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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애인끼리 돕고 사는 사회를 위해

[온바오] | 발행시간: 2013.11.26일 01:38
1970년대에 미국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일본의 섬유제품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닉슨 대통령은 사또(佐藤) 총리와의 하와이 정상회담에서 섬유류 제품의 수출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서 사또 총리는 “와카리마시따(わかりました, 알았습니다/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후 닉슨 대통령은 일본이 섬유류 수출을 자제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본 측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미국이 일본에 약속이행을 촉구하고 나서자 일본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와까리마시따”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발끈하기에 앞서 상대의 표현방식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는, 대일(對日) 외교가에서 고전적으로 인용되는 이야기다.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던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보자. 일견 남들이 보면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야말로 피 말리는 고난도의 작업임을 술회하고 있다. 서로 상이한 구조와 표현방식을 가진 언어간 접점에다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까지 함께 맞물리는 상황은 일반인들의 개인적 관계에서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국가의 대외 위상을 지켜야 하는 자리니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통역의 고심참담을 뒤집어 보면 각국 언어가 상이한 데서 오는 답답함과 오해의 소지, 그리고 언어가 반영하는 사회제도와 문화적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아프리카의 가봉공화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공항영접장에서는 어이없게도 북한 국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먼 나라였기에 벌어진 사단일 것이다. 당장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떠나자는 강경파를 무마한 끝에 만찬석상에서 당시 봉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받는 것으로 낙착이 되었는데, 문제는 표현의 수준이었다.

봉고 대통령은 프랑스어로 “매우 유감스런…" 등 외교적 수사를 사용했으나 통역이 기지를 발휘해 프랑스어에는 있을 리 없는 “백배사죄(百拜謝罪)하며…"로 말을 돌렸고, 이로써 양측의 불필요하게 격앙된 감정이 무마되었다는 뒷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미 때는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선물한 김 대통령의 친필 휘호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영어로 풀이하지 못해 직역과 의역 모두 끙끙대다 마침내 “고속도로에 톨게이트가 없다"는 표현으로 이해의 합치점을 찾았단다. 네 글자로 엮어진 한자 고사성어의 풀이를 두고는 미국과 중국의 정상 만남에서도 많은 뒷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지금 못지 않게 독도문제가 불거졌다. 첨예하게 대립된 분위기에서 노 대통령이 일본측과 회담하던 중 상대방의 말을 맞받아 무심코 “그 다케시마(竹島) 문제는…" 하자 엇, 뜨거라! 싶었던 통역이 잽싸게 “독도 몬다이와(독도 문제는)…"로 말을 돌려 국가 정상의 위상을 지켜 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현지 외국어 연설을 두고서도 옳으니 그르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면 현지언어 구사능력에 있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본의 아니게 장애인이 된다. 말하자면 언어 장애인이다. 분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멀쩡한 귀와 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 가능하지 않으니, 이거야말로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이 곳 중국에서 적어도 1년 이상 장기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오직 손짓발짓이나 ‘팅부동(聽不憧, 알아들을 수 없다는 뜻)' 한마디로 때우는 중증(重症) 장애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생활면에서는 제법 유창하다 싶은 이도 가만 들여다 보면 업무적 대화에 들어가면 쩔쩔매기 일쑤이고, 그것도 주로 접하는 해당 분야를 벗어나는 경우 듣기와 말하기에서 대책 없기는 매일반이다. 즉, 중증(中症) 장애인이다.

한어수평고시에서 고득점한 유학생이랬자 사회제도의 상이함 앞에서는 언어구사능력이 무용지물이 되어 ‘상담'과 ‘대화의 진전'이 아닌 쌍방간 ‘독백의 교환'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A분야에서 다년간 현지경력을 쌓았다는 이도 B분야의 화제에 맞닥뜨리면 용어 하나 제대로 못 알아듣기 십상이다.

즉, 그나마 경증(輕症) 장애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이만큼 어렵다. 특별히 중국어를 전공으로 하여 오랜 기간 공부해 왔던 소수의 파견 전문인력,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중국에서 죽 자라온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대부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러한 장애인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한편 언어에는 중증(重症) 장애인이면서도 이른바 전투 중국어에는 강한 분들도 꽤나 많다. 부족한 언어구사능력을 고도의 눈치와 기지로 메우며 일상과 업무를 헤쳐나가는 모습, 그 일기당천의 기백 앞에서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팔순에 접어든 내 어머님도 그 중 한분이셨다.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시면서도 손짓발짓으로 택시를 잘도 타고 다니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스 검침원이 다녀가자 문을 닫으시면서 대뜸 ‘만조우(慢走, 우리말 ’조심해서 가세요‘, ’살펴 가세요‘에 해당하는 인사)’라고 하셨다. 중국인들간의 언행을 유심히 보고 계시다가 주워 들은 풍월을 곧바로 써먹으셨던 게다.

이곳에서는 모두들 너무나 쉽게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느냐, 못 하느냐"의 이분법으로 상대방의 중국어 구사능력을 판별하곤 한다. 그 잣대는 너무 단순해서 별 의미가 없다.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중급수준의 사람도 제법 잘하는 것처럼 비치기 마련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특정 전문분야 종사자가 아니라면 일상생활을 하는 도중, 그리고 업무를 처리하는 도중 어느 정도의 불편이 있는 수준인지를 묻는 것이 정확한 잣대가 될 거란 생각이다.

그리고 그나마 경증(輕症)이나 중증(中症)에 해당하는 이라면 틈틈이 중증(重症)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같은 장애인끼리……. (pjt00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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