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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5]“세계의 지붕”에서 교육지원자로 3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2.16일 16:07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

◈손성만(장춘)

1979년 6월, 나는 서장을 지원하는 길림성교육지원단의 일원으로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서장에 파견되였다. 라싸시에 도착하자 서장자치구의 당정지도자들과 각계층 대표들이 나와 열렬히 환영했다.

서장자치구 소재지인 라싸시는 별로 크지 않은 도시였다. 동남쪽으로 라싸강이 소리치며 흘러가고 강우에 놓인 라싸교는 인민해방군전사들이 경비하고있었다. 라싸시 건축물은 대부분이 장족식 2층집이 많았다. 정부기관과 상점은 현대적인 건축인데 높은 층집이 별로 없고 지붕에는 얇은 철판을 씌워 해볕에 번쩍번쩍했다.

라싸시 거리중심에는 대조사(大昭寺)라는 절당이 있는데 아주 아담했다. 이 절당에다 석가모니동상을 모셨기에 교를 믿는 장족동포들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 절당에 와서 큰절을 하고 또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이튿날 우리는 자치구 력사박물관 부관장이신 간바선생님의 안내로 력사박물관을 참관했다. 력사박물관에는 력사자료와 실물들이 많았다. 노예시대에 서장 인민들은 짜장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했었다. 노예주들은 노예를 마음대로 살해했고 또 사람 껍질을 벗겨서 북을 만들었으며 사람의 뼈로는 지게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또 노예들의 코를 꿰여 소처럼 끌고 다녔다. 참 기가 막힌 노예사회였다. 력사박물관에 이어 우리는 문성공주관도 참관하였다.

서장자치구교육청에서는 우리들을 서장사범학원에 파견하여 그곳에서 교편을 잡도록 결정했다. 학원에서는 우리들을 각 학부와 강좌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나는 음악체육학부의 교수주임 겸 체육교연실 주임으로 임명되였다. 나는 무등 기쁘면서도 책임감이 중함을 느꼈다.

서장사범학원은 서장자치구의 유일한 고등학부이다. 중심임무는 서장자치구의 중학교교원을 양성하는것이였다. 사범학원에는 장족언어학부, 중문학부, 력사지리학부, 수학 물리 화학 학부, 생물학부, 음악체육학부 등 6개 학부가 있었다. 각 학부의 책임자는 장족과 한족으로 구성되여있었고 따라서 사업상에서 민족단결이 아주 중요했다. 학생은 장족이 대다수이고 한족도 있었다. 그들은 주요하게 서장자치구 각 지방 당정기관 지도자들의 자녀들이거나 또는 각계층 인사들의 자녀 혹은 중국인민해방군 지도자들의 자녀들이였다. 그리고 내지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다.

서장사범학원은 라싸시 남쪽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앞으로는 라싸강이 흐르고 강남쪽에는 큰 돌산들이 가로막혀있다. 라싸강은 깊고 넓으며 푸른 물이 힘차게 흘렀다. 높은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차거워 물에 손을 넣으면 찡찡 저려났다. 하기에 더운 여름철이라 해도 이 강물에서 수영을 못한다. 게다가 물살도 세여 위험했다.

어느 일요일날 점심시간 라싸강변에서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오고말았다. 물이 너무도 차서 뼈까지 저려났다.

그러나 장족들은 이 강물에 와서 세수도 하고 빨래도 했다. 어려서부터 고원에서 자라면서 자연조건에 적응했던가본다.

나는 동북사범대학 체육학부에서 온 젊은 령선생과 같이 학원내의 체육시설을 조사연구하였다. 학교의 운동장은 좀 크기는 했으니 돌밭이였다. 체육기자재라야 축구문 두틀에 세멘트로 만들어진 롱구장 둘, 그리고 철봉 두대, 쌍봉 두대가 가지런히 있을뿐이였다. 이런 조건으로 체육인재를 양성하다니, 참 코 막고 답답한 일이였다.

나는 체육교연실 주임 오주선생을 찾아갔다. 그는 북경민족학원에 가서 2년간 학습했고 한어도 괜찮게 했다.

“오주선생님, 다음학기부터 체육학부에서 학생을 모집하는데 지금 교수 요강과 진도가 작성되여있는지요? 그리고 교과서는요?” 그는 히쭉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학교창고에 체육기재들이 더 없는가고 물으니 목마, 평행목과 여러가지 공들이 있다고 했고 왜 이런 기재들을 운동장에 설치하지 않았는가고 물으니 “아는 선생님이 없어서 설치하지 못했다.”는것이였다!

나는 일정한 조사연구를 한 다음 시간을 짜내여 체육요강과 교수진도를 작성했고 량선생에게 간단한 교재를 쓰라고 임무를 맡겼다. 나는 체육교수요강을 작성할 때 우선 내지의 각 사범학원 체육학부의 교수요강을 참고하고 서장자치구 실정과 학생들의 실제수준 그리고 중학교교원 양성요구에 따라 하였다. 몇차례의 토론을 거치면서 보충, 수정한후 학교당국에 보고하고 허락까지 받았다.

체육전공의 학과목으로는 륙상, 기계체조, 롱구, 축구를 설치하고 륙상과 롱구는 량선생이 책임지고 기계체조와 축구는 내가 책임졌다. 기타 다른 선생들은 학원 다른 학부 학생들의 보통체육교수를 책임졌다. 체육전공은 2년제인데 처음에 30명의 남녀학생을 모집하였다. 대다수는 장족이고 한족도 더러 있었다. 1979년 9월 1일부터 정식교수를 시작하였다.

