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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체는 어떻게 할가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07.22일 20:45
-민족의 삶의 사고(1)

전국권

1. 문제의 제기

개방개혁시대가 열린지도 어언 20년, 이제 또 한두해 지나면 21세기 새 아침이 밝아온다. 더구나 우리 민족군체가 지구촌 1일권(一日圈)의 열린 세상, 빠른 세월을 용케 이겨나가자면 어떻게 해야 할가? 이것이 이 순간 나의 사고의 초점이 된다. 이렇게 글의 초점을 조절하고보니 어쩐지 저절로《내가 도대체 누구인가?》 고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평백성의 말에 날이 얼마나 설가 하고 말이다. 세기말의 인류의 보편적인 곤혹인지 나는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하자니 좀 망설이기도 한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세상에 매개인의 자아세계도 심히 복잡다단하기에 정말 자신의 사유의 내용을 질서있게 가려잡기도 어려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튼 우리는 사유하는 생명체이기에 좀 리성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개체는 물론 또한 우리들이 귀속된 군체의 삶도 진지하게 사고해보아야 할 절박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나는 나 나름대로의 사유의 내용을 아래에 적어본다.

2. 우리는 어떻게 21세기를 맞을것인가?

(1) 100여년동안의 력사경험을 총화.



우선 100여년이래 우리 중국조선족의 력사경험을 진지하게 총화해야 할 것 같다. 총화는 우리를 의식의 자각성과 명석도를 높이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실천만 하고 그것을 제때에 총화하여 리성리론의 높이에로 부단히 승화시키지 못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노상 감성, 초급적인 사유단계에만 머물러있어 제고가 더디다.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의 원시적인 사유를 벗어나지 못할 우려도 없지 않다.

100여년래 우리는 조선반도에서 이 땅에로의 천입, 연변땅의 개척, 항일전쟁, 해방전쟁, 등 력사과정을 거쳐 공화국창건후 이 나라의 떳떳한 공민으로 되어 다른 55개 민족과 함께 정치, 경제, 문화 등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 이 땅의 개척자, 건설자, 혁명전쟁년대의 우리 민족이 세운 혁혁한 공훈 그리고 강의한 투지, 아름다운 품성, 고상한 문화 등으로 하여 우리는 이 나라에서 영웅적민족으로서의 위상을 떨쳐었다. 우리 민족의 굴강한 성격과 충동형의 심리는 해방후 련속부절히 진행되는 정치운동의 투쟁성격과 상당한 적응성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그 어떤 정치운동에서 동원력이 강한 원인으로 하여 일정한 평가를 받을수 있다. 그러나 평화건설시기 특히 시장경제시대에 와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경제건설시대에는 농민봉기와 정치운동 때와 같은 그런 집단적인 또는 폭발적인 동원력이나 맹동적인 운동, 텅빈 정치구호따위로는 경제와 시장을 번영시킬수 없는 것이 뻔하다. 시장경제시대에는 개체생명의 창조적인 지혜와 책략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 조선족사회가 해방후 재난을 많이 받았지만 계속 생명을 부지해올수 있은 것은 많이는 전쟁시기의 선전고동에 인차 동원되고 잘 적응하던 강한 심리습관과《반우파》투쟁, 대약진운동, 인민공사화운동, 반우경투쟁, 사청운동,《문화대혁명》등 일련의 정치운동의 기운과 상당한 영합성을 가지고있은 비극적인 사정과 관계가 없지 않다. 즉 우리는 어쩐지 일시적인 그 어떤 시체바람에 맹동적으로 영합, 추종하는 심리관습이 있는 것 같다. 리성이 결여한 우리는 리지적으로 문제를 대하기보다는 많이는 감성충동에 치중하면서 아주 오래동안 무엇이나 눈치보며 맹목적으로 추종, 영합하는데 버릇되여온것이다.……그러나 매번마다 수확은 극히 적었다. 재난과 불행이 아주 많았다.



