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김선녀할머니 4년째 자체 온라인방송 견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 주고 싶다
집에서 핸드폰으로 방송원고를 록음하고 있는 김선녀할머니
목소리만 듣고서는 방송인이 올해 80대 고령 로인이라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는다. 목소리의 발음, 감정이며, 정서까지... 아무리 귀를 도사리고 들어봐도 힘과 용기를 주는 카랑카랑한 젊은 목소리요, 긍정적인 메시지들이다.
3월 27일, 기자가 연길시 현대국제 아빠트단지에 살고 계시는 화제의 주인공 김선녀(84세)할머니의 집을 찾았을 때 로인은 이번 주 방송할 록음 준비로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
“이번 주는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을 확고히 다지는 주제를 담아 공자의 야야기를 방송으로 준비했지요.” 연변도서관에서 추천해줬다는 신간 《공자》이야기책을 할머니는 펼쳐보였다. 서두름이 없이 원고지를 펼쳐들고 조용히 책상에 마주앉더니 핸드폰의 록음기능을 켜고는 익숙한 솜씨로 원고지를 읽어내려갔다...
알고 보니 김선녀할머니가 온라인방송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21년 10월 6일의 일이였다. 할머니는 당시 81세를 의미하는 ‘8학년 1반 친구 방송’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 방송을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근 3년간 김선녀할머니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신이 직접 록음한 음성파일을 위챗에 올려 세상에 내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한주 동안 동분서주하면서 열심히 고른 좋은 글들을 알뜰히 편집하고 록음하여 음성파일을 만드는데 많은 사람들은 김할머니의 방송을 즐겨 듣는다. 김선녀할머니의 로익장을 과시하는 도전정신과 뜨거운 열정이 많은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현재 김선녀할머니가 만드는 ‘좋은 친구 방송’은 연변시랑송협회의 공식계정과 연변도서관 공식계정의 ‘듣는 도서관 방송’을 통해서도 방송되고 있다.
1961년 화룡현방송국에서 방송원으로 사업하던 시절의 김선녀(오른쪽)
알고 보면 김선녀할머니는 일찍 20대 초반이였던 1960년대초 화룡현방송국의 방송원으로 몇년간 사업했던 짧은 경력이 있었다. 그후 여러가지 원인으로 방송원 직을 떠나 다른 일터에서 사업하다가 퇴직했지만 젊은 시절 간직했던 방송원의 꿈은 퇴색하지 않았다. 김선녀할머니는 우리말 방송을 하는 것이 맘속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간절한 소원이였고 비록 몸은 늙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유익한 로후생활을 만들고 싶어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송을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신화서점에 가서 자신의 사비를 털어 책을 사다 보면서 방송하였다. 아무런 보수도, 대가도 없는 온라인방송을 하려고 많은 돈을 팔면서 책을 구입해 들인다는 것도 하루이틀일이지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할머니의 지극정성이 주위를 감동시켜 지금은 연변도서관에서 할머니에게 책들을 제공해준다. 할머니는 매달 5권의 책을 연변도서관에서 빌려와 좋은 내용을 선정해서는 편집방송하고 있다.
스마트기계에 서먹한 로인세대에서 핸드폰을 리용한 록음작업을 무난하게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긴 마찬가지이다. 방음시설이 없는 서재를 록음실 삼아 쓰면서 편집기도 없이 한글자라도 틀리면 다시 록음하고, 그렇게 중복해서 록음하다 보니 때로는 30분 분량의 방송내용을 온 하루 록음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짜증 내거나 실망하지 않았고 하나하나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어려움 속에서 성공과 행복을 느껴보는 방송작업을 근 3년째 견지해오고 있다.
지난해 국경절에 집에 놀러 왔던 북경의 큰딸과 사위가 편집기능이 있는 핸드폰을 사줘서 록음이 이전처럼 너무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김선녀할머니는 전에는 원고들을 한글자 한글자 베껴서 작성했는데 지금은 프린터기를 사서 인쇄해서 방송원고를 작성하니 품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기뻐했다. 할머니가 현재 방송하는 ‘좋은 친구 방송’ 에서는 우리 민족의 전기, 영웅인물, 우수한 중단편소설과 수필, 수기 등 훌륭한 문화들을 많이 선양하고 있다.
김선녀할머니는 “늘그막 온라인 방송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나이가 많아도 할 일이 있으면 마음이 젊어지고 건강해진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방송을 하기 전에 할머니는 골다공증과 척추손상 등으로 허리에 보조대를 띠지 않으면 변변히 서있기조차 힘들었고 또 심장병과 고혈압 등 성인병 때문에 약도 한줌씩 먹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서인지 하루하루가 유쾌하고 아픈 줄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 누구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매일매일 벅찬 감격 속에서 마음의 부자로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선녀할머니는 자신의 목소리가 국내는 물론 한국, 미국, 일본 등 외국에 나가 살고있는 우리 조선족들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고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방송을 위하여 더 많은 책을 꾸준히 열독하면서 견식을 넓힐 수 있어 좋고 방송을 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여 정말 ‘일거량득’, ‘일거다득’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전국애심녀성포럼에서 조직한 ‘애심녀성컵’ 제9회 전국조선족녀성 생활수기 공모에서 김선녀할머니가 자신의 온라인 방송생활을 소재로 쓴 수기 가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은상의 영예를 받아안기도 했다.
“8학년 친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노라면 그 방송원이 팔순 넘은 할머니라고 전혀 믿겨지지 않아요. 주덕해 주장, 조남기 상장 등 우리 민족의 우수한 지도자들과 정률성, 리홍광, 김산 등 길이 빛날 우리 민족 영웅들의 사적들에서 큰 감동과 교육을 받았고 잘 모르던 조선족의 력사와 혁명투쟁사를 새롭게 알게 되여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매일매일 할머니의 방송을 들은 청취지자들의 감동적이고 인정 넘치는 댓글들이 줄을 잇는다. 북경 애심녀성협회의 한 지인은 “선생님의 그 도전정신과 열정 앞에 너무 부끄러워지네요. 선생님은 영원한 스승이고 언니이고 로인들의 롤모델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넘치는 찬사와 격려의 댓글을 보내오기도 했다.
“비록 제가 하고 있는 온라인방송은 지상파 방송의 정규적인 아나운서들보다는 수준이 낮고 서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목소리는 가끔 눈물에 젖어 떨리고, 마음속에 솟구치는 격정과 환희가 그대로 진솔한 말이 되고 힘이 되여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 용기와 힐링을 주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 김선녀할머니의 자랑스런 고백이였다.
늘그막 온라인 방송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 오늘도 더 좋은 자료를 찾아 방송을 기다리는 청취자들에게 선물하려고 집문을 나서는 84세 김선녀할머니, 불타오르는 인생의 황혼은 아름다운 법이다.
/안상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