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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들의 우연한 인연이 어우러진 '미니 지구촌'

[기타] | 발행시간: 2013.03.09일 02:36

게스트하우스 주인 올리브(오른쪽 위)는 외국인 손님들이 만든 음식을 자주 얻어먹는다. 심지어 동네에 새로 멋진 카페나 술집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될 때도 있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어쩌면, 어떤 시기 그 공간에 머무는 여행자들일지 모른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Special 지금, 여기] <3> 게스트하우스

거쳐간 장소·스쳐간 사람들… 깊은 밤까지 얘기꽃 두런두런

어느새 한가족처럼 정 수북이… 함께 음식장만 '다국적 잔치'도

"길을 나선 사연은 다르지만 여행은 결국 사람을 향하는 일"

치지직~. 피아르 알랭(29 프랑스)이 달궈진 프라이팬에 버섯을 얹기 무섭게 클레바 닥(49 세르비아)은 소금과 후추를 뿌려댄다. 그래 거기! 조금 더! 조미료를 섞느라 프라이팬은 춤을 추고…, 어쩌다 기름 한 방울이 닥에게 튀었나 보다. "OUCH! Be Careful!" "So~rry"

180cm 장신의 알랭과 다부진 체구의 닥이 버티고 서니 2평 남짓의 주방이 더 좁아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의 요리사' 두 사람은 신이 났고, 부산한 소음과 함께 국적 불명의 요리 향기도 집안 가득 번져 갔다. 1일 저녁 8시,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비밥 하우스(BEBOP HOUSE)'. 굶주린 여행자들의 즉흥 만찬이 시작될 시간이다.

"Do You Want to Join?"

다 해서 여섯 명이 1층 거실 테이블 주변으로 모였다. 프랑스인 스위스인 아일랜드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한국인. 프랑스 후추로 조미한 버섯 요리와 머스터드 소스를 얹은 치킨, 세르비아식으로 졸인 감자가 오늘의 메뉴. 기자가 '미스터 도넛'을 꺼내놓자 "Awesome"이라는 감탄이, 게스트하우스 주인 올리브(가명ㆍ32)가 프랑스산 와인을 꺼내자 "Bravo"라는 환호성이 터진다. 올리브는 "여기선 이런 다국적 잔치가 거의 매일 펼쳐진다"고 말했다.

유일한 식사 규범은 편안함과 자유. 스위스인 로즈위타(49)는 그릇을 들고 소파 팔걸이 위에 걸터앉았고, 닥은 맥주 병을 들었다. 포크 대신 젓가락을 쥐고 김치와 씨름을 하는 이도 있다. 먹든 안 먹든 간섭하는 이 없고, 예법이 어떠니 하며 참견하는 일도 없다. 먹으며 웃고 떠들며 마시는 사이 일본인 다카노리 쿠다마(29)가 들어선다. 멤버들이 한 목소리로 그에게 묻는다. "Do You Want to Join?" 자리를 재배열하는 사이 올리브가 기자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한 가족 같죠? 저기 저 분은 어제 처음 서울 온 분이고, 저 분은 보름 넘게 머물고 있고…."

"Tell Me Your Story!"

여행지의 밤은 수다 속에 깊어갔지만, 누구 하나 일어서려는 기미가 없다. 거쳐온 장소와 스쳐온 사람들 이야기, 살아온 삶의 한 자락이나 마주할 낯선 시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펼쳐 보이는 이도 있다. 결혼 이야기, 한국 정치 이야기, 남북문제, 아일랜드 사태….

피아르 알랭은 "아시아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한국을 선택했다"고 했고, 전태일과 박정희, 재벌이라는 단어도 알고 있는 아일랜드인 에이든 오브라이언(45)은 "한국을 맛보고(taste)싶어서 왔다" 고 했다.

다음은 닥의 차례. "난 닥이다 닥. 치킨. 알카에다 조직원처럼 생겨서 입국할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웃음이 잦아들 즈음 그는, 5년 전 우연히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고 그 묘한 풍경과 분위기에 매료됐고, 직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직장에서도 해고됐고, 더 이상 세르비아에 있을 의미를 찾지 못해 한국에 왔고, 지금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소개로 경남 합천의 지리산 자락에 정착해 토마토와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여긴 한국에서의 내 첫 숙소야. 고향 같은 곳이라 매년 한 번씩 들르는데 그게 오늘이네."

외로워서 떠나온 여행이어도, 긴 여행이 더 우리를 외롭게 하기도한다. 그들을 지금 여기로 모이게 한 것, 또 매일 밤 이렇게 모여 앉게 하는 것도 어쩌면 사람에 대한 허기일 것이다. 낯선 그들은 그 낯섦을 탐닉했고, 거기서 엿보는 차이에 열광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들은 가장 인상 깊은 말은 'Tell Me Your Story'였다.