21세기를 곧장 맞게 되는 지금에는 감성에만 따르며 때때로 불어오는 시체바람(시대정신과는 다름)에 맹동으로 영합해서는 우리가 성숙된 민족군체로 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가?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자신의 100여년래의 력사경험을 잘 총화해야 한다. 그 하나는 우리가 지나온 력사과정을 진진하게 돌이켜보고 거기서 금후 계속 발휘해야 할 미래지향적인 문화정신을 옳게 분석개괄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00여년래 력사과정에서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공적과 정신, 하지 못한 일, 단점을 옳게 분석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리홍광, 주덕해, 문정일, 김명한, 려영준, 최채, 최림, 조남기, 조룡호 등을 비롯한 오랜 세대 정치행정인물들은 물론 또한 다른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전세대의 인물들의 력사경험과 교훈, 장점과 부족점, 하지 못한 일, 오유들을 리론적높잉서 참답게 총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험의 총화는 물론 보다 현실적인 년령의 세대, 이를테면 60대, 50대, 40대, 30대, 20대의 년대별로 나눈 다각다층적시각에서의 연구와 총화도 제때에 따라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계속 발양, 계승해야 할 귀중한 력사문화정신을 리론적으로 정확하게 개괄하여내고 그것을 적시적으로 실천을 통해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전략적인 책략인 것이다. 이런 리론적인 연구와 총화가 없으면 우리 민족은 그냥 일(실천)만 하고 리론사유가 없이 남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맹동적인 족속, 우물안 개구리의 원시적인 사고정도에 머물러 모든 면에서 낮은 차원에서의 악성순환을 거듭하는 비극을 낳을 것이다.

(2) 비교시각에서의 민족의 장단점에 대한 리론높이에서의 파악.



자기를 잘 알아야 자각높은 민족군체로 될수 있다. 개혁개방후 외부세계와 자아내부세계의 전방위적인 개혁개방, 력사발전요구로 하여 우리는 자기 민족의 약점에 대한 문화적인 반성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아주 오랜 기간 우리는 계속되는 모진 정치운동바람 때문에 종래로 자신의 내부세계를 투시해볼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력사시기에 들어선후 정치가 개명해지고 배가 부르게 되면서 심리도 보다 느슨해지고 사유공간이 넓어졌다. 그리하여 최근 10년간에 우리는 가정에서, 식당에서, 회의에서, 신문잡지에서 민족의 약점을 말하고 비판하는 현상들을 심심찮게 보고듣고 하는 것이다. 이는 세기말에 이른 인류의 세계적인 범위에서의 문화반성사조와도 거의 동보적인 진보가 아닌가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자기 민족의 자아, 자리매김을 똑똑히 알아야 세계조류에 어울려 늘 국제감각, 민족감각, 세기감각을 가지고 바로 살아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들은 자기 민족의 렬근성, 약점만 보고 장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자비감에 빠지는 현상도 있다. 부정만 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진정 우리군체의 장점과 단점을 똑똑히 알고 제 장신으로 살때다. 자기 민족의 장단점을 잘 알자면 참조계, 비교가 있어야 한다. 민족권시각에서는 조선이나 한국의 동족과의 비교가 필요하며 국내시각에서는 앞장선 한족 및 장족, 몽골족 등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그밖에 서방의 민족과의 비교관찰도 있어야 한다. 이런 다원다층적인 시각에서의 비교연구(정신, 관념, 사유방식, 생활방식, 문화습관)를 통해 우리 민족의 장단점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고 우리 민족의 생활, 정신과 시대정신, 세계조류와의 결합에 문화좌표를 두고 매기인이 이 시각부터 민족의 군체이미지를 재부각하기 위해서 자각적으로 노력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한두사람이 아니라 우리 200만 동포 매개인의 지속적이고도 보편적인 끈질긴 노력에 의거해야 한다.



