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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6]아버지와 함께했던 “데이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2.16일 16:19
“아름다운 추억”수기 응모작품 (6)

◈홍연숙(한국)

비가 내린다.

비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창문을 열고 커피를 마시며 비를 반긴다. 참 좋다, 보슬비가.

어디선가 그이의 부름소리가 들려온다. 비와 함께 마음까지 젖어오는 아버지의 그리운 목소리가 아름다운 추억의 스크린을 펼쳐준다.

7살때였다.

유치원의 친구들이 진(흑룡강성 의란현 영란진)에 있는 한족학교로 모두 입학하였다. 촌(오가촌)엔 나 혼자 남아 5~6살 꼬맹이들을 괴롭히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나는 태여나서 8개월만에 부모의 리혼으로 엄마와 함께 지내다가 6살에 작은할머니댁으로 오면서 리별의 아픔이 얼마나 무서운건지를 알아버렸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리운 엄마생각에서 잠시나마 헤여나올수 있었고 아버지와 함께 지낼수 없는 외로움도 극복할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고싶었다. 아버지를 볼적마다 떼질을 부렸다.

그날도 보슬비가 내렸다.

아버지는 나를 업고 안개가 자욱한 비길을 걸었다. 눈을 간질거리는 비물땜에 난 아버지의 넓다란 등에 얼굴을 파묻고 매미처럼 납작 엎드렸다. 비물에 젖은 아버지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그 냄새는 눈물나게 그리운 사랑이였다. 그날은 모든게 처음이였다. 아버지에게 안겨보는것도 업히는것도 처음이였다.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은 늦가을의 차거운 비도 훈훈하게 덥혀주었다. 친구도 엄마도 잊을만큼 행복한 둘만의 시간이였다. 아버지의 커다란 두손은 그네의 발판이 되여 나의 엉뎅이를 편하게 앉히고 성큼성큼 아버지의 걸음은 그네의 률동이 되여 나를 흔들흔들 잠속으로 태워줬다. 얼마나 지났을가?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난 겨우 꿀잠에서 깼다.

“아버지, 나 걸을래.”

“아버진 힘이 세다. 넌 얼마나 햇가븐지(가벼운지) 업은것 같지도 않다. 허허허.”

“정말? 내가 그렇게 햇가바(가벼워)?”

차거운 비에 김이 몰몰 올라오는 아버지의 따스한 등은 너무나 편하고 포근했다. 나의 속셈을 간파한 아버지의 말씀에 난 마음놓고 엉뎅이를 한번 더 덜썩 추키고 두팔을 아버지의 어깨에 걸쳐 아버지의 목젖 아래로 두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것처럼!

우리 부녀는 푹 젖은 몸으로 영란진의 제일 구석진, 머리가 닿을듯한 낮은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진 나를 등에서 슬쩍 내려안고 반질반질한 사각 나무걸상에 앉히고 익살스럽게 윙크 한번 주더니 주인집 아저씨하고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것 같았다. 두분은 나의 눈치를 보는것 같았고 좀 있다가 밖으로 나가시는것이였다.

그 사이에 주인아줌마가 금방 구운 떡을 나무저가락에 꿰여서 쥐여주셨다. 팥을 넣은 찹쌀호떡이였다. 달곰달곰한것이 씹는 내내 침이 날 정도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배가 엄청 고팠던지라 그냥 한입에 넣고싶었지만 아까와서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그래도 호떡은 도적맞힌것처럼 순간에 없어졌다.

이때 밖에서 들어오신 아버지는 랭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아쉬워서 저가락을 쫄쫄 빨고있는 나를 보며 불렀다. “련숙아, 우리 이제 집에 가자.” 난 걸상에서 톨랑 뛰여내려 쪼르르 달려가 아버지의 등에 찰싹 업혔다. 호떡 생각도 어느새 달아났고 그냥 아버지의 등이 마냥 좋을뿐이였다. 우리는 또다시 오던 길을 걸었다. 아버지의 잔등에서 향수하는 그네놀이에 흠뻑 취한 나는 그 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을것만 같았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날씨도 화창하게 맑아졌다.

“우리 이제 걸을가?”

“응…”

난 아쉬웠지만 모기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아버지는 말 떨어지기 바쁘게 날 내려놓으시고 주머니에서 누런 종이에 돌돌 싸여있던 호떡 하나를 꺼내셨다. 그리고 씽긋 웃으시며 “너 더 먹고싶었지? 아버진 배가 불러서 남겨왔지롱…” 했다.

이내 밝아진 나는 호떡을 덥석 받아쥐고 아버지앞에서 이리저리 뛰여다니며 재롱을 부렸다. 아버지는 나만 바라보시다가 나와 눈만 마주치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주셨다. 그날 난 아버지의 웃음을 처음으로 보았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느새 집앞에 다달았다. 그제야 난 학교생각이 났다.

“아버지, 나 학교에 가는거야?”

“오- 가야지… 건데 지금은 아니고 좀더 커서 오란다.”

“왜? 다른 애들은 다 갔는데 나만 안돼?”

난 제 설음에 북받쳐 그만 왕-왕- 터져버렸다.

“난 혼자 있기 싫단 말이야! 난 학교에 갈거야!”

“그래, 학교는 꼭 가야지…”

그날저녁에 아버진 나를 할머니댁에 재워놓고 말린 누룽지 한줌을 맹물에 타서 그날의 한끼를 떼우고 가셨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였다.

그 이듬해에도 난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날후부터 아버지를 볼 기회도 없었다. 내가 9살 되던 해에 마을아줌마의 도움으로 재가한 엄마한테로 도망쳤다. 하지만 비가 올 때마다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떠올리군 했다.

아버지는 “반혁명분자”였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소마구간에서 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나날을 보내시며 홀몸도 어쩔수 없는 처지라 나를 작은집에 맡겨놓았던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아버지를 전염병환자처럼 모두 슬슬 피해다녔지만 난 책이 많은 아버지가 너무 존경스러웠고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내가 사랑한 첫 남자였다. 그런 딸의 애원에 찬 눈을 보며 아버지의 마음은 진물이 날 정도로 곪았을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가 그 중국집에 찾아가셨던 리유를 대충 알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세상과 등졌다.

세상은 아버지를 버렸다.

아버지는 이춘의 소흥안령 산속에서 20여년을 고독하게 생활하시다가 식도암, 위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유물로는 책만 세 트렁크 남겨놓고.

비는 계속 내리고있다.

나는 온 세상을 적시는 사랑하는 보슬비와 함께 출근한다. 다정한 아버지의 부름을 들으며 아름다운 추억속으로 걸어간다.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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