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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문화관광자원화에 몇마디/조성일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08.14일 12:24
조성일

력사명소, 유적도 엄청난 관광문화자원

관광산업이 다른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높은 수익성을 갖고있으며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높은 산업이기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광산업을 경제적차원에서만 운운하는 편향이 있다. 하지만 이 산업을 보다 효률적인 산업으로 인상시키고 그 수익성을 보다 높이려면 관광을 경제적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그 추진책을 강구함이 자못 중요하다.



관광은 하나의 문화이다. 문화로서의 관광개념은 폭넓고도 력동적이다. 심충적인 측면에서 관광의 의미를 따져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의 시공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서 그곳의 력사와 문화를 보고 즐기고 체험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 자기의 삶과 지식의 에네지를 재충전하는것이 관광이라고 할수 있다.



관광객들의 관광대상과 내용은 다종 다양하다. 그 지역의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기상천외의 자연풍경일수 있고 력사적인 유물, 유적이나 력사적사변의 현장일수도 있다. 또한 그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갖가지 모습이나 축제, 전시회,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체육경기, 시장, 각종 문화행사, 풍속습관 등이 관광대상이 되는가 하면 그 지역의 이름난 문화도시 , 상업도시의 참관, 해변이나 산속의 휴가, 어느 식당에서의 특별음식의 음복, 그 지역특산물이나 문화상품의 구매 등도 관광에 수용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한가지 강조하고픈것은21세기에 진입하여 관광객들이 자연풍경의 관광을 중시함과 더불어 표면적인 유람에서 초탈하여 그 지역 주민들의 독특한 력사적인 발자취와 삶의 모습이 응결된 관상점(觀賞点)을 에워싸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지역의 력사와 문화의 저력을 깊이있게 리해하려하며 정신적인 감수와 지식흡수에 한결 더 모를 박는것이 하나의 추세로 되고있다는 점이다.



력사, 그것은 선인들의 삶의 자취이자 그 민족이 갖고있는 고유의 경험으로서 력사는 소중하고 중요하다. 력사가 없는 민족은 민족의 뿌리가 없고 력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이 없다. 따라서 인문자원인 력사적인 현장과 력사문화유적들을 문화관광 명소 및 력사공간으로 조성하여 당지 주민들의 력사교육, 애국주의교육, 전통교육장으로 제공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 타지역 관광객들의 구지욕과 문화체험 및 문화교류에 새로운 흥분점을 제공해주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현대 관광문화발전의 요청이요, 우리의 관광산업을 더욱 차원 높은 력동적인 문화마당으로 수익성을 포괄하는 효률적인 산업으로 비등케 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말하고싶다.

력사문화관광자원 개발의 부족점

연변은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있는 조선족의 자치구역이요 동북아세아금삼각지이다. 연변에는 백두산과 같은 자연풍경외에도 조선족의 독특한 문화가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력사유적과 유물이 많으며 명소들이 곳곳에 산적해있다. 연변의 관광산업은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이런 우세를 리용하여90년대중반부터 쾌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자기의 위상을 떠올리고있다. 연변관변측의 소개에 따르면 이 몇년동안에 연변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년평균 20%, 36.5%속도로 장성하였으며 지금 연변의 관광산업은 길림성 관광산업의 앞장에서 달리고있다고 한다.



그런데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연변관광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보면 문제점도 적지 않다. 연변의 관광산업에서 자연자원 개발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있는데 반하여 인문자원개발 특히 력사문화자원 개발과 시장화는 더더욱 한심한 처지에 놓여있다. 백두산, 두만강과 밀착된 인문자원개발이 부진상태에 머무르고있는가 하면 연변의 많은 력사유적과 력사명소들이 관광산업의 본격적인 각광을 받지 못한채 소외되고있다. 이 기회에 몇가지 사례만 들어보기로 하자.



1919년 3월 13일에 일어난 ‘3.13’반일운동은 조선족을 비롯한 연변의 3만여명반일군중이 조선의 ‘3.1’운동을 성원하여 룡정에서 벌린 성세호대한 반일운동이다. 이날의 반일운동은 지방군경과 일제의 탄압을 받아 진압되였고 19명의 의사가 희생되였다. 그러나 이 반일운동의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다. 룡정의 ‘3.13’반일운동은 삽시간에 연변의 방방곡곡을 휩쓸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3월 13일부터 4월말까지 연변 각지에서는 각종 반일집회와 시위행진이 도합 47회 거행되였는바 참가인수는 무려 8만 6670여명에 달했다. 그 규모나 시간적으로 전례가 없은 이 반일운동은 조선족인민들이 일제를 반대한 투쟁의 시작으로서 조선족인민대중의 불요불굴의 반일투쟁정신을 과시하였고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정책과 조선의 식민통치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조선반도의 반일애국운동을 지대하게 고무하였으며 중국 동북의 여러 민족 인민대중의 반일투쟁을 대대적으로 추동하였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3.13’반일운동에 대한 기념사업이 정부 행정차원에서 떳떳하게 추진되지 못하고있으며 그 투쟁의 현장을 세인들의 이목을 끄는 력사관광명소로 만들지 못하고있다. 다만 량지가 있는 지성인들이 주축으로 되여 여러 방면의 후원을 받아 룡정시 동남교외의 합성리에 ‘3.13’반일의사릉을 소박하게 구축하였을뿐이다.



