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부터 '자급제' 시행, 분실·도난 전화기만 아니면 어디서나 빈 기계 매매 가능
소비자가 유심칩만 바꾸면 돼… 중국·대만 저가폰 크게 늘 듯
휴대전화 자급제(블랙리스트 제도)가 5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휴대전화 유통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휴대전화 자급제'란 소비자가 마치 전자제품을 구입하듯이 대형 마트나 가전 대리점 등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제도다. 앞으로는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통해서만 거래되던 지금의 휴대전화 유통 구조에 지각변동이 생기고 휴대전화 값도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휴대전화 자급제의 핵심은 '유심칩'(가입자 번호와 요금제 등 가입자 정보가 담긴 칩)과 '휴대전화 단말기'를 따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단말기를 대형 마트에서 구매한 후 이동통신사에서 구입한 유심칩만 끼우면 바로 휴대전화 개통이 가능해진다.
지금은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만 휴대전화 구입과 함께 전화개통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사들은 휴대전화 제조사(삼성전자·LG전자·팬텍 등)로부터 휴대전화를 다량으로 사들여 등록한 뒤 요금제와 결합해 소비자에게 파는 형식을 유지해 왔다. '단말기 값+통신요금' 패키지 판매가 관행처럼 굳어진 것. 여기에 각종 판매 장려금과 요금 할인제까지 섞이면서 통신요금 체계는 이동통신사 담당자만 알 수 있는 '난수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휴대전화 자급제가 5월부터 도입되면, 분실·도난된 휴대전화기(이를 '블랙리스트'라고 부름)만 아니라면 어떤 경로로 구입한 휴대전화기에라도 자신이 구입했거나 이미 쓰고 있던 유심칩을 끼워 넣어서 즉시 통화할 수 있다. 따라서 해외에서 구입한 저가 휴대전화나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휴대전화기도 통신방식과 주파수만 맞으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현재 휴대전화 유통을 사실상 과점해온 전국 8000여 곳의 이동통신 대리점 이 외에 대형 마트나 휴대전화 제조사(삼성전자·LG전자 등)의 직영·대리점,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 등이 새로운 휴대폰 유통채널로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동통신사가 강력하게 지켜온 휴대전화 유통의 주도권이 휴대전화 제조업계나 유통업계로 넘어가면서 판매경쟁의 전선이 넓어져 단말기 가격 인하가 촉진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아이폰·갤럭시 등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 안팎에서 형성돼 있지만, 휴대전화 자급제가 도입되면 대형 마트 등에서 중국 화웨이·ZTE나 대만의 HTC 같은 20만~30만원대 해외산 저가 휴대폰이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이 제도가 휴대전화 유통 체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워낙 이동통신사 네트워크의 뿌리가 깊은 데다, 소비자들도 약정에 따른 휴대전화 개통을 '노예계약'이라고 불평하면서도 단말기 가격을 수십만원씩 깎아주는 이동통신사의 '패키지 개통'에 익숙해져 있다. 현재 이동통신사들은 소비자가 다른 유통 채널에서 구입해 들고온 휴대전화기에 유심만 끼워서 개통시켜 줄 경우 요금 할인혜택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유심 개통시에도 할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이동통신사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결론은 미지수다. 또 중국 휴대폰의 주파수 대역이 우리나라와 맞지 않고, 중국 스마트폰 기술이 미흡해 한국 소비자가 선뜻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원준 기자 wjj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