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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펜 물고 119 눌렀지만… 불길속 누워 죽어간 중증장애인

[기타] | 발행시간: 2012.10.27일 09:56

[한겨레] 팔다리 못움직이는 장애1급 여성

평소 장애인 권익운동에도 열심

활동보조인 퇴근한 한밤에 화재

소방관 출동해보니 이미 숨거둬

“활동보조 24시간으로 늘렸어야”

26일 새벽 2시10분께 서울 성동구 행당동 2층 연립주택 1층에서 불이 나, 혼자 누워 있던 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 김주영(33)씨가 질식해 숨졌다.

김씨는 숨지기 직전 집에 불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119에 전화를 걸어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평소 입에 터치펜을 물어 펜 끝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눌러 전화 통화를 했다. 뇌병변장애 중에서도 최중증인 김씨는 양팔과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소방관들이 신고를 받은 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김씨의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현관문은 활동보조인이나 손님이 찾아올 때 열어줄 수 있도록 김씨의 머리맡에 있는 리모컨을 입으로 조작해 여닫을 수 있게 돼 있었다. 김씨가 유독가스를 집 밖으로 내보내려 현관문을 연 것인지, 어떻게든 탈출을 할 생각으로 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김씨가 잠자던 방에서 현관문까지는 비장애인이라면 다섯 발짝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방문과 현관문 모두 문턱이 전혀 없어 전동휠체어를 타면 2~3초면 탈출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만큼 먼 거리였다. 평소 김씨의 발 노릇을 하는 전동휠체어가 부엌에 놓여 있었지만, 김씨는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전동휠체어에 올라탈 수 없었다. 활동보조인은 불이 나기 3시간 전인 전날 밤 11시에 퇴근했다.

소방당국은 3평 남짓한 부엌 겸 거실의 천장 부위가 심하게 탄 것으로 미뤄 이곳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엌과 잇닿은 김씨의 2평짜리 방으로 유독가스가 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관들이 도착한 지 5분 만에 꺼질 정도의 화재였지만, 김씨는 누워 있던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을 거둬야 했다.

숨진 김씨는 몸은 불편했지만 비장애인보다 활발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해 왔다. 2004년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외출 혹은 탈출>을 제작하면서 부모를 떠나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 김씨는 장애인 권익운동 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지난해부터는 한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김씨와 함께 장애인 권익운동을 해온 동료들은 김씨의 죽음이 현행 활동지원 서비스 상한선 탓이라고 지적한다. 이 제도는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하는 제도인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제한적인 서비스 제공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곁에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하루 12시간이다. 김씨도 하루 12시간씩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았다. 정동은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김씨가 24시간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받지 못해 밤에 혼자 있다가 무방비로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근육병을 앓는 장애인인 허정석(30·경기 광명시)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뒤 인공호흡기가 빠져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정하 활동가는 “일본의 경우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하고 있다”며 “장애인 운동단체들이 활동지원 서비스 상한선 폐지를 오래전부터 요구해 왔지만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빈소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병원 장례식장 201호(02-2290-9442)에 차려졌다. 김씨의 장례는 30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김규남 이유진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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