락된 우리 군체의 형상을 재수립하자면 적어도 10년 내지 20년좌우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구력이 극히 필요하다. 나발을 불지 말아야 한다. 착실히 살아야 한다. 그 어떤 개인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민족군체를 허울로 내걸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그것은 동물세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3) 민족이미지의 재부각. 우리 민족의 형상을 재수립해야 할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 민족군체의 형상이 저락, 지어 소질이 타락된 현상을 처처에서 누구나 보아낼수 있을 것이다. 그런때문인지 인제는《가무의 고향》이란 말도 미칭(美稱)으로 잘 들려오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아직도 우리 군체에 대한 심한 선입견이 깊이 형성되여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일부 장소에서 떠도는 우리 민족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정신병자들의 잠꼬대를 듣고 위축되여서는 안된다. 다른 족속들에게서 해괴망칙한 일들이 고질적으로 더 많이 심하게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억천만번 죽더라도》 민족의 위상을 위하여 매개인이 강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지금은 자비감이나 위축감에 빠져 소극적으로 살 때가 아니다. 위기감과 절박감은 있어야지만 소극적인 자세는 버려야 한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관건이다.

---민족의 삶의 사고 (2)



필자는 앞에서 우리 중국 200만 동포의 삶을 두고 다음 세기를 뜻있게 맞이하자면 (1)100년동안의 력사경험의 총화(2)비교시각에서의 민족의 장단점에 대한 옳은 리해(3)민족이미지의 재부각(4)민족의 약점에 대한 문화적인 반성 등 이러한 몇가지 측면으로 나느어 말했다. 이번에는 더 구체적으로 민족이미지의 재부각을 위하여 필요한 아래와 같은 몇가지 관계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저 한다.

1. 감성사고와 리성사고의 관계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가진 자랑스러운 민족이다.우리는 이 세상 그어느 민족보다도 짝지지 않는 고상하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언어를 가지고있으며 우리 민족의 예술은 오늘도 온 누리에 빛을 뿌리고 있다. 리상적인 사고보다 감성적인 사고에 치중하는 우리 민족의 문화는 일정한 력사환경에서 아주 고무진취적인 역할을 하여 우리 민족에게 생존과 투쟁의 용기를 주었고 우수한 예술을 창조하였다.조선족을 놓고 보면 문학과 예술 등 분야에서 뛰여난 성과들을 쌓아올린 이들은 적잖지만 과학이나 학술분야에 몸바쳐 나선 이들이 적거니와 그 성과도 미미하다. 이는 날따라 과학화되여가는 현시대와 대비할 때 하나의 커다란 격차가 아닐수 없다. 리성형,철학형의 리지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독일민족은 국제정세의 여건외에《독일은 나,나는독일이다》란 철학사고에 바탕하여 수십년만에 민족의 통일을 실현하였고 유태인은《성경》의 신앙,리성의 응집력에 의해2000년만에 이스라엘국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말로는《우리 민족》,《우리 고향》,《우리 조상》하고《우리》를 많이 부르지만 50여년이 지난 오늘도 반도의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고 애만 태우고있지 않는가.정말 통탄스러운 일이다.우리는 장사귀처럼 보글보글 잘 끓지만 대걱가마차럼 부글부글 크게 끓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족들은《만만디》라지만 무슨 일에나 진득이 오래붙어있으면서 일에 큰축을 낸다.우리에게는그네들이 갖고있는《군자복수,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즉 군인의 복수는 10년후에도 늦지 않다는 그런 깊은 마음, 인내성, 지구력이 있어야 할줄 안다.

