하는” 량심(兩深)운동 때에는 그에게 “조선특무”라는 억울한 모자까지 씌워놓고 그더러 6개월간이나 감옥살이를 시켰다.

“그때 그 사람들이 나의 웃옷을 거머쥐고 높이 쳐들었다가는 땅에 메치며 조선특무경과를 똑똑히 교대하라고 위협을 했는데 정말 억울 하였습니다.”

“검은 방에 갇혀서 6개월이나 셋째아들이 날라다 주는 밥을 받아 먹으면서도 나는 절대적으로 특무가 아니라고, 당신들이 나름대로 나를 구박을 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당이 나를 정확한 평가를 할것이라고, 당은 절대로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버텨냈습니다”

“당에 대한 신념은 드팀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맞아 죽고 자살하고 하여도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정할머니는 “문화대혁명” 후기 정당때에 억울한 모자를 다 벗었고 “문화대혁명”을 바로 잡고 정책을 락실할 때 석현진 음식복무공사 당지부서기 겸 주임으로 복직을 하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란을 겪고 나서 중국공산당이 위대하고 정확한 당이며 당은 중국인민들의 마음속의 붉은 태양임을 더욱 느끼게 되였습니다”

이는 “문화대혁명”에 어떤 불만이 있는가는 필자의 물음에 주는 로공산당원 정운선의 여한이 없는 화답이였다.

행복한 가정

“후대양성사업을 종신당원의 평생일로 선택하였습니다”

“당의 사업에는 퇴직이 없습니다. 종신당원은 당을 위해 평생 할수있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당원은 응당 종신당원이 되여야 한다는 정할머니는 1980년 퇴직을 앞두고 종신당원으로 평생 해야할 일을 찾기에 밤잠을 설치였다고 한다.

그래서 추고끝에 여생에 해야 할 힘에 맞는 일로 찾은것이 후대교양사업이란다.

퇴직한 바로 다음날에 정할머니는 석현종이공장 제2소학교(조선족소학교)책임자를 찾아가 “후대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자원하니 학교의 책임자가 “남들은 시켜도 안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며 즉석에서 정할머니를 본학교 교외보도원으로 초빙하였다.

“남들에게 나의 말을 잘 듣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나의 속에 든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문학습과 책공부에 노력을 했지요.”

이렇게 시작한 소학교보도원 일터에서 정할머니는 매달마다 1차씩 학생들을 조직하여 혁명전통교육, 애국주의 교육, “나는 어덯게 해야 하는가?”는 등 형식의 주제모임을 조직, 견지하였고 명절 때마다 학생들을 조직하여 렬군속집을 찾아 위문하는 여러가지 뜻 깊은 활동을 조직하였다.

정할머니의 획기적인 후대양성사업은 1991년에 설립된 석현진 새일대관심위원회와 함께 그가 석현진 새일대관심위원회 비서장을 맡은 후부터였다.

정할머니의 조사에 따르면 당년에 석현진 13거민위원회에 감옥살이를 하는 6명의 불법청소년에 11명의 불량, 실족청소년들이 있었다.

동흥촌의 13세난 녀학생은 어느 부덕한 늙은이의 속임수에 걸려 성침해를 당하고 반년 남짓이 두문불출하였다. 이 일을 알게 된 정할머니는 반복적인 고심끝에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였고 반주임과 학교책임자를 친히 찾아 다니며 함께 대책을 연구하면서 끝내 그녀를 복학시키고 나서 해당부문과 련계하여 가해자가 법률적 제재를 받도록 처리 하였다.

17세 학생 정(丁)모(한족)는 어느 날 친구와 다투고 나서 집에 돌아온후 잘못을 느끼고 이틑날에 그 친구를 찾아가서 반성을 하면서 화친을 청했는데 생각 밖으로 그 친구가 불복하며 손찌검을 하기에 뜻 밖으로 맞 붙은 싸움에 그 친구가 타살되여 살인죄로 무기도형에 언도되였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정할머니는 생면부지인 옥살이를 하는 정모한테 편지로 그더러 절대 실망을 하지 말고 새사람이 되기에 노력하라고, 대방에서 아무런 회답이 없어도 정할머니는 실망을 하지 않고 계속하여 편리고 정을 주고 생활 필수품으로 사랑을 베풀었더니 나중에 정모가생면부지인 자기를 친자식으로 대하는 정할머니한테서 감동을 먹고 하루빨리 립공속죄를 하여 부모곁을 가고 싶고 삶의 새 희망을 품게 되였다는 서답이 왔다.

