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경력자·불법체류자 등 신분 확인 없이 하루씩 고용
사납금 채우려 난폭 운전, 승객 성폭행 등 범죄 잦아
지난달 21일 오후 11시 10분쯤 충북 청원군 남이면 가마리 도로에서 박모(19)씨가 몰던 택시가 전복돼 뒷좌석에 탄 승객 윤모(17)양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기사 박씨는 속칭 '스페어(spare·예비용이란 뜻의 영어)'로 불리는 임시 기사였다. 박씨는 하루 일당 5만원을 받기로 하고 이날 처음 택시를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등록 스페어 기사 3만명"
'스페어 기사'들이 일으킨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스페어 기사란 운수회사 등에 등록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지정된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등록 상태로 일당(日當) 형태로 돈을 받거나, 사납금을 내는 조건으로 임시로 운전을 하는 기사를 말한다.
이들은 사고 발생 시 보상액 한도가 1억원 이내인 책임보험만 가입하고 있어 대형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정식 기사들은 책임보험 외에 종합보험도 들고 있어 1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해도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운수사업법상 성범죄 등의 전과자는 20년 동안 택시 운전기사가 될 수 없지만 미등록인 스페어 기사는 이 같은 규정과 무관하게 차량을 몰고 있어 범죄 위험성도 그만큼 높다. 불법체류자 등 자기 신분을 내놓고 운전기사로 취직할 수 없는 이들도 스페어 기사로 대거 흘러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민주택시노조 관계자는 "우리나라 택시 노동자는 28만7000여명 정도인데, 이 중 대략 10% 정도를 미등록 스페어 기사로 본다"고 말했다. 3만여명이 정식 등록되지 않은 기사란 얘기다. 이 관계자는 "미등록 스페어 기사는 서울보다 지방에 많으며, 특히 인천 지역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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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격자들이 마구 몰아도 단속과 처벌이 없다
이처럼 문제점이 많지만 불법 스페어 기사들의 운행이 끊이지 않는 데는 택시회사들의 이해관계도 한몫을 하고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스페어 기사는 4대 보험에 가입시킬 필요가 없는 데다 회사 입장에서는 놀고 있는 택시를 내주고 사납금을 챙기면서도 매출로 잡지 않아 탈세 효과까지 본다"고 말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돼 지난 2일 이후 마약·살인·성범죄 등으로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년간 여객분야 운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다. 특히 택시의 경우 금지 기간을 20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스페어 기사는 미등록이라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성범죄 전과자나 불법 체류자 등은 스페어 기사로 지원하는 것이고, 택시를 놀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택시회사들도 이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무자격자도 문제지만 상당수 스페어 기사들이 난폭 운전을 일삼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스페어 기사 최모(37)씨는 "택시 회사에 하루 24시간 7만5000원을 내는 조건으로 스페어 기사를 하는데, LPG값 등은 모두 내가 부담해야 한다"면서 "하루 수입 10만원을 넘기지 못하면 그날 일은 오히려 적자이기 때문에 신호 위반이나 불법 유턴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현실은 이렇지만 미등록 스페어 기사에 대한 규제나 단속은 사실상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스페어 기사에 대한 단속은 행정처분 사항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한다"고 말했고, 서울시 관계자는 "특별히 단속을 벌이지 않고, 관련 통계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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