2. 사무응부형과 실무연구형의 관계

해방후 조선족의 간부대오정황을 보면 각 분야에서 많은 성적을 쌓아올렸지만 절대다수는 사무더미에 빠져 눈앞의 일처리에 응부하는 생존범위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무에 분주한,《공로는 없어도 로고는 있고 로고는 없어도 피로는 있어!》의 류형이 많은 반면에 진짜 전문가, 연구형의 리론사상가가 적다. 깊이 파고들려 하지않는다. 진득이 붙어 몇삽 더 파면 깊은 우물을 파헤칠수 있겠는데 연찬하기 싫어한다. 우리에게는 실무가, 연구형의 실속있는 간부, 인재가 많아야 할 것이다. 수박겉 핥기로는 대사를 성공하지 못한다.《만만디》라고 느린 성미라고 탓알 일이 아니다. 영길현에 살던 나의 한 한족친구는 부대에서 제대되여 연길에 정착한후 지난해까지 자전거, 열쇠수리부를 18년 운영해 30만원을 벌었다고 전한다. 층집도 사고 버젓이 산단다. 그 친구에게도 두 아이가 있는데 열심히 돈을 벌어가지고 대학공부까지 마칠 포부를 갖고 신나게 일한다. 이것 역시 삶의 보람이 아닌가. 그래 꼭 사무응부형의 벼슬자리에 있어야 삶의 보람이 나던가. 또 하나의 례를 들어본다. 지난해 나는 우리 거주지 부근 쓰레기통을 번지는 한 60여세 한족할머니를 보고 한달에 얼마 버는가고 물었더니 몇해전에 가목사에서 아들을 따라 연길에 왔는데 집에 박혀 그저 놀기는 어떠해 아들며느리가 말리는데도 밖에 나와 쓰레기통을 뚜지는데 보통 한달에 500-600원, 어떤 때엔 700원도 번다고 했다. 번돈으로 손자손녀의 뒤바라지를 한단다. 이런 노력이 실무형 인간의 삶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 누구더러 쓰레기통을 번지라고 강요할 의향은 전혀 없다. 다만 그 삶에 열심하는 자세를 눈여겨볼뿐이다.

3. 앵무새교조형과 진취창조형의 관계

수십년의 연변상황을 보면 이곳의 실정에서 출발하여 일을 하기보다 시기시기에 따라 우에서 내려오는 일반 정책이나 임무 따위를 앵무새처럼 외우고 전달하는데 그치다보니 실제문제는 별로 해결하지 못한다. 례하면 다른데서 다락밭을 하면 다짜고짜로 이곳에서도 만인을 동원해 다락밭을 하고 또 다른 지방에서 무슨 구호를 웨치면 이곳에서도 따라서 그 구호를 웨친다. 이런 작풍을 모택동주석은 벌써 항일전쟁시기에 《상급의 지시에 교모하게 응부하고 태공하는》나쁜 버릇이라고 비평한바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앵무새교조형일군보다도 실천창조형의 일군이 많아야 한다. 왜 우리는 교조형의 사람들이 많아지였을가?



여기엔 력사문화배경적인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조선민족의 심리경향은 많이는 감성에 편중한 호동형 (好動型)에 속한다. 오랜 옛날 수렵유목의 농경종족이였던탓인지 우리 민족은 이웃사이에도 나들이를 즐기고 술마시기 좋아하고 노래와 춤에 천질을 가지고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2-3세되는 어린애들이 록음기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본능적으로 덩실덩실 춤가락을 움직이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이런 어린이들의 자동적인 춤가락에서 우리는 민족의 동년시대의 내면세계--잠재의식--예술창조의 재능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은 대뇌구조적으로 우뇌(右腦) 가 비상히 발달한 상상력의 민족인 것이다. 그와는 달리 한족같은 민족은 좌뇌(左腦)(주로 언어와 론리를 관리)가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극이나 이야기형식의 소설형인 《수호전》,《삼국연의》그리고 재담 등 문예형식들에서 그 일면을 찾아볼수 있다. 항상 어디 떨쳐나서기 좋아하는 성미에 상상, 예술에 능한 우리 민족은 의례 과학과 예술에 뛰여난 창조형의 군체로 나서야 했으나 지금까지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대단한 유감이 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가? 력사적으로 보면 조선민족은 재난과 불행이

