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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절박함을 유희로 즐기기…과연 정당한가

[기타] | 발행시간: 2014.03.07일 20:45

에스비에스 예능 프로그램 <짝>이 결국 폐지됐다. 출연자가 촬영 도중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쓴 유서도 함께 발견됐다. 이번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가 경쟁과 고통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에스비에스 제공

[한겨레]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집드림>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1년 문화방송(MBC) <우리들의 일밤>의 한 코너로 생겨난 프로그램인데, 내 집 마련이 절실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안 되는 열여섯 가족을 모아놓고 토너먼트 형식을 통해 최후의 한 가족을 뽑아 집을 지어주는 내용의 리얼리티 쇼였다. 제작진은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싶다”고 말하며 “누구에게 더 유리하고 불리할 것이 없는 공평무사한 퀴즈를 출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그 결과물은 썩 신통치 않았다. 시청자들은 당장에 집 한 칸이 간절한 이들을 스튜디오에 불러놓고선, ‘네덜란드 건축설계사의 막내아들은 뱀 인형과 거북이 인형 중 어떤 걸 더 좋아하는가’ 따위의 퀴즈로 당락을 가르는 어이없는 장면들을 봐야 했다. 결과? 당연히 시원하게 망했다. <집드림>은 “집 가지고 장난치느냐”는 비난과 낮은 시청률에 시달리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 에스비에스(SBS)에선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이름 대신 ‘남자 1호’, ‘여자 4호’ 등의 호칭을 달고 나온 일군의 일반인 남녀를 산장이나 펜션 같은 제한된 공간 안에 모아놓고, 그들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기 위해 서로를 탐색하고 최종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관찰예능 프로그램이다. 남녀는 자신의 배우잣감을 고를 때 과연 ‘성격, 취미’와 같은 이상적인 면모와 ‘직업, 연봉, 학벌, 외모’ 등의 현실적인 면모 사이에서 어느 쪽에 판단기준을 두는가가 이 프로그램의 출발지점이었다. 그렇게 ‘교양’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이윽고 ‘예능’이 되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공개맞선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내숭과 체면을 걷어내고 노골적인 욕망을 부각시킨 듯한 이 프로그램을 놓고, 한쪽에선 ‘인격의 상품화’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다른 한쪽에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누가 더 기발하고 절절하게

절박함을 뽑아내느냐에

리얼리티 쇼의 재미가 결정…

고작 쇼인데 뭘 그러느냐고?

타인의 감당하기 힘든 절박함

오락적 소비로 치부할 문제인가
한쪽은 ‘내 집 마련’이라는 한국인의 숙원사업을 걸었고, 다른 한쪽은 소위 ‘삼포세대’라 불리는 한국 청년세대의 결혼을 걸었다. 두 프로그램 모두 타인의 절박함을 중계하며 서사를 써내려가는 것은 동일한데, 어째서 한 프로그램은 실패해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다른 프로그램은 수요일 밤의 강자로 살아남았던 걸까. 이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잠시 리얼리티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적지 않은 수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은 타인의 절실함을 관람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가볍게는 미션에서 승리해 가벼운 보상을 받기 위해 뛰어다니는 게임 쇼 부류, 예를 들면 한국방송(KBS) <해피 선데이-1박2일>이나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티브이엔(tvN) <더 지니어스>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게임에 임해야 하지만, 게임에서 진다고 해서 인생 자체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닌 프로그램들. 그런데 이런 쇼에서 제공하는 보상이 무거워지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들과 경쟁하는 서바이벌 쇼가 된다. 엠넷(Mnet)의 <슈퍼스타 케이(K)>, 올리브(O’live)의 <마스터셰프 코리아>와 같이 일생의 꿈을 걸고 절박하게 경쟁하는 종류의 쇼 말이다.