룡정의 ‘3.13’반일운동후 연변 각지에서는 허다한 반일무장단체들이 분분히 출현하여 반일무장투쟁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1920년 1월부터 10월사이에 진행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봉오동(枫吾洞)전투와 청산리대첩은 조선족반일무장운동사상 빛나는 한페지를 기록하였다. 이 두 전투의 승리는 동북지역의 조선족인민들의 반일투지를 고무한 동시에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반일열정도 지대하게 불러일으켰다. 당시 중국 각지의 신문들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소식을 륙속 보도하였다. 이처럼 중대한 력사적인 의를 갖고있는 두 전투의 현장은 력사관광자원으로 높은 중시를 받지 못하고있으며 괄목할만한 력사관광 명소 및 력사공간으로 조성되지 못하고있다.



1931년 “9.18”사변후 연변지역에서1932년부터 조선족인민들은 각지 당조직의 령도아래 항일부대를 건립하고 항일유격근거지를 창설하고 항일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 중국의 항일전쟁승리에 마멸할수 없는 업적을 쌓았다. 14년간의 동북항일투쟁에서 조선족은 항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그 어느 민족보다도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다. 조선족의 수많은 우수한 아들딸들이 이 전쟁에서 자신의 귀중한 생명과 청춘을 바쳤다. 조선족의 대집거구인 연변만 하더라도 3,000여명의 우수한 조선족투사들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



관계부문의 통계에 따르면 항일전쟁시기 연변의 렬사는3125명 (남자 2787명, 녀자 338명), 그중 조선족이 3026명이다. 항일렬사중 군급간부 4명, 사급간부 10 명, 퇀급간부 36 명, 그중 조선족 군급간부가 2명, 사급간부가 10명, 퇀급간부가 30명이다. 이밖에 조선족백성들이 일제의 《토벌》과 탄압밑에 살해된것은 더 헤아릴수 없다. 연변만 놓고보더라도 1932년에 전 연변적으로 감행된 적들의 대《토벌》에서 4,000여명의 조선족들이 살해되였으며 수십개의 조선족마을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 동북항일전쟁에서 조선족이 치른 대가는 실로 헤아릴수 없는바 인구비례를 놓고 보나 력사적인 사실을 놓고보아도 세계전쟁사에서 보기 드물다고 말헤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광복전 조선족항일무장투쟁의 현장과 력사유적들이 적지 않은 경우 방치상태에 있으며 일부가 개발도상에 올랐으나 안고있는 문제점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가지 더 짚고넘어가고픈것이 있다. 룡정시의 명동은 력사사상 우리 조선족이 정착한 최초로 되는 삶의 터전이며 조선족의 근현대교육과 반일민족교육의 요람이며 반일운동의 중요한 기지이며 우리 조선족의 저명한 저항시인 윤동주선생이 태여난 고장이다. 따라서 조선족의 현대사를 말할때 명동을 외면할수 없다. 이를 자각한 연변의 지성인들은 외자에 기대어 윤동주생가, 명동교회를 복원하였으나 그에 대한 운영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있으며 관광산업의 종합서비스시설이 안되고있는 상황이다. 더욱 아쉬운것은 우리 조선족학교의 시원으로 되고있는 지난날의 명동학교가 복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관계부문의 중시도가 높지 못하며 투자열이 랭각상태에 처하고있다.



모두어 말하면 조선족은 중국혁명과 건설을 위하여 크나큰 기여를 한데 반하여 조선족의 지난날의 발자취와 삶의 모습과 밀착된 력사현장과 유적들을 관광자원화하여 본격적으로 개발하거나 육성함이 부족하다. 무었때문일까?

대응책의 급선무는 인식전환

연변관광산업을 더욱 높은 차원에로 나래치게 하려면 상술한 문제점과 부족점을 해결하기 위한 갖가지 대응책이 요청된다. 그중에서도 조선족의 력사관광자원에 대한 인식전환이 급선무라고 지적하고싶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관광은 하나의 문화로서 관광은 인간 삶의 질에 직결되고 문화교류와 친선의 력동적인 마당으로 되기에 문화와 밀착되지 않은 관광산업을 생각할수 없다. 관광객들은 문화인프러가 잘 구축되여있는 관광지로 향하는것이 하나의 풍향으로 되고있다. 백두산과 같은 자연경물 관광에만 편중하는 획일적인 관광프로그램은 점차 다양해지는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시킬수 없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연변의 매력은 궁극적으로 문화, 특히 조선족의 력사와 문화이다.