한편 정할머니는 공주령감옥의 책임자한테까지 정모에 대한 책임과 부탁의 편지를 보냈다.

정할머니의 사랑의 손길은 정모의 새 출발에 원동력이 되였다.

사평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정모의 현실표현에 따라 련속4차례나 정모한테 무기도형으로부터 유기도형, 감형, 앞당겨 석방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 정모는 내지에 진출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지내며 부모 집에 올 때마다 정할머니를 찾아 감사의 뜻을 표한다.

이와 같이 정할머니는 물심량면의 사랑의 손길로 6명의 불법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정할머니는 경제생활이 특별히 궁핍한 6명의 고중학생을 사랑의 품에 안고 대학생으로 부화시켰다.

어린이들속에 계시는 정운선할머니

소성남학생이 경제의 쪼들림으로 대학입학통지서를 받고서 곤경에 모대길 때 정할머니가 성남의 엄마가 출근했던 단위에 찾아가 호조금을 선대하는 등 조치로 대학입학자금을 마련해 주었고 그가 대학에 다닐 때 그한테 생활비까지 보탬해 주었다.

정할머니의 관심과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까지 찾은 소성남은 “물 마일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않겠다”며 첫 로임을 받은 첫 걸음으로 정할머니를 찾아와서 감사를 표했다.

외지에서 사업하는 소성남은 정할머니의 지속적인 지도에 따라 입당을 갈망하고 당원학습열성분자 중점배양대상에 뽑혀 단위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며 정할머니가 기뻐했다.

병상에 누워서 마누라를 찾는 바깥주인의 재촉으로 인터뷰는 일문일답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문: 자녀는 몇입니까?

답: 4남 1녀인데 둘째 아들이 암병으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문; 할머니의 사업을 가족에서 지지를 합니까?

답; 적극 지지하지요. 내가 옥살이를 할때 령감은 아무런 원망도 없이 밥을 지어 보냈고 불량아이들의 싸움을 말릴때 우리 집에 돌멩이가 날아 와도 아들은 어머니가 하는 사업이 옳다며 적극 지지해 나섰답니다.

문: 정할머니네 장수비결은?

답; 서로 서로 관심하는 가정화목이라고 생각됩니다.

필자: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하겠습니다.

문: 오늘까지 살아 오면서 후회되는 일은 ?

정할머니: 한동안 한숨을 내쉬며 묵묵부답 하다가 없다며 웃음을 보였다.

문;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답;…조선족들의 한국 진출이 돈은 벌었는데…가정이 파괴되고… 자식농사를 놓치고…몸에 신병을 얻고 돌아 온 것에 맘속으로 서운합니다.

문: 제일 기뻤던 일은?

답; 입당이지요.

문:제일 가슴아픈 일은?

답; 둘째 아들을 잃은것입니다.

문: 제일 힘든 일은?

답 : 최근부터 령감의 대소변을 곁드는 일입니다.

문: 제일 자랑거리는?

답: 외손자(림해성, 35살)가 사업을 잘하고 조선족 석사연구생 처녀와 약혼한 것입니다.

끝으로 할머니가 받은 영예증서를 보자고 하니 할머니가 정성껏 보관한 서랍에 성, 주, 시급에서 발급한 여러가지 영예증서와 메달이 42점이나 되였다.

취재를 끝내고 할머니를 식사대접하려고 간청하니 할머니는 함박꽃 웃음으로 감사하다고, 령감 때문에 집을 떠날수 없다고, 당신이 담근 김치와 고추장이 맛이 좋으니 집에 가서 맛을 보라며 필자한테 손짐까지 챙겨주며 문밖까지 나와서서 필자를 전송했다.

필자는 정운선할머니와의 만남과 감명깊은 취재로 더없는 보람을 느꼈다.

오기활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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