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판에 작은 구멍을 뚫어 물을 담고 양쪽에 다이아몬드로 압력을 가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를 모루로 삼아 대기압의 1만배 이상의 압력을 가하면 상온에서도 물을 얼음으로 만들 수 있다.
액체가 고체로 변화하는 응고 현상은 온도뿐만 아니라 압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따뜻한 얼음’도 조건만 맞춘다면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 조건이 대기압의 1만 배 이상인 기가파스칼(GPa) 정도의 초고압이라 실현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다.
30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융합물성측정센터 극한연구팀(이윤희, 이수형,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순간적으로 5백만 기압까지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엔빌 셀(DAC, Diamond AnvilCell)을 개발하고 물을 1만 기압 이상 압축해 얼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또한 얼음의 결정구조가 변하는 과정을 관찰해 압력 조건에 따라 얼음의 결정구조가 달라지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온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음의 크기나 형태 및 성장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동적 고압을 형성하기 위한 다이아몬드 앤빌셀을 확대한 모습
자연에서 관찰되는 얼음은 육각판, 기둥, 뿔 등 만 가지 이상의 결정을 가진다. 만약 결정 구조를 조절할 수 있다면 필요한 곳에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육류를 냉동시키면 바늘처럼 뾰족한 육각형 얼음결정이 발생해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키지만 뾰족하지 않은 다른 형태로 얼음 결정이 생기게 한다면 육질을 보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초당 대기압의 500만 배(약 500기가파스칼)까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장치를 개발, 고압에서 얼음을 만들었다. 상온에서 물을 압축해 고압얼음을 형성하고, 동적인 압력 조작을 통해 3차원 팔면체 얼음을 2차원 날개 모양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초고압 환경을 구현하는 다이아몬드 앤빌셀에 구동제어, 분자 진동 측정기술 등을 동기화해 물질의 압력, 부피, 영상, 분자 구조 정보까지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즉각적이고 균일하게 압력을 적용함으로써 물 분자의 결정화 과정을 상세히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압력 속도를 증가시켜 얼음결정의 성장 형상 변화를 관찰한 이미지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이번 기술은 다양한 결정구조에 활용할 수 있어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초고압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물질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어 한계에 부딪힌 과학기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