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방금 뚜껑을 딴 맥주병을 들고 있다. 몰래 옆으로 가서, 내가 들고 있던 맥주병 바닥으로 친구의 맥주병 주둥이를 찍듯이 친다. 친구 맥주병에서 엄청난 거품이 솟아올라 병을 타고 넘쳐흐른다.
이런 술자리 장난도 과학자에겐 연구 대상이다. 지난 24일 미국 물리학회 연례학술대회의 유체역학 분과에서 유럽 과학자들이 맥주병에서 솟아오르는 거품의 비밀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스페인 카를로스 3세 대학·프랑스의 피에르&마리 퀴리 대학의 공동 연구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맥주병의 주둥이를 치면 압축파(壓縮波)가 병을 타고 밑으로 내려간다. 병 바닥을 친 압축파는 팽창파(膨脹波)로 변해 병 속의 맥주를 따라 위로 올라간다. 압축파는 맥주의 압력과 온도, 밀도를 높이고, 팽창파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다시 팽창파가 위로 올라가 맥주의 표면을 치면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압축파가 된다.
짧은 시간에 맥주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압축파와 팽창파는 압력의 변화를 일으켜 곳곳에 진공상태를 만든다. 맥주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는 진공 부분에 모여 커다란 공기방울을 만든다. 선박 프로펠러가 회전하면 뒷면이 진공상태가 되면서 공기방울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맥주에 생긴 큰 공기방울은 곧 터져 미세한 공기방울로 변한다. 공기방울은 모여 빠른 속도로 맥주 표면으로 떠오른다. 거품 폭탄이 되는 것이다. 카를로스 3세 대학의 하비에 로드리게스-로드리게스 교수는 "맥주 거품은 폭탄의 폭발로 생기는 버섯구름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영완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