어느 민족보다 심한 민족이였다. 지리적으로 보면 북에는 강성한 중국대륙에 강으로 막혀있고 삼면이 바다에 싸여 기선이 없는 옛날에는 대단한 저애력으로 되어 사람들에게 억압감을 준 것이다. 게다가 임진왜란,샤만호침입사건,살수대전,청군홍두군의 침입,일제의 조선강점36년 등 일련의 사건이 련속부절히 지속되였다. 이런 사건들은 무심중 우리 민족심리에 억제심리를 형성시켰다. 그뿐만아니라 기사년(1869년)에는 조선함경북도 두만강일대에 큰흉년이 들어 하는수없이 흰두루마기 겨레들이 남부녀대로 이땅에 찾아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인해 고국에서 살수 없어 동북땅에 둘어온 것이다. 그러나 청조당국은 두만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도강죄를 처했다.

이런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조선족은 심각한 민족적인 패배감,상실감,불안전감을 늘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족은 대륙의 변두리-사골에 막혀 페쇄족인 환경에서《일출이작 일락이식(日出而作,日落而息)》,즉 해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돌아와 쉬는 농경생활방식을 100여년 지속하여왔다.해방후 수십년간에는 또 련속부절한 거세찬 계급투쟁,정치운동 바람에 본디 눈치보기(노예성)에 버릇됐던 우리 족속에게는 위축심리가 생겼다.이뿐이 아니다.유교문화관념의 영향하에 3강5륜 등 각양각색 계률(戒律)의 속박으로 우리 민족의 봉건보수적인 사상관념은 공자의 고향인 곡부(산동성)에서보다 몇백배 더심하게 뿌리박게 되었다. 조선말의 계칭이나 족친관계계보의 복잡성에서만도 유교관념이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대력사문화배경을 알아야 우리 민족의삶의 자세가 어떻게 돼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고 자기 갈길을 올바로 걸어갈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걸어갈 길을 제대로 걸어가자면 우리 군체의 매개인은 진정 옳바로 사유하는 생명체로서 사유할줄 알아야 한다. 사유할줄 안다는 것은 오성(悟性)에 의해 어떤 사물을 제대로 똑바로 깨치고 터득해야 한다는것이다. 즉 오성에 의해 언제나 그 무엇을 얼마간이라도 발견하고 창조하면서 민족정신과 시대정신과 세계대조류와 합류점에 좌표를 두고 우리는 영원히 현대개방진취형의 민족이미지를 재부각하여 이 나라의 모범공민, 자각된 력사주인공으로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

---민족의 삶의 사고 (3)

1. 민족이미지 재부각의 리해

필자는 우에서 우리 민족군체의 앞으로의 삶을 두고 민족이미지의 재부각의 문제를 제기하였었다.

미족이미지의 재부각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절박하다. 이는 개혁개방시대와 우리 민족의 문화소질의 상대적인 저락 사이에 생긴 격차로 하여, 민족의 진취적인 삶을 위하여 객관적으로 제기되는 요구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경시조선족경제문화협회에서는 얼마전에 전문회의를 열고 어떻게 북경시에서 조선족의 형상을 수립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렸다고 한다. 이는 조선족의 새로운 문화적인 각성을 표징하는 하나의 실례로 될 것이다 최근 10년간 우리 조선족사회에서는 늘 민족의 렬근성 또는 약점들을 론의하고있다.혁명전쟁년대에는 적과의 투쟁이 주되는것이고 또 그투쟁에서 떨친 조선족으 혁혁한 공훈으로 하여 우리는 늘 긍지감을 느끼였다.