리얼리티 쇼에선 참가자들의 ‘절박함’을 얼마나 더 기발하고 절절하게 뽑아내느냐에 따라 그 재미가 결정된다. <1박2일>이 얼마나 악랄한 복불복을 마련하느냐, <더 지니어스>에서 게임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었느냐, <슈퍼스타 케이>가 참가자들로부터 더 날것의 무대를 뽑아내기 위해 얼마나 더 치열한 경쟁구도를 만드느냐 등등이 그것일 것이다. 이 절박함을 보여주고 극복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해 재미가 훼손되었다고 느낄 때, 시청자들은 분노한다. <더 지니어스>에서 타인의 게임 아이템을 숨겨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획득한 참가자에 대한 대중의 분노나, 조작 방송 논란이 일었던 에스비에스 <정글의 법칙> 제작진에 대한 비판은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절박함을 포장하거나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렇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시청자들은 타인의 절박함을 지나치게 잔인한 방법으로 자극하고 조장할 때 격분한다. 패자부활전을 명목으로 울고 있는 탈락자들을 세워놓고는 하염없이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부르게 시켰던 <슈퍼스타 케이 3>가 좋은 예다. 참가자들의 당락을 좌지우지하는 제작진과 심사위원이, 그 권위와 실낱같은 희망을 무기로 내세워 참가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듯한 인상을 줬던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슈퍼스타 케이> 프랜차이즈 사상 최악의 장면으로 회자된다. 시청자들은 그 장면을 보며 참가자들이 느끼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절박함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꼈고, 나아가 그런 절박함을 강요하는 형태로 쇼를 설계한 제작진에게 분노한 것이다.

다시 <집드림>과 <짝>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얼핏 생각하면 제작진조차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던 <집드림>에 비해, <짝>의 만듦새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다. 서로를 탐색하고 선택하는 과정에 출연자 본인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인 <짝>에 비해, 흡사 동전 던지기 수준에 가까운 어이없는 퀴즈로 16강 토너먼트를 진행해 타인의 인생을 랜덤으로 결정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던 ‘집드림’의 안일한 구조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가장 거대한 차이는, 결혼보다 내 집 마련을 더 절박하게 생각하는 시청자의 수가 많다는 점일 것이다. 제 짝을 찾는 것이야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어떻게든 개인이 해 나갈 수 있는 일이지만,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과업이고 그 꿈은 함부로 농락당해선 안 된다고 믿은 시청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절박함’과 ‘감당할 수 없는 절박함’의 차이는 두 쇼의 향방을 갈랐다.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절박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누군가에겐 자신의 학력이나 직장, 재력과 외모, 성격 등을 평가당하고, 그 결과로 혼자 점심 도시락을 먹느냐 아니면 의자왕이 되느냐가 갈리는 과정이 전국에 중계되는 <짝>이 ‘감당할 수 없는 절박함’을 담보로 한 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작 쇼인데 뭘 그러느냐고? <짝>에 출연해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찾은 한 남성 참가자는, 고향 집에 전화해 눈물을 훔치며 부모님을 안심시킨다. 드디어 며느릿감을 찾았으니 이제 걱정 놓으시라고. 보는 이들에겐 엔터테인먼트인 것이, 나오는 이들에겐 자신의 얼굴과 직업, 성격 따위를 모두 공개해서라도 쟁취해야 하는, 인생을 건 절박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짝>에 출연했던 한 여성 참가자가 촬영 막바지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가 안타깝고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 계기가 프로그램의 문제인지, 좀더 개인적인 이유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동안 <짝>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이들은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가 출연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래 그런 프로그램인 줄 모르고 나간 것도 아닐 텐데, 스스로 출연을 선택한 출연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를 프로그램 탓으로 돌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그 죽음의 책임이 출연자에게 있느냐 제작진에게 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대로 된 질문의 방향은, 티브이를 보고 있는 시청자인 우리 스스로를 향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중 많은 수는 리얼리티 쇼에서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이나 ‘감당하기 힘든 절박함’을 강요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절박함을 미끼로 경쟁을 벌이는 리얼리티 쇼의 메커니즘 자체는 상수로 받아들여 왔다. 타인의 절박함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것 자체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인가? 만약 그것이 그 절박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면, 그 정도는 과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 당장 이 사건 하나를 두고 성급하게 프로그램의 폐지를 논하거나, 리얼리티 쇼 자체를 악마화해서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누구의 경쟁과 고통을 유희로 소비하는 메커니즘 자체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의문을 가질 필요는 있지 않을까.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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