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젊은 세대 사이에 ‘패션 아이템’으로 스며들고 있다.
연예인들이 욱일기의 의미를 모른 채 디자인이 예쁘다며 걸쳐 입고 대중 앞에 서기도 했다. 일본이 만화 게임 등 문화산업을 이용해 욱일기를 교묘하게 노출시키며 제국주의 역사를 젊은 세대에 세뇌시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욱일기를 검색한 결과 이 문양을 이용해 만든 티셔츠, 휴대전화 케이스, 열쇠고리 등 다양한 상품이 검색됐다.
심지어 욱일기 자체를 파는 쇼핑몰도 있었다. 한 네티즌이 “역사의식도 없이 물건을 파느냐”고 항의하자 운영자는 “역사적 의미를 떠나 디자인 상품으로 판매하는 제품이다. 취미(취향)로 생각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연예인들은 잇따라 ‘욱일기’ 옷을 입고 나와 물의를 빚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욱일기 문양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가 하트 모양의 욱일기가 새겨진 옷을 입고 가요 프로그램 리허설 무대에 섰다. 지난달 아이돌 그룹 ‘빅스’는 일본 쇼핑몰에서 욱일기와 함께 ‘일본제일’이란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홍보 영상을 찍었다. 네티즌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이들은 “욱일기의 의미가 뭔지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욱일기 스타’ 논란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욱일기는 그저 ‘깃발’로 인식된다. 미국의 유명 DJ 스크릴렉스는 지난달 국내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욱일기 화면을 등장시킨 무대 연출을 했다. 욱일기 디자인을 넣어 제품을 만드는 외국 업체도 많다.
미국의 한 유니폼 회사는 욱일기 로고를 왼쪽 팔에 부착한 옷을 만든다. 나이키 역시 ‘에어조던’ 농구화 깔창에 욱일기를 새긴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욱일기 열풍의 이면에는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일본의 의도적 전략이 숨어 있다. 일본 연예인들은 애국의 상징으로 욱일기 무대의상을 입는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게임 프로그램에도 욱일기 디자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격투기 게임 화면 배경으로 욱일기가 등장하고, 비행 게임 전투기 조종석에는 욱일기가 새겨져 있다. 욱일기 머리띠를 착용한 만화 주인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유명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지난해 11월 미국 맨해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욱일기를 콘셉트로 하는 작품을 다수 선보여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한국외대 이장희 법학과 교수는 “일제의 상징인 욱일기가 문화산업을 타고 세계로 퍼지는 상황이 군국주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며 “욱일기 우상화 기류가 확산되면 한·일 간 외교 마찰의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