따라서 우리는 연변의 관광산업의 도약을 안아오려면 경제적인 차원과 더불어 문화적, 력사적차원에서 관광에 연변고유의 력사와 문화를 접목시키는 관광문화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에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요청된다.



필자의 생각에 따르면 연변의 조선족력사관광자원에 대한 인식에서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문제가 존재하는것같다. 연변의 어떤 사람들은 “3.13”반일운동이거나 봉오동전투거나 청산리대첩이거나 서전서숙이거나 명동학교거나 사이섬이거나 일송정이거나…등등을 한국,조선과 련계시키면서 이런 력사현장, 유적지 개발은 이른바 “민감한 문제”로서 관광자원화하는것에 한해서는 십분 조심해야 한다고하면서 그것들의 적극적인 개발에 나서지 않는것이다. 필자의 소견에 따르면 이것은 그릇된 인식요, 편향이라 믿어진다.



중국 조선족은 이주민족으로서 광복전 조선족의 투쟁사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있다. 중국 조선족은 력사적인 원인으로 하여 이중력사사명을 지니고 조선반도의 혁명과 중국혁명을 위해 분전하였으며 많은 경후 조선반도의 투사들과 한 전호속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변경작전을 진행하였다. 하기에 중국조선족 특히 연변조선족의 반일 혹은 항일투쟁은 많은 경우 조선반도의 투쟁사이자 중국 조선족의 투쟁사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고 상기한 투쟁사를 말하거나 관광자원화하려면 그것은 한국의 것이니 조선반도의 것이니 하면서 의식적으로 회피하거나 모르쇠를 놓거나 거부감을 느낀다. 만일 이런 인식과 론리에 따라 처사한다면 광복전 연변의 조선족 반일투쟁의 현장과 유적, 조선족의 지난날 삶의 모습과 발자취가 많은 면에서 조만간에 사라지기 마련이라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지난 7월 24일 연변력사학회에서는 길림성사회과학원과 연조선족자치주 관계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편찬, 출판한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중문, 64만자) 간담회를 연길에서 열었다.



이 간담회에서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의 편찬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준수하였다고한다. 무릇 중국경내(주 광복전)의 중국조선족, 조선인, 한국인의 활동을 원칙상에서 중국조선족력사 범주에 넣었으며 무릇 조선, 한국 사무(事务)가 중국조선족과 관련되지 않은것은 서술하지 않았고 무릇 단체의 리더,부대의 인솔자가 조선인 혹은 한국인이지만 단체 혹은 부대의 다수 성원이 조선족일 경우에 그 단체 혹은 부대를 서술범위에 넣었다.



간담회에서 연변대학 박창욱 력사교수는 “중국조선족은 중국혁명과 조선(한)반도혁명을 동시에 했다”고 력설하면서 극우 혹은 극좌로 조선민족의 력사를 평가하는것은 력사사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연변대학 최홍빈 교수는 “이 책은 조선족혁명투쟁사 연구의 범위를 명확히 했기에 이중 력사사명을 갖고 온 조선족을 연구한 력사학자들의 집합”이라고 말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력사의 변증법이다. 필자가 생각컨대 이 책의 출판은 조선족의 력사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 잡을수 있는 있는 리론적 정책적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향후의 조선족력사연구와 조선족력사를 관광자원화하는데 푸른등을 켜주었다.



사마천은 중의 “진시왕본기”에서 “지난 일을 잊지 않는것은 후세의 스승이다(前事之不忘, 後世之師也)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인즉 지난 일을 잊지 않고 본보기로 삼으면 어제의 력사가 래일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것이다. 우리 조선족의 투쟁사는 중화민족 투쟁사의 조성부분으로서 우리는 떳떳하게 나서서 지난날의 투쟁사를 오늘과 래일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연변의 력사문화 유적과 력사현장을 관광지로 개발, 활용하는것을 통해 혁명전통교육을 진행하며 연변의 이미지와 위상을 높이며 우리 당의 민족정책을 세상에 광범위하게 홍보하며 국제적인 력사문화교류를 다그치며 연변광관산업과 경제진흥에 박차를 가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희망사항이다. 이것은 협애한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강조하고싶다.



지금 연변의 상황을 보면 조선족에 련관된 적지 않은 력사문화 유적들이 훼손을 넘어 멸실될 가능성조차 제기된다. 그러므로 조선족의 력사문화유적들에 대한 인식전환과 안고있는 문제점에 대한 심각성을 피부로 절감하고 빠른 시간내에 조선족력사문화유적에 대한 전면적인 관광자원화 전략을 세우며 국내외의 자본 투자를 적극 유도하여 연변의 력사문화의 관광지 개발과 기반시설을 정비하며 또한 연변의 력사문화 유적과 변경의 생태환경, 민속, 풍경 등을 접목시켜 특화된 국내외적인 관광명소로 만드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행정과 민간부문이 손을 잡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관계인사들의 중지를 모으고 조화와 신명으로써 연변관광산업발전이 안고있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008.9 연길에서

주:흑룡강신문 2008.10.18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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