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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랑, 나눔'으로 피여오른 우리 글 향기(고중조 수상작)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3.11.15일 14:03
대상-내가 가는 길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 고중2학년 3반 한완서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다.

노란 숲속에 두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가 있다. 그때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여섯살 때 나의 앞에도 갈림길이 펼쳐졌다.

나의 소학교입학을 앞두고 부모님과 할머니 사이에 심한 갈등이 생겼다. 산재지구에서 자라면서 언어환경의 영향으로 우리 말을 외국어처럼 알고 컸기에 조선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에 적응하기 힘들거라는 엄마의 주장과 조선족으로 나서 자기 말과 글을 모르면 뿌리를 모르는 것과 같다는 할머니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화약내가 풍기기까지 하였다. 나중에 효자인 아버지의 한표에 힘 입어 나는 끝내 조선족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입학식날 엄마는 핑게를 대고 외출을 해버려서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첫등교를 하게 되였다. 그후로도 엄마는 할머니가 주장하셨으니 나의 조선어공부는 할머니 책임이라는 듯이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으셨다.

하여 내가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 할머니와 나의 고심한 노력이 시작되였다. 우리 말을 모르는 나를 위해 할머니는 숙제를 할 때면 한글자한글자 시정해주었고 자기 전이면 돋보기를 끼고 이야기책을 읽어주었다. 심지어 텔레비죤프로그램까지 한국유선방송을 시청하시면서 언어환경을 개변해주려고 애 쓰셨다. 내가 자모음을 떼고 처음으로 배운 과문을 할머니 앞에서 읽어드렸을 때 할머니의 눈가에 맺혔던 맑은 이슬은 나의 조선어문학습을 이끌어주는 한줄기 빛으로 되였다.

학년이 차츰 높아짐에 따라 할머니는 좋은 시나 문장들을 찾아서 추천해주기도 하고 명언, 명구들을 정리해주고 알기 쉽게 해석해 주기까지 하셨다. 할머니의 이런 노력으로 조선어문에 대한 흥취가 깊어감에 따라 나의 글짓기실력은 눈에 띄게 제고를 가져왔고 심심찮게 잡지나 신문에 글들을 발표하게 되였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눈가에 주름을 지으면서 함께 기뻐해주셨고 그 글들을 스크랩해서 차곡차곡 모아두셨다.

이제 나는 고중생이 되였고 우리 글 작가가 되려는 꿈을 안고 오늘도 열심히 조선어문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 학년은 조선어문으로 대학시험을 보게 되는 마지막 졸업생이 된다. 아래 학년 후배들이 자의든 타의든 조선어문을 포기하게 된데 대해 나는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또 한면으로는 자신이 지금까지 조선어문을 꾸준히 해온데 대해 자부심도 느낀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한족학교에 가서 공부를 아무리 잘한다고 자랑을 해도 나는 부러울 대신 오히려 어딘가 측은한 생각이 든다. 자기 민족의 언어와 문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조선족이라 할 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갈래 길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시의 마지막 련에서처럼 오랜 후날 나는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지만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 길일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길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따라가는 의미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도교원 김홍은

금상-나눔의 깨달음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고중1학년 2반 김정원



나눔이란 인간본성의 기본이다. 나눌 수 있는 건 물질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기쁨, 행복, 경험 등 다양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나는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리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에서 한 친구가 자기의 과자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몹시 놀랐다. 그 친구가 가져온 과자는 요즘 류행하고 있는 신상품이였기 때문이다. 나였다면 운동장 구석에 숨어서 혼자 먹었을텐데…그 장면이 신기했던 나는 그 친구에게 물었다.

“이 과자 정말 귀한 건데 왜 너 혼자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 다 줘버리니?”

