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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원천 정신적 징표' 중국공산당의 위대한 창당정신 계시록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21.08.13일 02:00



중국공산당은 무엇때문에 온갖 시련을 겪어도 대대로 이어갈 수 있었고 무엇때문에 100년이 지나도 생기가 차넘치는 시기라고 하는가?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경축대회에서 습근평 총서기가 항해를 시작하는 거대한 선박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100년전 중국공산당 선구자들은 중국공산당을 창건했고 진리를 견지했으며 리상을 고수하고 초심을 실천했으며 사명을 떠메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면서 당에 충성하고 인민을 저버리지 않는 위대한 창당정신을 형성했다. 이것이 중국공산당의 정신적 원천이다.”

위대한 창당정신은 초석과 같이 100년간 당의 사업 발전과 진보를 촉진했고 중국공산당의 타고난 홍색유전자로 기타 그 어떤 정당과도 구별되는 정신적 징표로 되였다. 위대한 창당정신은 불씨와도 같이 정강산의 한점의 불꽃을 지펴주었고 장정도로의 활활 타오르는 홰불, 보탑산 우의 반짝이는 붉은별을 밝혀주었으며 세새손손으로 전해주어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정신적 계보를 구축했다.

위대한 실천이 위대한 정신을 육성하고 위대한 정신이 위대한 실천을 이루게 한다. 한세대 또 한세대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은 국가와 인민의 리익을 위해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뒤를 이어가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리상을 실현했고 생명을 바쳐 삶의 터전을 지킬 때 중화민족의 정신적 기둥은 떳떳하게 일떠서게 되고 문명고국은 눈부신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백년의 길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신앙과 추구는 확고부동하였고 시종일관 진리를 견지하고 리상을 고수했다.

중국공산당을 공산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우리 당이 설립된 그날부터 공산주의를 원대한 리상으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계급이 존재하고 계급과 대립된 자산계급 구사회를 대체하는 것은 아마 개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결합체일 것이다.” 《공산당선언》의 전광석화 같은 문자는 근대 중국 선진분자들을 흡인해 마음이 쏠리게 하고 동경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였다.

10월혁명의 첫 포성이 중국에 맑스-레닌주의를 보내왔다. 1921년 1월, 모택동은 채화삼에게 보내는 회답편지에서 채화삼의 ‘대담하게 중국공산당을 정식으로 설립하자’는 주장에 대해 “백프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같은 해 여름, 상해 석고문에서 평균 년령이 28살 밖에 안되는 젊은이들이 같은 리상을 위해 한데 모였다. 그들이 오른 주먹을 들고 맑스주의를 기치에 써넣고 공산주의 실현을 최고의 리상으로 삼기로 결정하면서 중국공산당은 사상이 선진적이고 신앙이 확고한 정신적 특징을 갖추게 되였다.

1934년, 홍4방면군이 우수당원들에게 발급한 당원증을 받은 진파는 특별히 작은 가죽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당원증을 넣고 허리에 띠고 다녔다. 몇년 후 진파는 의외사고를 당했는데 혼미상태에서 깨여나자마자 겨우 남은 한쪽 손으로 당원증이 있는가부터 살폈다. 장정을 겪고 봉쇄를 뚫고 감남까지 내려가 싸운 ‘외팔장군’ 진파는 항상 붉은피로 물든 당원증을 허리에 단단히 매고 다녔다.

리상과 신념의 불꽃은 한번 지펴지면 거대한 정신적 힘을 만든다. 옥중에서 “10년 뒤면 붉은꽃이 온대지에 활짝 피여있을 것이다.”는 시구를 남긴 등중하,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굳게 믿은’ 전학삼, “개인의 추구를 당의 리상에 융합시켜야 리상이 더욱 원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 황문수 등 100년을 돌이켜보면 한세대 또 한세대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가면서 용감하게 앞을 향해 나아갔고 머리가 잘려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으며 성공할 때까지 일심협력하면서 리상을 향해 확고하게 전진하였다. 중국공산주의자들이 맑스주의로부터 계승한 것은 진리와 리상 뿐만 아니라 더우기는 진리를 견지하고 리상을 고수하는 창당정신이며 바로 이 창당정신이 맑스주의 중국화를 추동했다.

100년간 중국공산당은 시종일관 맑스주의 진리에 의거하고 실사구시에 의거하고 과학에 의거하면서 중국의 실정에 부합되는 정확한 로선, 방침과 정책을 부단히 탐색해왔다. 중앙서류관에 보존되여있는 평범해보이는 3장의 친필 원고는 등소평 동지가 친히 작성한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하며 일심단결하여 앞으로 전진하자》 연설의 제강이다. 당의 11기 3중전회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리론각오로 중국특색 사회주의 새 로정을 개척했다.

