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옥 가는 건 괜찮은데 아들과 손자들 밥은 누가 챙겨줍니까.”
이모(여·67) 씨는 30대 중반인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아들은 잘 풀리지 않는 사업과 부족한 자금 때문에 힘빠지는 소리를 하곤 했고 이 씨는 그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절을 찾아 아들의 사업 성공을 기도하며 108배를 올리는가 하면 아들 대신 자금을 빌려보겠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익숙한 일이 됐다. 아들 사업자금을 대신 빌려 수천만 원의 빚 독촉을 받는 일도 예사였다.
아들의 사업자금이 절실했던 이 씨는 지난 2011년 7월 지인의 소개로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투자자 A 씨를 만나 “(아들이) 대기업 공사를 수주하는데 돈만 빌려주면 월 5부(연 60%)로 갚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이 씨는 A 씨로부터 5000만 원을 받았고 다음달 추가로 7000여만 원을 빌렸다. 그러나 아들의 사업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1000여만 원을 들여 3차례 굿까지 벌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록 돈을 되돌려받지 못하자 A 씨는 이 씨를 고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지난 2008년에도 아들의 사업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는 등 모두 4차례의 사기 전력이 있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부장 전승수)는 높은 이자를 미끼로 1억2000여만 원을 빌리고 그중 1000만 원만 변제한 혐의(사기)로 이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이 씨의 지인은 “거듭되는 아들의 사업 실패까지 떠안으려는 빗나간 모정 탓에 노모가 전과자가 됐다”며 “이 씨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주변 사람들한테 손자들 밥은 꼭 챙겨달라며 안절부절못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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