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로다크서티' 스틸컷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해 끝내 사살했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 가운데 상당수가 허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빈라덴이 은신해 있었던 게 아니라, 파키스탄 당국에 의해 구금돼 있었고 총격전도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아울러 빈라덴이 수장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하지만 워낙 알려진 것과는 딴판의 주장이어서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백악관은 즉각 보도를 부인하고 나섰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세이모어 허쉬는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을 영국의 격주간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었다.
세이모어 허쉬는 이라크전쟁 때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나,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1968년 미라이 마을 주민 수백 명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전쟁 전문 심층보도로 이름을 얻었다.
허쉬는 기고문에서 “빈라덴은 2006년부터 파키스탄정보부(ISI)에 의해 아보타바트에 잡혀 있었고, ISI의 내부 밀고자가 2010년 8월에 2500만 달러(약 273억 원)를 달라며 이를 미국 측에 알렸기 때문에 미국에서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기고문을 보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시파크 페레즈 파야니와 아흐메드 슈자 페샤 정보부(ISI) 부장이 미군의 공격 계획을 알고 있었고, 이들이 묵인했기 때문에 해군특전단(네이비실)을 태운 헬기가 아보타바드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2011년 5월 네이비실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로 투입해 은신 중이던 빈라덴을 살해했고, 시신을 수장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서 미군의 공격 계획을 몰랐다고 발표했으며, 작전이 종료된 뒤 아프가니스탄의 파야니 육군참모총장에게 작전 종료를 통보했다고 알려져 왔다. 빈라덴 시신의 행방에 대해서 허쉬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허쉬는 기고문에서 시신이 수장되는 대신 아프간으로 다시 옮겨졌다는 주장이 있고, 작전 종료 후 귀환하는 과정에서 빈라덴의 시신 중 일부가 유실됐다는 주장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당시 빈라덴의 시신이 잘랄라바드의 미군기지를 거쳐 항공모함 칼빈슨호로 옮겨졌고, 칼빈슨 함상에서 이슬람의 전통 절차에 맞춰 수장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허쉬는 빈라덴의 장례 과정을 참관했다는 이슬람교 종교인이나 장례를 위해 시신을 정돈하는데 관여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며 “빈라덴의 시신이 칼빈슨 함상에서 수장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쉬는 퇴역 미군 장성들과 정보당국 관계자들로부터 이런 말들을 들었다며, 빈라덴 사망 과정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발표가 “거짓말과 오도이며 결국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빈라덴 체포작전이 진행될 때 이뤄진 총기 사용은 빈라덴을 사살할 때뿐이었다는 허쉬의 주장은 경호원들과 총격전을 벌였다는 네이비실 대원들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허쉬는 이날 오전 CNN에 출연했을 때 `CNN 취재진이 빈라덴 체포작전 직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를 방문했을 때 교전 흔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총탄자국이 곳곳에 있었다'고 진행자가 반론하자 명확하게 해명하는 대신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파키스탄이 왜 미국에서 빈라덴을 잡아가도록 놔뒀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허쉬는 “파키스탄의 이미지가 안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미국 백악관은 “틀린 부분과 근거없는 주장이 너무 많다”는 입장을 보였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파키스탄을 비롯한 다른 어느 나라에도 (빈라덴 체포 작전을) 알리지 않았다”며 이같이 반박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