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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처벌 못하는 인신매매죄 조항

[기타] | 발행시간: 2013.03.29일 18:08

[한겨레21] [보도 그 뒤]인신매매 특별법 제정 노력해온 변호사가 개정 형법에 인신매매죄가 신설됐지만 반갑지 않은 이유… 인신매매의 ‘목적’을 증명하라는 개정안, ‘마음’에 품은 목적은 증명 어려워 대다수 피의자 빠져나가

‘사람을 사고판다고? 요즘 우리나라에 그런 일이 있나?’ 인신매매죄가 신설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한 번씩 품어봄직한 의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어느 가수의 고백이 눈에 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인신매매를 당했다. 납치범들이 무슨 드링크제를 먹였는데 그 안에 약을 탔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인신매매도 그와 비슷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후반,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홀로 귀가하던 누군가가 봉고차에 납치됐다는 괴담이 학교를 떠돌았다. 밤길에 모르는 차가 옆을 지나갈 때면 흠칫 놀라 멀리 피하곤 했다.

무엇을 인신매매로 볼 것인가

지난 3월5일, 정부가 제출한 형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무부는 2000년 한국 정부가 서명한 ‘유엔 조직범죄방지협약 및 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비준하기 위한 입법 조치라고 밝혔다. 나는 그동안 이주여성,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단체와 함께 인신매매 범죄를 처벌하고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934호 특집 ‘성매매, 인신매매 허가증으로 전락한 E-6 비자’ 등 참조). 그런데 인신매매죄가 신설됐다는 소식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법과 현실 사이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사례1> 며칠 전, 경상도 소재 마사지 업소에서 구출한 타이 여성들에 대해 자문 요청을 받았다. 타이에서 마사지일을 한다고 소개받고 한국에 왔는데 마사지 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은 사례였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비행기 삯과 기획사 수수료, 의상비 등으로 10만밧(약 370만원)의 빚이 생겼다. 타이 여성들은 이로 인해 쉽사리 업소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사례2> 필리핀에서 가수를 모집한다는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한국에 온 필리핀 여성은 도착하자마자 미군 기지촌의 클럽에 인계돼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클럽 업주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보관했다. 매상 할당량이 부과됐다. 채우지 못하면 더 나쁜 클럽으로 보내겠다고, 필리핀으로 쫓아내겠다고 했다. 술과 음료만 팔아서는 할당량을 채울 수 없었다. 2차 성매매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종종 중국의 인신매매 범죄가 보도된다. 탈북 여성을 돈 벌게 해주겠다고 속인 뒤 농촌에 팔아넘겨 강제 결혼시킨 사건, 갓난아이를 유괴해서 매매했다는 사건은 누가 봐도 의심할 바 없는 인신매매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인신매매로 볼 것인가다.

2005년에는 중국동포 여성들을 위장 결혼시켜 입국토록 한 뒤 성매매를 강요한 일당이 검거된 적이 있었다. 피해 여성들은 수개월 동안 브로커이자 업주인 한국인에게 감금·협박을 당하면서 이발소, 마사지 업소 등에서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일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위약금 예치 명목으로 현금을 압류당하기까지 했다. 사건 지원을 하면서, 수사기관에 업주 일당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명시한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로 처벌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여성들 스스로 위장 결혼을 하고 불법적으로 입국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인신매매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앞서 제시한 사례에서도 동일한 장벽에 부딪힌다. 업주들은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는 줄 알고 온 것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증명하라고?

착취 목적이나 인신의 이동에 대해 여성이 ‘동의’했다면 인신매매가 성립할 수 없을까? 정부가 비준하려는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피해자의 동의를 불문하고’ 인신매매 범죄가 성립한다고. 피해자가 자신이 착취당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동의하고 이동되는 현대의 인신매매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필수적인 이 내용은 개정 형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신설된 인신매매죄로 처벌하려면 추행·간음·결혼·영리의 ‘목적’,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 적출의 ‘목적’ 또는 국외이송 ‘목적’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 마음에 품은 ‘목적’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보통 ‘결과’가 발생하면 범행 당시 ‘목적’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한다. ‘목적’으로 정한 착취의 ‘결과’가 발생해야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인신매매 범죄에 여러 사람이 관여한다는 점이다. 앞서 사례에서도 현지에서 여성을 모집한 사람과 한국에서 성매매를 강요한 사람이 다르다. 이럴 경우 성매매의 목적을 입증하기란 더욱 요원하다. 업소에서 성매매가 발생했다면 업주에게 성매매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필리핀이나 타이에서 여성을 모집한 사람에게 성매매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명의 어려움 때문에 대다수 사례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 끝나고는 한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 필리핀 여성을 대리해서 기획사와 업주를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로 고소했을 때 클럽주만 단순 성매매로 가볍게 처벌되고, 모집에 관여한 기획사는 성매매 목적이 없었다면서 유유히 빠져나간다. 신설된 인신매매죄에는 이와 같은 다단계 구조의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고려가 없다.

미 국무부에 증명하기 위해?

그렇다. 신설된 인신매매죄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 미묘한 인신매매 범죄를 처벌할 수 없다. 바로 형법 개정이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1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지점이다. 추상적인 선언에 그친 형법 개정은 인신매매가 문제되는 구체적인 현장에 개입할 수 없다. 그 결과 인신매매 범죄 처벌은 요원하다. 인신매매 범죄의 처벌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인신매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다. 과연 개정된 형법으로 처벌하려는 인신매매가 무엇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

소라미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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