“먹어보니 맛있길래 친구들에게 나눠줬지, 모두가 함께 먹으면 다 기뻐할 것 같아서.” 친구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돌아보니 과자를 먹으며 기쁨으로 설레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다. 나누어 먹는 과자 속에 즐거움과 행복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얼마 후, 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며칠 전부터 선생님께서 필요한 준비물들을 잘 챙겨오라고 신신당부하셨건만 내 옆자리 친구는 그것을 준비해오지 못했다. 원래 나였다면 못본채 외면했을테지만 며칠전 과자를 나눠줬던 친구를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모른척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줄 몰라하는 친구에게 내것을 빌려주었다. 마음속에는 이름 못할 어떤 난류가 흘러 지나갔다. 이런게 행복인것 같기도 하고…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맙다 연신 말하며 웃어주는 친구에게서 늘 나눔의 따스함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져 아깝다는 느낌보다 그 뒤로 몰려오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눈다는 건 손해가 아니라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일이였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내가 얻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눔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신뢰를 쌓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도움이 되고 우리가 더 큰 성취감과 목적의식을 느끼도록 도와주며 더 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락원으로 만드는데 중요한 한걸음이 될 수 있다.

/지도교원 강혜숙

은상-아름다운 당신

계동현조선족학교 고중2학년 천금



나의 외할머니는 아주 평범한 분이시다. 150센치미터 가량 되는 작은 키에 짧은 파마머리, 인자함으로 넘친 두눈... 사람들 속 있으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이 73세의 늙은이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다.

내가 태여나서 얼마 안되여 아빠는 한국에 돈벌이 떠나셨기에 외할머니께서는 하남촌소학교에서 퇴직하신 후 안온한 로후를 보내시지 못하시고 한창 학교의 중견교사로 눈코 뜰새없이 보내는 엄마를 도와 우리 가정을 돌보아야 하였다. 3년전 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린 후부터 외할머니 어깨 우의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어머니는 시초 간암, 페암으로 두 남편을 잃으신 외할머니께서 또 딸마저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면 타격이 너무 심할가 갑상선암에 걸린 것을 외할머니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외할머니께서는 어머니가 머리를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지고 얼굴이 눈에 띌 정도로 핼쑥해지자 더는 업무가 힘들어 몸이 좀 상하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려 석달째 몰래 치료하고 있단 얘기를 들은 외할머니께서는 사십에 가까워가는 딸을 품에 꼭 껴안고 푹 젖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은희야, 난 엄마야. 비록 70고개에 올라선 성 쌓고 남은 돌이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엄마란 말이야. 엄마 오늘까지 살아오며 무슨 일 못 겪어봤겠니. 인생이란 그저 이렇게 서로 의지하고 사랑주며 힘든 고비 하나하나 넘기는 거지. 이것아~ 홀로 암과 투병하며 얼마나 힘들었겠어.”

엄마가 할빈에 가서 수술을 치르고 돌아온 후부터 외할머니는 엄마를 부엌일에 아예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고 음식도 맵고 기름지고 짠 것은 일절 하지 않았으며 엄마의 병에 좋다는 버섯, 콜리플라워(菜花), 호두, 단백질이 높지만 지방이 낮은 된살, 계란, 소고기류로 올렸다. 하지만 외할머닌 마냥 인자하신 것만은 아니였다. 엄마가 잠자는 시간이 늦어져 밤 열한시를 넘기거나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질 땐 외할머니는 예전 교단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때처럼 엄마를 훈계하셨다.

“은희야, 너 교원이고 엄마야. 지금 네 그 몸을 상전처럼 모시며 보살펴야 할 때 병이 좀 낳았다고 이게 뭐니. 아플 때 자제력 있고 꿋꿋하게 투병하는 것도 애들에게 훌륭한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거야. 뭐 교단에서 하는 교육만 교육인 줄 알어.”

책임감 높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외할머니는 한평생을 베풀며 본보기적으로 살아오셨다.

