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표재민 기자] 이쯤 되면 ‘작가님’이 이상한 건지, 이를 즐겨보고 있는 시청자가 이상한 드라마에 중독된 건지 모를 지경이다. ‘압구정 백야’에서 이보희가 아들의 죽음을 접한 후 시원하게 뀐 방귀는 두고두고 회자될 듯 하다. 보통 드라마에서 엄마가 아들을 잃었을 때 오열을 하며 극도의 슬픔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현실에 가까운 모습이라면, 임성한 작가가 만든 엄마는 아들이 비명횡사한 후 민망해하며 방귀를 분출했다. 죽음조차도 평범하게 다루지 않는 임성한 작가다운 행보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백야’ 79회는 예고된대로 남녀 주인공 장화엄(강은탁 분)과 백야(박하나 분)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방해꾼(?) 조나단(김민수 분)이 조폭에게 폭행당한 후 세상을 떠나는 충격적인 전개가 그려졌다.
백야와 나단이 행복한 결혼식을 치른 후 벌어진 일. 사실 백야와 화엄은 서로 사랑하지만 백야의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 가운데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존재와 마찬가지였던 나단이 어떻게든 극에서 빠져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전작 ‘오로라공주’와 달리 갑작스러운 하차는 아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일 뿐. 임성한 작가는 또 다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더 이상 극에서 필요 없는 인물을 제거했다. 자연스럽게 인물이 빠지는 이야기는 만들 생각이 없는 걸까.
바로 결혼식 이후 엄마 서은하(이보희 분)가 맹장 수술로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조폭과 시비가 붙어 죽음을 맞는다는 기괴한 전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나단의 죽음에 슬퍼하던 은하가 “하늘의 뜻이다. 야야 우리 집으로 못 들어오게...”라면서 아들의 죽음을 신의 뜻으로 맡기며 수용하고 마치 그래야 한다고 정당화하는 듯한 장면. 작품에서 철저한 운명론을 담는 작가라고 해도 너무 했다.
가장 압권은 코미디에 가까웠던 마지막 장면. 은하가 갑자기 울다가 방귀를 뀌는 모습은 아무리 맹장 수술을 받았고 수술 경과가 좋다는 뜻이라고 해도 실소를 자아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다가 방귀라니. 물론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라고 해도 다른 드라마였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희대의 코미디다.
가뜩이나 이 드라마는 나단의 죽음이 남녀 주인공의 행복을 위한 선결 장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나. 극단적인 전개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방귀를 뀐 후 다소 민망해하는 은하의 표정은 안방극장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나단의 뜬금 없는 죽음보다도 더 놀라운 장면이었다. 상식적으로 아들을 먼저 앞세운 엄마가 방귀를 분출하는 장면이 다른 드라마였으면 가능했을까 싶다.
만약 많은 시청자들이 임성한 작가니까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다며 추측하는 것처럼 '방귀 분출이 화엄과 백야의 ‘해피엔딩’을 알리는 속시원한 행보'를 빗대는 장치라면 소름끼치게 무서울 지경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너무 희화화되는 게 아닌가. 물론 임성한 작가는 그동안 숱한 드라마를 통해, 그리고 이번 ‘압구정백야’를 통해 매회 입이 벌어지는 무서운 장면을 만들고 있기에 이 또한 놀라워하면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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