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산
지난 달 29일 나는 안도를 가면서 조양천ㅡ로투구ㅡ석문을 경과하는 낡은 길을 버리고 팔도에서 곧장 고속도로를 탔다. 바로 하루 전에 연장(延長)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였으니 신나는 행차였다.
비좁고 판난 아스팔트길,그리고 오르고 내리는 꼬불꼬불한 고개길에 대면 신선놀음이다.왕복 4차선이 그림처럼 펼쳐 있고 높은 산은 턴넬로 뻥 뚫렸다. 마치도 컴퓨터로 운전유희를 하듯이 고속도를 달리는 일이 성수가 났다.더구나 팔도에서 안도까지 고속도로비가 10원이다.조양천 도로수금소에서 10원,로투구 턴넬 수금소에서 10원씩 내야 하는 낡은 도로에 비해 절반이 남는다.길이 좋고 거리가 짧아서 기름값 절약하고 시간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하니일거삼득,꿩먹고 알먹고 둥지 털어 불 때기다.
그런데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불빛에 반사되여오는 길가 도로표식에 씌여진 조선글 오자가 굴착기가 되여 나의 가슴에 깊은 턴넬을 팠다."운전조심"이 "운전즈심"으로 깡그리 통일되여 있었다.소학교수준만 되여도 "조심"을 "즈심"으로 만들지는 않았을것이다.아마 도로표식을 만든 사람들이 한족들이 아니면 조선글을 전혀 모르는 조선족이였을것으로 짐작이 간다.한자로 된것은 오자가 하나도없는것을 미루어서 차라리 틀리게 표기할거면 순전히 한자로만 할 것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튿날 명월구에서 이도백하를 가는 구간에 도로표식을 보고는 고속도로의 도로표식의 오자는 오히려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한총구(寒葱溝)"마을이름이 "한충구"로 되여 있다.중국에서지명은 한자색인을 기준으로 하는것이 원칙이다.을 찾을수 있는 수준이면 이런 오식은 피면가능하다.葱은 충이 아니라 총이다.영경에 좀 못미쳐서 새로 생겨난 휴계소는 "속영소(宿營所)"가 되여있다.한자를 직역을 하면 숙영소가 된다.그런데숙영소는 군대가 병영을 떠나 숙박하는곳으로서 간판만 보고는 길가던 사람들이 감히 발길을 돌리지 못할것이다.설상가상으로 틀린것을 또 조선글로 틀리게 표기했으니 죽은것을 또 죽이는 셈이라 하겠다.
갈수록 심산이라는 말이 있다.나는 이 속담의 의미를 연변의 조선어표기를 통해서 다시 음미한다.
◎ 개구리가 올챙이때를 잊다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에 나는 안도현내의 항일련군유적지를 답사했다.마침 국경절이라서 혁명유적지답사는 나름대로 의미가 짙었다.
시인 하경지가 썼듯이 "산마다 진달래,촌마다 기념비 (山山珍達來,村村紀念碑)"가 무색할 정도로 연변은 빛나는 혁명전통을 가진곳임에 손색이 없다.그중에서도 안도현은 항일련군의 활동이 가장활발했고 전과도 가장 뛰여난 고장이다.옹성라자회의,황구령전투,한총구매복전,대사하전적지,내두산혁명근거지,고성촌 무명렬사 등등 동만항일운동사에서 특기할만한 사건들과 인물들이 속출한유서 깊은 곳이다.
이제는 모두가 70여년전의 일,선렬들이 피로 쓴 력사의 편장들을복원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것이다.그런데 복원은커녕 있던것도 없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왔다.
현재 안도현 고속도로 수금소 동쪽 켠 넓은 공지가 옹성라자마을 터자리이고 여기에서 1932년 12월에 동만특위의 령도하에 항일투쟁을 무장투쟁으로 전환할데 대한 중요한 회의가 열렸었다.그 자리에 연변력사연구소에서 "옹성라자회의기념비(甕聲拉子會議紀念碑)"가 세워있었다.그런데 고속도로가 생기고 공지에 건물공사가진행되면서 기념비는 사라졌다.
황구령,한총구전적지에는 기념비는 물론이거니와 혁명렬사기념비도없다.내두산혁명근거지 기념비는 길옆 산 언덕 무성한 풀밭속에 그대로 있었지만 비문도 거의 다 사라져서 버림받은 어떤 콩크리트표지판을 련상하게 했다.
대사하전투가 있었던 영경향에는 혁명렬사기념비가 세워져있었는데바람에 나붓기는 쓰레기가 기념비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기념비가 자리한 산언덕이 통째로 쓰레기장으로 되여있었다.기념비에는 "혁명선렬들 영생불멸하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새농촌건설운동이후 산골마을의 주택들도 벽돌기와집으로 변모하고 아무리 깊은 산골일지라도 아스팔트길이 펼쳐졌다.그런데 혁명렬사기념비만은 초라한 모습 그대로 방치된 상태이다.집 짛을 때 벽돌과 기와 몇장,길 닦을때 콩크리트 몇 포대만 보태면 훌륭한 기념비가 만들어질것인데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고있다는 사실이다.
수풀속에 묻혀버린 선렬들의 피로 물든 사적지를 돌아보고 이름 한자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는 선렬들의 충혼이 깃들어 있는 기념비를 바라보면서 나는 올챙이때를 잊은 개구리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연변일보 2008-10-16 18:3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