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공모10]시부모와 함께 있는 류해연 일가
길림시 강밀봉진 백점자에서 살던 한족처녀 류해연은 2001년 25살 나던 해에 강밀봉진 이도구촌의 조선족총각과 결혼하여 시아버지를 잘 모시고 시아버지를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한 시어머니마저 보살피고있어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류해연의 남편에게는 누님 하나에 녀동생 하나 있는데 큰시누이는 한국에 시집갔고 작은 시누이는 류해연이 갓 시집갔을 때 20살쯤되였다.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괴벽한 성격을 감당하기 어려워 작은 시누이가 일곱살먹던 해에 식구들 몰래 집을 나간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두메산골의 한족령감과 살고있었다.
류해연이 결혼한 이듬해에 아들이 태여났고 시아버지,작은 시누이 다섯이서 6무밖에 안되는 땅을 부쳤다. 식구가 많고 땅이 적어 생활하기가 극히 어려웠고 시아버지마저 잔병으로 위생소출입이 잦았다.
집을 나간 시어머니는 토도골이란 편벽한 산골에서 한족령감과 살았는데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것 없는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었다. 전기가설비를 내지 못해 집에 전기도 없이 살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아들, 며느리가 전기가설비를 내고 텔레비죤이랑 사다 놓아서야 량주는 전등불아래에서 텔레비죤도 보고 환한 집안에서 식사도 할수 있게 되였다.
아들, 며느리는 매년 봄철이면 벼짚을 실어다주어 화목을 해결해주고 이영을 엮어주고 쌀이 모자라면 쌀을 가져다 주고 이붓아버지나 시어머니가 병이 나면 병원에 모셔가 병도 보이군 했다.
령감을 떠났어도 자식 보고파 시어머니는 자식 보러 자주 이도구에 왔다. 그때마다 해연이는 시어머니를 잘 보살펴드렸다. 재가를 한 시어머니는 그곳 생활에 습관되여 제때에 옷을 빨아입지 않고 목욕도 잘 하지 않아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해연이는 시어머니가 올적마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옷도 빨아주고 새옷을 사주기도 했다. 그럴적마다 시어머니는 미안해서 눈물만 흘렸다.
갓 시집와서 해연이가 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시아버지는 늘 짜증을 냈다. 해연이는 조선족아주머니를 찾아 배추김기 담그는것을 배우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할 때는 조선족아주머니를 집에 모셔와 같이 했다. 시아버지가 탁주를 좋아하자 해연이는 또 탁주를 하는 방법을 배워 지금은 탁주도 제법 잘 만든다.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시아버지는 신결,뇌혈전 등으로 선후로 다섯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고 작은 시누이는 시집가고 해서 해연이는 혼자서 시아버지 병시중을 해야 했다.
어려운 생활에 돈이 많이 들어 힘든데다가 시아버지 시중에 몸이 지쳐 남몰래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다.
36살 꽃나이에 옆에 남편도 없이 홀로 계시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시중을 들고 게다가 재가한 시어머니마저 돌봐야 하니 어찌 고달프지 않으랴. 그래도 입밖에 싫은 소리 한마디 내보지 않은 해연이다.
동네분들이 해연이를 칭찬하면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낳아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늙으신 부모를 잘 모시는것은 당연한 일이지요.》하고 해연이는 소박하게 말한다.
/길림 양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