나는 정상적인 교수외에 또 전교 군중성 체육운동에 관심을 돌렸다. 우선 학교 체육운동위원회를 건립하고 활동계획을 작성하였다. 체육운동위원회 주임은 다화부원장이 맡고 부주임은 내가 맡고 위원들은 각 학부의 학생사업을 책임진 부서기들이 맡았다.

이때로부터 학교의 아침체육활동과 방과후 과외체육활동도 멋있게 진행돼 학교 지도자들과 전체 교직원 및 학생들의 호평을 많이 받았다. 이 군중성 체육활동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신체단련에 큰 도움이 되였다. 모두가 정신상태가 좋아졌으며 학습과 사업에 생기발랄한 면모를 가져왔다. 나는 이 활동에 하루도 빠짐없이 적극 참가하면서 학교 및 각 학부의 지도자들에게 적극적인 영향을 준데서 모두가 자각적으로 나와 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고원의 자연풍경은 아름다웠으나 산소가 부족한데서 호흡곤난으로 내지에서 간 사람들은 운동량이 크면 견딜수가 없었다. 장족들은 이것을 큰 문제로 생각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고원생활을 오래 하면서 자연조건에 적응되였기때문이였다.

나는 장족인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서장자치구운동위원회, 라싸체육운동위원회와 밀접한 련계를 맺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서장자치구운동대회, 라싸시운동대회 심판으로 참가했고 특히 축구경기에서는 심판장을 하면서 장족심판원들을 많이 양성했기에 좋은 평가도 많이 받았다.

나는 또 장족들의 체육에 대하여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방학간을 리용하여 서장 각 지방을 다니면서 구경을 함과 동시에 자료를 수집하여 론문을 써서 발표하였다. “장족민족체육연구”라는 제목으로 쓴 문장은 전국성 간행물인 《체육사료》 제6기에 발표되였고 또 1980년도 사천성 성도시에서 진행된 전국체육운동학술회에 참가하여 이 론문을 발표하여 대회에 참가한 여러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론문영예증서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장족인민들과 각계층의 지도자들은 참 기뻐했고 따라서 나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그것은 력사이래 장족의 민족체육에 대하여 처음으로 문장을 써서 발표하고 선전했기때문이다.

당시 서장 라싸 부다라궁앞에서 필자

시간은 라싸강물이 흘러가듯 빨리 지나갔다. 어느덧 1년이 넘었다. 나는 사범학원당위 지도자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관심 그리고 나자신의 노력으로 일정한 성적을 얻게 되였다. 그리하여 1980년 8월에 부교수칭호까지 받았다. 사범학원에서 제일 첫 사람으로 부교수칭호를 받은것이였다.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더 열심히 일하여 장족인민들의 교육사업에 진일보 기여하리라 결심하였다.

서장자치구 지도자들은 나의 생활에 많은 관심을 주었다. 부교수급이면 고급지식인이고 또 체육전문가라고 고급대우를 해주었다. 입쌀, 밀가루, 콩기름 등을 마음대로 살수 있고 또 술은 모태주 2병, 권연은 “중화”, “모란”, “쌍희” 2보루씩 살수 있었다. 나는 후에 집에 돌아올 때 모태주 몇병 사서 가지고 왔다. 아버지, 어머님께 부어 대접하니 참 즐거워했다. 그때의 모태주 한병은 11원이였다. 물론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나는 체육교연실 주임 겸 당지부서기 책임을 맡고 당의 열성분자들을 양성했고 계획적으로 당규약과 당의 방침, 정책을 학습시키고 열성자 교원들에 대하여 각 방면에서 엄격히 요구하였다. 1년후 입당조건에 구비되는 우수한 교원 3명을 당에 가입시켰다. 장족선생 2명, 한족선생 1명이다. 이중에 수나라고 하는 장족 녀선생은 각 방면의 표현이 돌출하여 학원에서 모범교원 칭호를 받았다. 수나선생은 몇년전 중앙체육학원에 가서 체육전공을 배웠다. 교수수준도 괜찮고 한어도 괜찮았다. 내가 자기의 발전을 관심하고 입당까지 시켰다고 해서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를 존경하고 또 나의 지도도 잘 받았다.

나는 “세계의 지붕”에서 3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이 3년이란 시간은 짧기도 하고 또 길기도 했다. 서장고원에서의 3년간 생활로 나는 심장도 좀 커졌고 얼굴도 해볕에 타 가무잡잡해졌으며 체중도 몇키로나 줄었다. 어쨌든 고원의 생활만은 간고한것이였다.

그러나 형제민족지간의 우정만은 아주 깊었다. 아름다운 라싸 그리고 정든 장족인민들과 갈라질것을 생각하니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라싸를 떠나던 날 아침, 조직부 부장 “짠둬”가 찾아왔다. “손교수선생님, 차가 이미 준비되였습니다. 비행기가 10시경에 뜨니 준비하여 출발합시다.”고 했다. 학원의 지도자들과 여러 선생님들이 교문앞에 나와 나를 환송하였다. 나는 일일이 악수로써 인사를 나누었다.

차는 어느덧 라싸시를 벗어나 얄루장보강다리를 지나 공군비행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전송 나온 조직부 부장, 인사처 처장 그리고 수나선생과 친절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수나선생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비행기에 올라 문가에서 서장고원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아! 그리운 서장고원이여! 정든 장족동포들이여! 잘 있거라, 라싸여! 잘 있거라, 서장이여!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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