중국의 실정에 립각하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실천경험을 총화하면서 중국공산당은 맑스주의 중국화, 시대화, 대중화를 부단히 추진하였으며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 ‘3가지 대표’중요사상, 과학적 발전관을 형성했고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을 형성하면서 당의 기발을 눈부신 진리의 빛발로 물들였다. 중국공산당의 조기 지도자 구추백은 ‘진리를 위해 투쟁하자’를 높이 부르며 의연하게 형장으로 향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100년 탄생을 맞은 시기 부친 구추백이 번역한 《국제가》가 경축대회에서 높이 울려퍼지자 ‘7.1훈장’ 획득자이며 당과 동갑인 100세 로인 구독이의 두눈에는 생기가 흘러넘쳤다.

백년 로정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시종일관 초심을 실천했고 사명을 감당했다.

2012년 11월 29일 국가박물관. 중공중앙 총서기로 갓 당선된 습근평은 《부흥의 길》전시를 관람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고 장엄하게 선언하였다. 시간은 이 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력사의 계주봉을 차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전달하였다. 그의 뒤에 있는 전시청은 긴 회랑을 방불케 했는데 중국의 파란만장한 변혁을 묘사했고 중국공산당의 초심과 사명인 중국인민을 위해 행복을 도모하고 중화민족을 위해 부흥을 도모한 력사를 견증했다.

100여년전 서방의 렬강들이 략탈을 감행하면서 세계 선두지위에 있던 대국의 산천이 산산쪼각이 났고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활할수 없게 되였다. 중화민족은 가장 위험한 시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모든것은 애국심을 품고 나라의 흥망은 모든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초기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교원, 변호사, 직원으로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공산당을 창건한 것은 자신의 집안과 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대중과 나라를 위해서였다.

중화의 궐기를 위해 공부한 주은래는 소년시기 “선인들이 가시덤불을 헤치며 마련한 행복을 자손후대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진교년은 정의를 위해 희생되는 시각에도 “즐거운 노래가 탄식을 대체하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웃는 얼굴로 되게 하자”며 민족의 미래를 마음속에 품었다. 방지민은 옥중에서도 ‘사랑스러운 중국’을 꿈꾸며 유일한 유감이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의 선구자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소리는 당의 정치적 주장으로 변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창건된지 1년만에 반제국주의, 반봉건의 민주혁명 강령을 제출하였다. 피와 불의 혁명시대, 중국공산주의자들이 뒤사람이 앞사람을 따라가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나라를 재난에서 구원하고 백성들을 도탄 속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집권당으로서 중국공산당은 더욱 국가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자신의 소임으로 간주하였다. 1957년, 개국장군 감조창은 귀향하여 고향인 강서성 련화현 연배촌에 돌아가 농민이 되였다. 알곡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감조창은 당년에 전쟁을 하듯 목숨걸고 고향사람들을 이끌고 저수지와 수로를 건설했고 농경지를 개조하여 민둥산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었다. 림종을 앞두고 감조창은 “로임이 나오면 당비를 먼저 납부하고 생활비를 남긴 나머지는 전부 농약과 화학비료를 구매하시오.” 라고 당부했다. 대부분의 인생을 인민을 보위하는 투쟁에 바쳤고 남은 인생은 농기구를 다루며 인민에게 행복을 마련해주었다. 감조창은 평생 한결같은 초심으로 분투했다.

“20년 적게 살지언정 목숨을 걸고 대형 유전을 건설하겠다”고 다짐한 석유로동자 왕진희, “전국인민에게 좋은 옷을 입히겠다.”며 42년간 생산일선을 지킨 방직녀로동자 황보매, “최고의 경지는 인민을 사랑하는 것이다.”고 말한 서장지원간부 공번삼 등 한세대 한세대 중국공산주의자들은 뜨거운 적자지심으로 조국건설사업에 투신해 인류 현대화 행정에서 ‘중국기적’을 창조했다. 바로 이렇게 초심과 사명을 시종일관 지켰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극도의 곤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고 궁지에 몰렸을 때 겹겹의 포위를 뚫을 수 있었으며 역경의 관문에 직면했어도 의연히 일떠설 수 있었다. 바로 초심을 실천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정신의 격려 하에 중국공산당은 비로소 중국을 령도하여 일떠섰고 부유해진데로부터 강국으로의 도약을 실현할 수 있었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불가역적인 력사적 행정에 진입할 수 있었다.

‘7.1훈장’수여식에서 고약을 가득 붙인 한쌍의 손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바로 그 두손으로 지난 13년간 2000명에 가까운 산간지대 녀자아이들을 공부시켜 인생역전의 꿈을 키워주었다. 전국적으로 첫 무료 공립 녀자고중인 운남 려강 화평녀자고급중학교 교장 장계매의 마음속엔 오직 학생 뿐이다. 그녀가 가정방문을 하면서 다녀간 거리는 지구를 세바퀴 도는 거리와 상당한 12만킬로메터에 가깝다. “누군가 나에게 고생을 찾아하는 리유를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땅에 대한 나의 고마움이 있고 더우기는 한 공산당원의 초심과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계매의 말은 수천만 당대 중국공산당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1)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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