외할머니는 사형제 중의 맏이였다. 계동현성에서 살게 되면서 외할머니는 농촌에 살고 있는 동생들의 자식들을 하나하나 집에 데려와 조카들을 학습환경이 더욱 훌륭한 계동현조선족학교에서 공부시켰고 반듯하게 교육하여 대학교까지 보내였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가을철이 되면 고추랑, 가지랑, 무우랑 말리워선 조카들이 살고 있는 남방으로 부쳐보냈다. 지금 외할머니는 계동현조선족학교 퇴직교사협회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협회에서 노래도 가르치고 시사학습도 시키고 문구경기도 정기적으로 조직하였으며 지난해엔 또 엄마까지 가이드로 동원하여 로인들을 모시고 연길, 훈춘, 도문, 돈화 등지를 려행하셨다. “아이구, 애가 따로 없다니깐.모두 할미, 할배가 되여서두 돈화의 연명호(雁鸣湖) 온천에서 목욕할 때 보니 애들처럼 깔깔 웃고 물장구를 쳐대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로인들을 모시고 길 떠나 이런저런 근심이 많았지만 정말로 유람을 참 잘 조직하였다 싶어. 우리 훌륭한 가이드 참 수고 많았어! ”

외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엄마를 향하여 엄지를 추켜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늘 “천금아, 외할머니한테서 따라배울 것이 참 많아…”하시며 외할머니를 칭찬하실 때가 참 많다. 그중 어머니께서 가장 감탄하는 것은 바로 외할머니의 혼인에 대한 태도였다. 외할아버지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신 몇년 후 외할머니는 재혼을 하셨다. 하지만 두분이 함께 생활한지 얼마 안되여 그 할아버지는 페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였다. 주위 사람들도 그렇고 할아버지의 자식들도 그렇게 이렇게 로년에 재혼하여 만난 부부는 의례 아픔이 나면 헤여지고 각자의 자식들이 모셔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아니셨다. 외할머니께서는“혼인이 어디 애들 장난이요? 서로 마음이 맞아 살다가 병이 났다고 버리면 그게 뭐가 되오? 난 그이의 안해요. 마지막까지 그이의 곁에 있을거요.”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할아버지를 정성스럽게 간호해주셨고 마지막 길까지 바래주셨다.

아, 민들레꽃처럼 소박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힘들 땐 항상 묵묵히 지켜주며 가장 포근한 사랑을 주신 외할머니~ 그이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우리 인생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셨다.

/지도교원 송련희

동상-아버지의 외투

가목사시조선족중학교 고중3학년 리가심



가을이다. 계절이란 참으로 소리없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학교 복도창문턱에 놓여있는 석류나무잎마저 노랗게 단풍이 들어 유별나게 아름답다. 그러한 들 창밖의 나무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금황색, 주황색, 푸른색, 자주색 가지각색으로 단풍든 나무들은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쌀쌀한 바람들이 거리를 휩쓴다. 조선어문 선생님이 내여준 작문제목 과 을씨년스럽고 추운 가을날씨의 대조적인 상황에서 나는 머나먼 그제날의 추억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때 치치할시에 계시는 고모의 슬하에서 치치할시조선족소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치치할시의 가을은 고향보다 더 춥고 스산하다.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문득 오셔서 나를 데리고 집에 돌아간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오셔서 기뻣는지 집으로 간다고 기뻤는지 입지 않고 두었던 새옷을 입겠다고 하였다. 아마도 멋 따고 싶은 년령이였는지도 모른다. 고모와 아버지는 옷이 얇아서 이 날씨에 입으면 춥다고 몇번이고 번갈아가며 말렸지만 둘 다 나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롱담조로 “좀있다 추우면 우릴 원망마라. 그땐 ‘약이 없다’”라고 하셨다.

고모와 작별하고 길을 나서니 추웠다. ‘어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 다’고 했는데 부모님 말을 안 들었으니 손해를 보게 되는구나 하면서 추워 떨면서도 괜찮은 척했다. 기차역에 나가니 바람이 더 기승을 부리였고 살을 파고 드는듯 했다. 오돌오돌 떠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우스운듯 “우리 딸 안춥지? 메리뚱런나!”고 롱담하시면서 나를 떠보셨다. 내가 반응이 없자 이번엔 “아빠 말 안듣더니 후회되시죠?” 라고 하시면서 롱담 반 진담 반 하셨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머리를 수그리고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는 듯 마는 듯 했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났다. 아버지께서 외투를 벗어 나한테 씌워주셨던 것이다.

