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교편을 잡은지 어느덧 3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38년동안 하루같이 선생님이란 말을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이란 부름을 들을 때마다 저의 머리속에는 고중담임선생님이셨던 최채선 선생님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군 합니다. 저의 인생에서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많지만 최선생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입니다. 최선생님은 현급우수교원, 시급우수교원, 길림성로동모범입니다. 최선생님에 대한 우수한 사적은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 한가지 일만은 저의 뼈속까지 슴배여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대학시험을 앞둔 어느날 저녁 자습시간이였습니다. 매일 저녁 자습 때마다 그림자처럼 선생님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선생님의 작은 딸 단단이가 그날은 보이지 않고 선생님께서만 학교에 나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한창 우리에게 수학문제를 열심히 강의하시고 계시는데 갑자기 교실문이 벌컥 열리더니 선생님의 큰 딸이 맨발바람으로 헐떡거리며 허둥지둥 들어와 울음보를 터뜨리며 “엄마, 단… 단이가 흑-흑- 쓰… 쓰… 쓰러…졌어요.” 라고 흐느끼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급성페염인데 열이 너무 올라 페가 벌써 다 탔답니다. 한창 엄마, 아빠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한껏 사랑을 받을 어린 나이에,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 그 단맛도 맛보지 못한채 10살밖에 안되는 어린 생명이 이렇게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녁에 감기로 앓는 딸에게 약을 먹이고 한잠 폭 자고나면 엄마가 돌아오니 그때 병원에 가자고 하고는 큰 딸보고 동생을 좀 돌보라고 당부하시고는 우리 30여명의 학생들의 대학시험을 위해 저녁 자습을 나오셨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녁 자습을 끝내고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하셨답니다. 선생님께서 저녁 자습을 나오시지 않고 애를 제때에 병원에 데리고 가셨더라면, 조금만 관심을 돌리셨더라면 생명까지 잃을 병은 아닌데… 이렇게 선생님께서는 자식보다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딸의 뒤일을 다 처리하고 학생들의 대학시험이 걱정되여 비통을 참으면서 인차 출근하셨습니다. 우리 앞에서는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 예전과 같이 수업을 하셨지만 조용하고 구석진 곳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본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부모로서 어찌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무관심으로 자식을 잃었으니 정말 이것보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픈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이 일은 4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자식보다 학생을 먼저 생각하시는 고중담임선생님 최선생님을 영원히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통화현조선족학교 윤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