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시' 동인들이 지난 5월 김해 도요창작스튜디오에서 20여 년 만에 만나 시의 역할과 본질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강영환 강유정 박태일 엄국현 이윤택. 도요창작스튜디오 제공
도요문학무크 4호 출간
10년, 20년이 흘러 '도요문학무크'는 어디쯤 자리할 것인가. 넉넉지 않은 형편을 감안하면 최근 4호까지 낸 것은 가상하다. 하지만 고민은 간단치 않다.
우선 성격은 실험적으로 보인다. 돌려 말할 수도 있다. 정체성이 아직은 분명치 않다는 의미도 되겠다. 겉으론 '무크' 타이틀을 내건다. '○년 여름호' 식의 잡지가 아니라 '1호, 2호, 3호'로 이어지니 단행본 쪽에 가깝다. 일정 기간을 두고 나오니 잡지가 아니라 말하기도 어렵다. 도요문학무크는 일 년에 두 차례 나왔으나 앞으론 네 번 정도 낼 예정이다.
"'계간지 시대'는 갔다. 옳은 계간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다음 호가 나오면 생명력을 잃는 잡지는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시인 소설가가 작품으로만 독자를 만나고, 또다시 읽도록 하고 싶다"는 게 편집위원 이윤택의 말이다. 이 실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
80년대 문학 열정 지핀
지역 시인들의 족적 담아
'열린시' 동인 5명 묵직한 좌담
'지평' 시인들 詩心도 듬뿍
그럼에도 매호 이 시대 시와 소설을 작품만으로 담아내고 평가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도요문학무크 4호에선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모색과 시도가 이어지다 한때 주춤하던 부산과 경남 시인들의 족적을 새삼 들춰낸다. 여기에 오늘날 활발하게 활동 중인 지역 시인들의 작품도 싣고 있다.
이번 4호 전면에 동인 '열린시'와 무크 '지평'의 시인을 내세운 것은 오늘날 시단의 '풍요 속 빈곤'을 성토하기 위해서다. 엄혹한 시절이던 80년대에 문학의 꿈을 지탱한 그들의 힘을 새삼 보여 주는 의도는 분명하다. "우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실제 강유정 박태일 강영환 엄국현 이윤택 등 열린시 동인 5명이 20여 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5월 11일 김해. 추억이나 더듬자고 모인 것은 아니다. 신랄한 말들이 쏟아졌다. "소통불능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그게 시 읽는 일인가. 소통불능일 정도로 세계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게 시인가"라는 강유정의 말이나 "무엇보다 시인 스스로 우뚝한 자기 시를 이루지 못한 탓"이라는 박태일의 언급은 날카로웠다. 강영환도 "시인 자신의 카타르시스 해소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윤택은 "내적 율격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시 일부가 소통불능이고 감동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들이었다. 이번 무크지에는 이날 좌담 내용과 열린시 동인의 시가 함께 실렸다.
도요문학무크 4호에 무크 '지평'의 시인 조성래 최영철 이월춘 성선경 최원준 동길산은 시로 참여한다. 문화 탄압이 극에 달한 시점을 살아 낸 '지평'의 시인들에게 창간 30년이 지난 시점에 그 푸른 청춘이 아직도 건재한지를 독자와 함께 살펴보자는 뜻.
'신작시 38인'엔 모처럼 르네상스를 구가한다는 평을 듣는 경남의 시인과 새롭게 약진하는 부산의 시인을 함께 모았다.
부산일보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