우리는 항일전쟁이나 해방전쟁에서 세운 력사공적으로 하여 자랑할만한 영웅적인 민족군체였다.해방전쟁때는 참군열조를 일으키고 누구보다 먼저 싸움터에 내달려갔다. 이 땅의 맨 동쪽끝에서 해남도 막끝까지 쳐나가 붉은기를 꽂고 개선하여 공화국창건에 크게 기여하였다.이는 력사사실,공적이였다. 그리하여 한때 우리는 해방의 열광,생활의 격정에 휩싸여 살다보니 자기의 약점에 대한 사고를 깊이할기회도 없었다. 공화국창건후에도 거듭되는 정치운동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보니 역시 자기에 대한 리해를 깊이할 겨를이 없었다.《문화대혁명》후에 몇번 자아의 반성,리해의 기회는 있었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번마다 놓쳐버렸다. 몇차례의《자산계급자유화》를 반대하는 정치기압 때문에 남의 눈치룰 보아가며 살아가다나니 자기를 반성해볼 기회를 또 놓치고말았던것이다.그러나 그래도 한족은 자신에 대한 문화반성을 잔행하였었다.문예분야만 보더라도 이른바《문화대혁명》의 죄악과 재난을 비판하는《상처문학》,《반성문학》의 소설들,한민족의 우매성,렬근성을 반성한《붉은수수()》등 영화들이 나오지 않았던가.그러나 조선족사회에서는 기껏해서 한족의 뒤꽁무니를 다라서 흉내내는 모방작소설이 얼마 나왔을뿐 민족자아를 심각하게 리해하는 학술적인 연구도 미미 하였다. 어쩌다 2년전에 연변대학 리홍우교수의《조선족의 전망》이란 저서가 한권 나온 정도였다. 물론 우리가 민족자아를 깊이 반성하지 못한데는 상기한 정치기후의 압력에 숨돌릴새 없은 것이 사실이지만 또 연변은 내지와 멀리 떨어져있어 문화정보가 한동안 지나 전달되기에 참조계가 모자라 무슨 일을 하려 해도 심중에 파악이 없게 되는 원인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은 조선족은 소수민족, 약한 민족인데 자기 약점을 말하면 망신스럽다고 여기면서 자기를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심리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 내외의 분별은 있어야지만 또 무분별하게 내부에서도 민족의 약점을 꼬집으면 망나니라 욕질하기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우리 민족의 장점과 약점에 대해서 조선과 한국에서도 아직까지 심도있는 고차원의 리론적연구가 결여하다.그러기때문에 그들의 연구결과를 멍하니 기다릴게 없이 우리 중국대륙에 사는 조선족들이 주체성을 발휘하여 민족의 장단점을 다원다층적시각에서 비교연구해야 한다.우리는 조선족이지만 저도모르게 대륙기질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높이 지각하고있어야 한다.남을 기다리다가는 밖에 방아를 건 격이 된다.민족의 통일도 우리군체는 얼마나 오래동안 기다렸던가.그러나 오늘도 그꼴이다.우리는 이나라에 뿌리박고 중국의 공민답게,주인공답게 모든 일을 자신있게 해제껴야 한다.우리를 구원할 사람은 오직 우리들자신뿐이다. 이런 사정을 념두에 두며 필자는 이땅에 사는 우리들의 긍지감과 자아비판의식을 이렇게 시조시로 써보았다.

강을 건너 천리길 눈보라 만리길

남북사방 헤맨 끝에 뿌리내린 연변땅

지사들 담찬 숨결이 마을마다 숨쉬는 땅

만세속에 노래속에 수십년이 흘렀네

인제도 어물어물 취기에 젖어 또 살겠나

새세기 개선문에는 어떤 꽃을 우리 얹나

(《연변》)

2.민족의 약점의 반성과 한우리정신의 고양

우리에게는 민족긍지감이 있어야지만 또한 자기의 약점에 대한 명철한 리해가 있어야 한다.어떤 사람들은 다른 민족도 모두 약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군체에 대한 연구룰 게을리하는것같다.전임 미국대통령 레간은 임직기간에 사무책상곁에《초라한 미국인》이란 저서를 둬두고 틈이 있으면 필요한 대목을 번져보고 무엇을 생각한다고 하였다.온 세상 사람들의 선모의 눈길을 끄는 나라인데도 무슨 미국인의 초라한데(암흑면,약점)를 더 연구할 필요가 있겠는가.그러나 레간은 계속 자국국민의 약점을 연구하였던 것이다. 자기 약점을 알고 부단히 시정하여나가기에 지금 미국경제는 장성하는 추세를 보이고있는 것이 아닌가.노상《만세!》만 부르며 자아도취에 빠져서 사는 족속은 암흑인것이다.우리 군체가 인구의 지속적인 부증장(負增長)에다 또 경제,정치,문화 등 여러면에서 남보다 미약하기에 자기를 잘모르고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노상 마비상태, 취기에 젖어 산다면 나중에 정말 더 미약하게 되어 마른명태처럼 빼빼 말라버릴 우려가 전혀 없다고 누가 단언하랴.