Happy House in Lonely Planet

겉에서 봐선 하얀 외벽의 평범한 집이지만 현관을 들어서면 인상이 완전 달라진다. 현관 벽부터 각국의 여행자들이 찍은 사진과 보내온 엽서들로 빼곡하고, 다른 쪽엔 남아공, 이란 등지의 지폐 수백 장이 전시돼 있다. 주워온 것들을 손봐 쓰고 있다는 소파와 테이블 사이사이 놓인 국적 불명의 장식 소품들도 구경거리. 대부분 여행자들이 흔적처럼 남기고 간 것들이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일궈왔을 우연의 인연들이, 비밥(bebop)재즈 선율처럼 어우러지는 공간. 그래서 '비밥'하우스일 것이다.

아침 봄 햇살이 따사롭던 4일 오전. 다카노리가 거실의 기타를 집어 들고 베란다로 나섰다. 이어 들려오는 감미로운 기타 선율. 2층 방에서는 에이든이 한국의 고도성장을 소개한 책 를 읽고 있다. 그는 "다른 나라를 공부할 때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해 짐을 꾸리거나, 이미 체크아웃을 하고 떠난 이도 있다. 몇 달 머물다 아예 눌러앉는 이들도 있고, 눌러앉아볼까 모색 중인 이도 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프랑스인 피에르는 올리브에게 월세 32만원짜리 집을 찾았다며, 함께 봐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길을 나선 사연들이야 다 다르겠지만, 공통의 갈망으로 모여든 그들에게 게스트하우스는 숙소 이상의 공간이다.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물건을 도난 당할까 봐 불안할 때도 있고 줄 서서 화장실 가는 게 불편할 때도 있지만, 기타 연주를 듣고, 낯선 음식을 맛보고 또 대접하고, 함께 하는 새로운 여행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금세 작은 가족이 된다. 간섭 없이 주고받는 관심들. 순간일지 모르지만, 거기 여행의 진짜 즐거움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듯했다.

■ 서울의 게스트하우스 현황

서울의 게스트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문화관광부 측은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서울에만 약 160여 곳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숙박시설은 여전히 태부족이다. 서울시는 2015년이면 숙박시설 부족량이, 개장 예정업소를 감안하더라도 하루 평균 1만7,000실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지정제도'(2012년 시행) 등을 통해 게스트하우스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후 관리는 엄두를 못 내는 실정. 인허가가 까다로운 호텔과 달리 게스트하우스는 숙박업 허가만 받으면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고시원을 개조해 간판만 바꿔 단 곳도 있고, 무허가도 난립하고 있다. 질 낮은 서비스로 외국인에게 실망을 안겨주거나 치안 등 말썽에 노출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 비밥 하우스 주인, 올리브(가명, 34) 인터뷰

4년 전 비밥하우스가 문을 열 때만 해도 홍대 주변 게스트하우스는 드물었다고 한다. 지금은 100여 곳에 이른다. 그 사이 비밥하우스는 세계 여행자들의 안내서 <론리 플레닛>에 소개될 만큼 유명해졌다. 올리브(가명 34)는 비밥하우스의 호스트다.

게스트하우스, 어떤 곳인가?

호텔은 세련되고 편안하지만 닫혀있다. 교류가 없다. 게스트하우스는 열린 공간이다. 정보를 교환하고, 친구가 되고, 차를 빌려 함께 여행한다. 사실 아무리 좋은 관광지라도 일주일이면 할 게 없지만 마음 맞는 친구 한 명만 만나면 어디서든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러 게스트하우스에 오는 것 같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고.

어쩌다 시작했나?

여행 좋아하는 친구 셋이서 여행을 자주 못 가더라도 앉아서 여행하는 기분을 맛보자며 만들었다.

영업은 잘 되는지?

월세(350만원) 내고 간신히 적자 면하는 수준? 요즘은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 집 철학이 '수익보다 재미있는 게스트를 받자'인 탓도 있다. 너덧 명 몰려와서 자기네끼리 놀다 잠만 자고 가는 팀보다 혼자 오더라도 다른 사람과 교류하려는 사람을 선호한다.

어려움은?

도난사고나 다툼 같은 일은 다행히 없었다. 다만 정작 내가 여행 못 간다. 새벽에 문의(예약)전화 받고 잠 깨서 짜증날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좋은 여행자들이 찾아와서 나를 즐겁게 해준다. 그렇게 버텨왔다.

기억에 남는 일은?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 친구가 4년 전쯤 여기 머물렀다. 한국을 보고 싶다며 매년 들르더니 어느 날, 어머니를 찾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하더라. 친구들과 백방으로 함께 뛰어다녔는데 기적처럼 어머니를 찾았다. 여기서 상봉했는데,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100명 중 한 명쯤은 이런 놀라움을 선사하는 손님이 있다. 그렇게 맺은 친구들이 내겐 많다.

한국 사람들도 오나?

최근 많이 늘었다. 하지만 영어가 서툴고 쑥스러워선지 외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외국에서 외국 친구를 사귀고 싶듯이, 외국인들도 그렇다. 짧은 영어라도 적극적인 마음이 있으면 외국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는 "손님 적어도 월세 걱정 안 하고, 작은 텃밭이 있어 상추라도 함께 가꿀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갖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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