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걷는 사람은 다른 행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데 영화에 사용되는 특수효과 장비를 이용해 실험을 실시한 호주 연구진은 스마트폰에 빠진 채로 걸으면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자신도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퀸즐랜드대학교 연구진은 영화 ‘호빗’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모션캡처 기술을 활용해 걸으면서 타이핑을 하면 균형이 무너져 똑바로 걸을 수도 없고 자세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번 논문을 공동 집필한 월버트 반 덴 훈은 “오늘 아침 출근할 때 나도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걸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걸으면서 타이핑을 하거나 텍스트를 읽는 사람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화는 많다. 대만에서 호주로 여행 온 어느 관광객은 펭귄을 보러 멜번 부두로 걸어가는 길에 페이스북을 확인하다가 그만 바닷물에 풍덩 빠졌다.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서 장애물을 피하지 못한 이야기는 유투브에 넘친다. 미국 쇼핑몰에서 어느 쇼핑객은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분수로 직행하기도 했다.
모바일폰 사용자가 증가하면서—호주 연구진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약 77%가 모바일폰을 사용한다고 한다—모바일폰 관련 사고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동 중에 모바일폰을 사용하다가 응급실로 실려온 경우는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자그마치 1,500건으로 두 배나 늘었다고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집계했다.
Natalie Keyssar for The Wall Street Journal
브루클린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남자
세계 각국 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홍콩 지하철공사는 보행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를 세 가지 언어로 적어놓았다. 싱가포르 경찰과 교통 당국도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싱가포르 유력지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교통사고 사망을 초래하는 나쁜 습관 2위로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린 채 길을 건너는 행위를 들었다. (1위는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타고 가는 행위였다.)
뉴욕주와 아칸소주 등 미국 몇몇 주정부들은 일명 ‘휴대전화 무단횡단(phone jaywalking)’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어느 양심적인 일본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사용자가 보행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려고 하면 자동으로 잠기는 안드로이드폰 모델을 출시했다.
호주 연구진은 자원봉사자 2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피실험자들 가운데 3분의 1은 휴대전화로 타이핑을 하다가 장애물에 부딪힌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실험자들은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치를 발뒤꿈치, 골반, 머리, 몸통에 부착하고 8.5m를 세 번 걸었다. 한 번은 휴대전화 없이, 한 번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또 한 번은 타이핑을 하면서 걸었다. 카메라 8대가 피실험자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피실험자의 걸음 속도는 떨어지고 보폭도 짧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타이핑을 하면서 걸을 때 제일 느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피실험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팔과 팔꿈치를 (연구진의 표현에 따르면 로봇처럼) 몸통 옆에 딱 붙이고 걷는다는 점이다. 그런 자세를 취하면 고개를 앞으로 더 많이 숙이게 돼서 몸의 균형이 깨진다.
월버트 반 덴 훈은 “보행 환경에서 일직선으로 똑바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충돌하거나 발을 헛디디거나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동 중에 휴대전화를 굳이 사용해야 한다면 인도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서 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