제를 부흥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려면 다른 모든 조건외에 우리 군체가 하나로 뭉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러나 우리 민족은 유전인자탓인지 소위《반도성격》때문인지 내부소모 즉 서로 긁기,설치류의 고약한 버릇이 악성순환하는 사이에 힘이 약해서 침략당한 일,남의 기시와 멸시를 받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기술,류통사업,직업교육,어린이교육을 중심과업으로 내세운 북경 한 우리과학무역유한공사는 기업정신을《하나로 된 우리앞에 세계가 열립니다. 세계시장이 좁아지고있습니다.지금 우리가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세계로 가는 길은 더욱 좁아집니다.무한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우리가 하나되는 한우리정신뿐입니다.》라고 서언하고 있다. 이것은 한 기업의 정신뿐일것이 아니라 전반 우리 조선족사회의 시대정신, 기백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무릇 위대한 민족이나 거물급인물들은 모두 부단한 자아반성과 비판속에서 살면서 그 민족의 정신을 리드해간것이였다. 전임 미국국무경 헨리 키신져는《대외교》라는 저서에서 300년래 세계 주요국가의 외교정책과 력사에 대해 서술하면서 근 100년래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거물급의 력사인물들을 평가하였다.

루즈벨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루즈벨트는 정력에 넘치는 령수인물이다. 그는 개인의 매력을 빌어가지고 체제의 제한을 받지 않는 작풍을 보유한 정치 조정자와 원견자의 결합체였다. 그에게는 직감에 의해 행사하는 일이 리성분석보다 더 많았다. 그는 개성적으로는 엄중한 결점이 있었다. 례하면 오만하거나 로망을 쓴다거나 언사가 각박한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결점은 그의 우점에 의해 많이 감추어져버렸다. 그는 미국을 국제지위에 이끌어올린 대통령이였다. 당시 환경에서 전세계가 전쟁이냐 평화냐, 진보냐 하는가는 그의 원견성과 확고부동성에 달린것이였다.》여기엔 자기 나라 령수인물에 대한 긍정과 력사적인 문화반성, 개인의 결점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 있다.



져는 전임 프랑스대통령 드골에게 또 이런 평가를 주었다.《드골에게는 누구보다 강렬하게 구라파의 강성을 다시 떨쳐보려는 의식이 있었다. 류행되는 견해는 이 프랑스대통령은 고집스럽고 자대한다고 질책했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이와 정반대임을 누가 모르랴. 그는 반드시 실패감, 박약감으로 가득찬 프랑스를 다시 떨쳐세워야 했던 것이다. 프랑스인민은 너무도 많은 열정이 부서지고 너무도 많은 환몽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라에 대한 의심증이 많아졌던것이였다. 그리하여 드골은 일종 교오 심지어 교만한 심리상태로써 오래동안 불안감에 싸여 있던 민심을 보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던것이다.》 여기서는 드골의 포부와 기백 그리고 개인적인 결점도 국가의 강성과 어울려서 평가되고 있다. 분석이 객관적이다.



력사인물에 대한 키신져의 평가에서 우리는 그 분석의 객관성은 물론 드골에 대한 평가에서 한 개 민족의 대표자로서의 강렬한 력사문화비판의식과 거대한 진취정신을 읽을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군체에도 거대한 력사문화반성의식이 극히 필요하다. 자기 민족에 대한 심각한 문화비판을 통한, 시대적인 자각에 바탕한 군체적각성이 우리 조선족의 다음세기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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