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함을 으뜸으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우려낸

뜨끈하고 그윽한 할머니의 맛

누룽지에 끓인 물 부어

저절로 우러난 쌀뜨물의 조화

그것은 별미이다

깊은 맛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지는

할머니의 그 맛

별다른 비법은 없지만

우리네 따스한 인정이

우러나오는 숭늉,

상 우에 숭늉이 한대접 놓여있다

오솔길 락엽

처음 길을 낸 사람 어디 가고

고요한 숲 속의 오솔길

다람쥐는 어디로 갔나

락옆은 락엽끼리 어깨 맞대며

다리 동개고 누워

저들끼리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가

부채살 같은 해살이 눈부시다

바람이

나무잎을 노랗게 물들이더니

길게 뻗은 오솔길은

오래 멈춘 기차길 같다

둘이서 손잡고 걷던 길

그 너머 흰 드레스 입은 겨울이

손짓하고 있을가

몸도 늙고 마음도 멀어진 오솔길엔

바람이 불어와 구름이 어지럽다

온몸으로 시를 쓰며 살아온

가을나무여,

마음에 흠결 생긴

내 청춘이 숲을 향해 탄식한다

/신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