“아버진 춥지 않아요?”

“난 안에 두껍게 입어서 괜찮다.”

아버지의 외투는 컸다. 나를 두벌 싸고도 남을듯 했다.

아버지의 외투는 따뜻했다. 따뜻함이 온몸을 휘감았고 난류가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의문스러웠다. ‘아버지는 왜 추운 날씨에 외투를 입지 않아도 춥지 않을가? 진짜 안춥나?’

그러나 나의 손을 잡은 아버지의 손도 따뜻했다. 아버지의 큰 손안에 든 나의 작은 손으로 모든 따뜻함이 전해오는 듯 싶었다. 아버지는 춥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집에 돌아가서도 아버지는 감기 등 증상이 없기에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이제서야 좀 알 것 같았다.아버지라고 왜 춥지 않았으랴! 딸이고 사랑이였기에 춥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였기에 춥지 않은 척 했을 것이다.

몇년이 지났다. 여전히 춘하추동이 뒤바뀌여 푸르렀다 누르기를 반복하지만 아버지의 사랑만은 몇년전에 갑자기 멈춰버렸다. 다시는 아버니의 따뜻한 손도 잡을 수 없고 롱담도, 유모아적인 말도 들을 수 없다. 더는 아버지의 말을 어길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추운 가을날의 따뜻했던 난류만은 여전히 남아 나의 몸속에서 흐르고 있다.

이렇게 이색적인 가을은 여전히 찾아와 나를 아버지의 추억속으로 이끌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다시는 아버지와 함께 감상할 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사랑만은 나를 이 알록달록한 가을속에서 행복으로 피여나게 한다.

아버지의 외투가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주었다면 아버지의 사랑은 나에게 따뜻함으로 남아 더욱 용감하고 힘있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격려해주고 있다.

/지도교원 서홍매

동상-인생의 계단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고중3학년 1반 강나원



“으앵~”

인생의 입구에서 한 작은 생명이 속박에서 벗어나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였다.

그는 말똥말똥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이 하나 둘 많아지고 하나 둘 사라진다.

남은 두 사람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따스한 품과 자상한 언어속에서 그는 기는 법을 알게 되였고 일어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까지 알 수 있었을뿐만아니라 언어로 표달도 할 수 있게 되였다. 인생의 입구에서 그는 “인간”으로 되였다.

“가거라, 앞을 향해 전진하거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앞을 향해 달려보거라” 이것이 그가 손을 놓기전 마지막으로 한 당부였다.

아장아장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선명하고 인생은 흐릿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배워야 할 것은 많고도 많았다. 부모의 품에서 마음껏 애교를 부려야 할 나이에, 먹고 싶은 간식을 마음대로 먹어야 할 나이에, 따뜻한 아침 해살을 듬뿍 받았을 때 어느 크거나 사소한 순간에 그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희미하게 깨달았다.

폴짝폴짝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조용하고 인생은 떠들썩하다. 그는 학교를 다니게 되였고 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였다. 부모가 바쁠 때 고독해하지 않도록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같이 뛰놀고 서로 격려해주고 함께 진보하는 사람들, 그에게는 친구가 생겼다. “세사람이 같이 겉게 되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도다.” 라는 명언처럼 재미나는 게임을 함께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눠먹을 때, 기쁘거나 슬픈 일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떠올리는 순간, 그는 나눔의 기쁨을 배우고 느꼈다.

저벅저벅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단이하고 인생은 다양하다. 그는 흩날리는 벚꽃잎과 그 밑에 서있는 사람에게 시선이 끌려 눈을 뗄 수 없었다. 미풍이 그의 머리카락을 불어올렸다. 방긋 웃던 그 사람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걸어갔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동시에 마음은 따뜻해지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말 못할 사랑에 빠졌다.

엉기적엉기적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정연하고 인생은 혼란이다. 학업, 가정, 인간관계… 바쁘고 분망한 나날이자 허무하고 공허한 하루하루였다.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임무는 쌓이기만 한다. 앞길은 막막하고 출로는 보이지 않았다.

