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의혹 미국인 금융정보… 美정부에 넘겨주기로 합의
스위스 정부가 29일(현지 시각) 비밀 유지 전통을 유지해온 자국 은행들이 탈세 의혹을 받는 미국인 고객의 금융 정보를 미 정부에 제공할 수 있도록 미국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세계적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미국 중심의 세계 금융시장에서 배척당하지 않으려는 스위스의 자구책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스위스는 은행의 고객 비밀 유지 전통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어 세계 최대 조세피난처로 이용돼왔다. 각국에서 세금을 피해 스위스 은행권에 흘러든 자금은 총 2조달러(약 2253조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탈세를 강력히 제재하면서 스위스 은행에도 탈세 의혹이 있는 고객 명단을 넘기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09년 스위스 최대은행 UBS에 미국인의 탈세를 도운 혐의로 벌금 7억8000만달러를 부과하고 탈세 의혹이 있는 고객 4500명의 계좌 정보를 받아냈다. 이어 미국은 조사 대상 은행을 13개로 늘렸다. 올 3월에는 스위스 최고(最古) 은행인 베겔린 은행이 미국으로부터 7400만달러 '벌금 폭탄'을 맞아 창립 272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동안 스위스 은행들은 미국의 금융 정보 제공 요구에 응하고 싶어도 비밀 유지법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고 CNN이 전했다.
스위스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자국 은행들이 예외적으로 비밀 유지법의 저촉을 받지 않고 1년간 미국에 고객의 금융 정보를 넘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미 정부에 금융 정보를 제공할지는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다음 달 의회에서 구체적인 방법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준우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