터벅터벅…

홀로 계단을 오르고 있지만 귀가에 복잡한 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다. “넌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견지하면 돼. ”, “곧 도착할거야. ”,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성큼성큼…

그는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써가서 힘껏 앞으로 한발 올라선다. 그는 인생의 첫단계를 넘어 새 출발을 향한 갈림길에 다달았다. 그는 예전처럼 앞으로 전진 또 전진하지 않았다. 그대신 이번에는 뒤돌아보았다.

계단은 선명했고 그 위에는 그가 오래동안 힘들게 걸어온 발자국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흐릿하고 혼란했던 인생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사람을 보았다. 친구들, 친척들과 선생님, 그리고 엄마와 아빠. 그는 머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는 진정한 감사를 깨달았고 또 행복을 진일보로 리해하게 되였다.

그는 진정한 “인간”으로 탈바꿈했다.

/지도교원 안예화

우수상-나는 내가 되고 싶다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고중2학년2반 박연우



사람은 그 누구나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남다른 기질과 남다른 외모, 남다른 심리와 남다른 대뇌가 있다. 하지만 이 복사하고 모방이 많은 세상에서 자신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까지도 빼앗아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적부터 남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공부를 해야 했었고 배우기 싫은 피아노도 배워야 했었다. 성적이 안좋으면 꼭 꾸지람을 했었고 집안 사람 눈치를 봐야 했었다. 나가 놀아도 꼭 남들보다 한, 두시간은 더 빨리 집에 들어가야 했고 거의 놀 사간도 없었다.

5살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고 그림을 잘 그리던 나는 소학교 때 처음으로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였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그림에 대해 흥취를 더 가지게 됬고 미술을 배워 미술전문으로 발전하려고 마음을 굳히게 되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나는 조심스럽게 나의 꿈을 집사람들 앞에서 꺼내보았다. 나의 리상이였고 꿈이였기에 당연히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 줄 것이라고 김치국을 마셨다.

어른들은 나의 꿈을 반박해 버리고 말았다. 돈팔면서 쓸데 없는 미술을 배워서 무엇을 하냐고 하면서 나를 꾸지람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깔아둔 코스를 따라 사범대학을 졸업해서 학교에서 교원 직을 하라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용기를 내여 어른들의 요구를 반박하였다. 그리고 의학원에 가려고 결심하였다. 하지만 고중의 학업이 너무나도 어려웠고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점점 알아듣지 못하는 학업에 대해 더욱 싫증이 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들의 맘에 들지 않는 짓을 하고 떼를 쓰며 심리상담소까지 가서야 미술을 배우는 것을 억지로 동의받았다.

며칠이 지났을가? 엄마가 갑자기 내 방에 들어오더니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심지어 욕설까지 퍼부어가며 미술 그딴 것을 다 때려치워라고 했다.

오전 학업을 끝내고 잠을 청하려던 나를 꾸지람하는 엄마가 너무도 낯설었다.

드디여 그들이 나를 조종하는 끈을 끊어내고 나도 하고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들의 말만 듣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정상인처럼 말이다. 왜 굳이 나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단점을 잡고 얽매이는지 모르겠다. 마치도 나를 인형처럼 그들의 손으로 조종하고 그들이 생각하는데로 움직이게 하였다.

나는 내가 되고 싶다. 내가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것을 배우지 않고 다른 애들처럼 행복하고 자유롭게 성장하고 싶다. 꼭 그들이 정해준 동작과 대사를 표현하는 인형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존재로 되고싶다. 내가 잘하는 것, 나의 유일무이한 그 면을 발휘하면서 꿈을 찾고 싶다.

내가 되고싶다.새장속에 갇혀 같은 말만 반복해야 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내 속생각을 마음대로 털어놓으면서 소탈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극장에서 남의 조종을 받으며 움직이는 나무인형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꿈을 찾으면서 살고 싶다. 그 길이 가시밭 길일지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

언젠간 나는 그 가면의 "나"를 벗어 던지고 진정한 내가 되고 싶다.

/지도교원 박금희

우수상-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고중3학년 3반 고미연



모든 사랑이 다 언제 어디서나 그의 시중과 뒤바라지를 해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손을 놔주는 것도 한가지의 사랑이다.

둥지를 떠나지 않는 새끼 독수리는 영원히 나는 법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손을 놓은 사랑은 어미 독수리가 직접 새끼 독수리를 절벽에서 밀어내는 순간이라고. 순간의 아픔과 고통이 치밀어 오겠지만 새끼 독수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울창한 나무의 비호에서 떠나지 않는 작은 나무는 영원히 씩씩하고 무럭무럭 자랄 수 없다. 우리들 한테도 그렇다, 놓아 주어야 자신의 삶을 살게 되고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이다. 손을 놓는 것은 방임이 아니다. 놔주는 사랑이란 자녀가 홀로 험악한 세상에서 자유로이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해준다. 좌절과 곤난을 당했을 때에 하나의 위로와 격려가 된다.

사랑이 없으면 세계는 깜깜하고 칙칙한 무덤으로 되고 말 것이다. 사랑은 부모님들께서 리별에 대한 무한한 근심과 말씀이고 선생님의 호의한 비평이고 친구 서로지간의 배려와 관심이고 모르는 사람과 주고받는 하나의 선의가 담겨있는 눈길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를 사랑하든 아니면 사랑을 받아들이든 그러나 사랑은 한계가 있어야 한다.

이런 새가 있다. 단단한 가시가 있는 나무가지로 둥지를 만들고 깃털 버들개지로 바닥을 깔아 둥지를 부드럽게 한다. 그러나 새끼새가 성장하면 어미새는 그 물건들을 죄다 치워 버리고 단단한 나무가지만 남긴다. 그리고 새끼새를 나무가지에서 강박적으로 쫒아낸다. 갑자스레 추락하게 된 새끼새는 느껴지는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젖먹는 힘을 다 써서 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것을 비로서 배우게 되였다. 사랑은 꽃을 손바닥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홀로 비바람을 겪게 하고 해빛을 받게 하는 것이다. 민들레엄마는 민들레 씨앗에게 편안한 생장환경을 제공하고 세심한 보살핌을 제공한다. 그의 사랑은 씨앗을 포위하여 그들이 아무런 근심 걱정없는 자유로운 민들레로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닥친 세찬 비가 그것들을 뒤집어놓았다. 장밤 내린 비에 지친 씨앗은 민들레엄마의 랭정함이 마음에 찔려 마음먹고 어머니 곁을 떠났다. 혼자 새로운 환경에서 자라는 동안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은 끊이지 못했을 것이다. 원망되고 싫었다. 그러나 씨앗이 자라 민들레 어머니가 되고 다시 비가 내리는 날이 되던 때 씨앗이 하나둘씩 떨어져 갔다. 그들은 민들레 엄마에게 도움과 만류를 갈망했지만 민들레 엄만 손을 놓아야만이 씨앗들이 자랄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놓아주는 사랑으로 성장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였다. 사랑은 무조건 자녀를 부모 곁에 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홀로 경험하게 하고 인생의 신맛과 쓴맛을 느끼게 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자녀의 결점을 지적해주고 자녀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극복하는 것을 가르쳐주며 주는 것이다.

어떤 사랑은 손을 놓는 것이고 어떤 사랑은 손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를 위해서라면 놓아주는 것이 좋지 않을가?

/지도교원 안예화

우수상-사랑의 나눔

오상시조선족고급중학교 고중3학년 차문옥



말이 고마우면 비지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뜻은 친절한 말로 고맙게 대해주면 상대편이 마음을 후하게 쓰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사랑을 나누면 두배로 된다고 한다. 나는 누군가한테서 두배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다.

나의 할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난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사랑이 어떤 맛인지 몰랐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옆집할머니 손녀사께서 나의 ‘친할머니’역할을 해주셨다. 어렸을때 저녁밥을 먹은후면 간식과 음료를 들고 옆집문을 둥둥 두드린다. 그럴때면 손녀사께선 활짝 웃으시면서 나를 반겨주며 “이놈 또 화토배울라고 왔구나~”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신다. 화토를 놀때면 승부욕이 강한 나는 질 것 같으면 때를 썼다. “앙,할머니 한번만 봐주세요~” 매번 내가 때를 쓰면 나를 타일러주시고 귀엽게 봐주시며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셨다. 손녀사집에 갈때면 먹었던 사탕이 있었다. 무슨 사탕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탕은 어느 사탕보다도 달고 맛있었다. 아마도 손여사의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어서 그런가 보다. 사탕 한알의 나눔이 성장과정의 나에게 진정사랑의 나눔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고추가루용 빨간 고추다. 나는 오늘도 주인따라 트럭에 앉아 시장에 나왔다. “아이고, 힘들어라! 령감~아들에게 보내줄 고추가루니까 잘 해보자구. 나는 말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눈을 떠보니 나는 마당에 누워 있었다. 해빛이 쨍쨍 눈부시게 비쳤다.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깨끗하게 행주로 목욕을 해주셨다. “아! 칼이다!” 금방 향수를 하려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칼로 나의 몸을 아작을 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선 나를 또다시 해빛아래에 눕혀줬다. 며칠이 지난후 나는 마른 고추가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나를 집안의 장판우에 눕혀주고 따뜻하게 이불까지 덮어주셨다. “령감, 고추색갈예쁜거 보소. ”한참을 분주한후 할머니께선 드디여 쏘파에 앉으셨다.“아들~너에게 보내줄 고춧가루하느라고 요즘 련락을 안했네~넌 어때 일하느라고 힘들지? 엄만 집에서 편안하게 놀면서 고추가루밖에 해줄거 없네.” 이 말을 들은 난 마음이 찡해났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셔서 나에게 목욕도 시켜주고 비가 오면 비맞을 까봐 걱정하고 쉴틈이 없었다.할머니의 사랑이 몸의 피로도 잊어버리게 하는 마법이 있는가 보다. 며칠후면 나는 고추가루가 된다. 보잘것 없는 평범한 고추가루지만 구미를 당기게 하는 채소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게 나에게는 일종의 행복이다.

손여사는 손수로 만드신 고추가루로 밑반찬을 해서 우리 집에 준적이 아주 많다. 부지런하신 손여사는 이웃에게 많이 베풀어주신다.손여사께선 나의 텅빈 할머니 사랑을 나누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워낙 부지런하셔서 항상 많이 도와주셨고 좋은 이웃이 되여 주셨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나에게 남부럽지 않게 포근한 사랑과 안전감을 주셨다. 손여사는 나에게 할머니 사랑이 넘치는 동년을 이루어 주셨다. 이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고 서스럼없이 도와주고 싶을 뿐만아니라 손여사의 부지런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나눔을 배워가고 싶다.

/지도교원 리련화

우수상-행복의 지름길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고중3학년 1반 채성우



열 사람이 책 한권을 읽으면 10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행복의 정의를 노으라면 매 사람마다 다 각기 부동한 견해를 가질 것이다. 매 사람마다 행복을 찾고 있다.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행복의 지름길은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과정에 있는 행복

우리는 항상 행복을 찾기 위해 분투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왕왕 실패로 될 때가 많다. 그러면 당신은 자기의 행복을 찾는 길을 한번 되돌아보라. 피타는 노력으로 걸어온 길에서 당신은 오직 실패만 느꼈는가? 우리의 학습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중 3년 동안 열심히 학습하면서 한번 시험에 락제하여서 앞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일가? 아니다. 앞에서 얻은 모든 지식, 방식, 근로를 전부 던질 것일까? 우리는 경험한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긍적적인 태도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중에서의 노력과 더 나아가서 실패의 경험을 가져온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자기 손에 있는 행복

행복은 항상 자아만족으로 차넘치고 있다. 자기만족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생활상태, 내면욕구, 가치관에 대해 만족하고 자기의 가치를 느끼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을 대면할 때 긍적적인 태도와 강인함을 보증할 수 있다. 우리 학생으로 놓고 말하면 공부할 때이다. 자습 시간에 자기한테 목표를 정하고 완성했으면 학습할 동력이 생기고 스스로 자기절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의 유감과 상처를 떨쳐버리고 현실을 접수할줄 알아야 하며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락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인지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고 자아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오늘의 자신은 어제 자신보다 더 진보하고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남의 영향을 받지 말고 자신과 자신을 비교해서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진다.

사랑에 있는 행복

행복은 항상 사랑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곁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보자. 사람, 동물, 대자연을 힘껏 사랑해보라. 자신의 미운 사람을 사랑해보라, 당신은 더 많은 친구가 있을수록 행복해지고 동물을 사랑하면 친절감이 생겨서 행복하고 자기가 기른 식물에게 사랑을 주면 그는 예쁘게 살아서 우리한테 행복을 가져올 것이다. 다른 사물을 사랑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 자신은 항상 마음속으로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의 생활이 더더욱 충실하고 행복해진다.

행복의 지름길은 많기에 우리 자신이 혼자 찾아서 발견해야 한다. 타고르의 시구처럼 “행복은 우리가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변의 모든곳에 있으며, 이를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마음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자!

/지도교원 박춘매

우수상-추석

치치할시조선족학교 고중3학년 김희진



추석날이 다가왔다.

이번 추석련휴도 작년과 같이 국경절이 있어 련8일을 쉬게 된다. 하지만 고중 3학년인 나에게는 긴 휴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우리에겐 사흘, 겨우 3일이였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낮다는 생각에 나는 어쩌면 고중 졸업전의 마지막으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이 사흘동안 실컷 자고 놀려고 마음속으로 계획하였다.

그런데 이 계획은 집에 도착할 때부터 그르쳤다.

“이번 추석에 외할머니댁에 가기로 했다. 할머니도 같이 가신단다. 거기서 하루밤 자고 올 계획이니 그리 알고 준비해.”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였다.

“엄마, 꼭 가야되? 이번 추석 나 안가면 안되?”

왔다갔다 하는데 2시간이나 걸리는 로정은 멀미가 심한 나에겐 지옥과도 같은 존재였고 고작 사흘뿐인 방학을 이틀동안 시골에 가 있는게 아까웠다.

“오랜만의 휴가잔니. 외할머니가 널 많이 보고싶어 하신다. 할머니도 오래 못 보지 않았니. 이제 만날 기회가 몇번 남았다고... ”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에 마음이 잿더미 같았다.

이튼날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외할머니댁으로 출발하였다.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은 내마음처럼 침침하고 무력하였다.

‘이런 날씨에 보름달이나 보이겠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우리는 도착하였다. 외할머니는 차의 시동소리에 부엌일을 손 떼고 문어구에 나와 우리를 마중하러 나오셨다. 이번 추석도 많은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일일이 인사를 하고 나는 멀미때문에 방안에 잠깐 누워있었다.

“희진아, 나와서 같이 사진 찍자.” 이모가 나를 부르셨다.

나가보니 다들 지정된 자리에 서서 촬영사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초 지연 촬영을 누르고 나는 재빨리 자리에 뛰여가 선 후 ‘찰칵!’ 소리를 기다렸다. 사진이 잘 찍혔는지 체크하는 기간 나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내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였다.

외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 할머니의 전과 다른 몸매, 이모의 희슥희슥한 머리카락, 엄마의 주름 잡힌 얼굴...

그 순간 세월의 흐름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사진속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제 만날 기회가 몇번 남았다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추석이라는 의미, 명절은 왜 있을가? 평상시에 자주 못만난 가족을 명절이라는 날을 빌어 못한 말, 분주하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로 일분이라도 더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갖도록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오느라 고생했다. 자! 얼른 먹자. 희진아, 많이 먹어!”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상을 보니 외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찰떡, 순대, 된장찌개 등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차려져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덮여 달의 륜곽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나의 마음은 여느때보다도 행복감이 차넘쳤다. 나는 음료수 잔을 들고 외쳤다.

“할머니! 외할머니! 오래오래 앉으세요!”

/지도교원 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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