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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라면이 없었더라면…

[기타] | 발행시간: 2013.01.11일 11:51
중량 100g·면발 길이 49m,

그 질긴 생명력으로 허기를 채워 준 50년 먹거리 기적


비등점(沸騰點)은 지문처럼 씻어낼 수 없던 곤궁을 자각케 하는 알람이었다. 물이 끓는다는 건 욕망을 채울 때가 왔다는 신호이지만, 끼니를 때울 만한 먹거리가 없던 50여년 전엔 그랬다.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 같던 재료로 ‘꿀꿀이죽’을 끓여먹던 한국인의 자괴감을 풍요의 21세기에 속한 인류의 절반은 짐작도 못하리라.

1963년 9월 15일. 라면이 한국인에게 첫선을 보인 날이다. 한 기업인(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진심이 통해 현해탄을 건넌 라면은 올해로 딱 50년을 맞는다. ‘중량 100여g, 폭 13㎝, 높이 3㎝대’. 면발을 죽 늘이면 49m. 이 꼬불꼬불한 면은 비등점에 다다라 꿈틀대는 물 속에 투입됐고, 도리없이 허기졌던 서민의 식욕을 채워줬다.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변화도 한국 사회에 안겼다. 150도의 기름에 튀긴 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원리를 이용한 ‘작은 라면’의 ‘큰 기적’쯤 된다. 1960년대엔 생존을 도왔다.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본격적인 산업화 시기엔 산업역군의 출출한 배를 뜨끈하게 데우기도 했다. 자연재해 구호품 역할도 톡톡히 했다. 1980~1990년대, 라면은 생존형 상품에서 생활밀착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맛과 질을 중시하는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의 혁신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어머니에게 라면은 달갑잖은 ‘부엌데기’로서의 숙명에서 벗어나게 했다. 먹기 편한 컵라면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간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취생 홍길동(가명)과 ‘군발이’ 김병장에겐 라면이 유일한 군 생활의 즐거움이었다.

압축성장의 시대를 관통한 라면을 두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부류도 있다. 혹자는 라면을 ‘엄청난 살육의 엑기스를 분말로 만들어내는 물리학의 기적’이라고 했다. 수프를 만들기 위해 각종 육류와 채소류 등을 농축한 걸 꼬집은 것이다.

라면은 그러나 외면당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1년에 72개(세계라면협회 2011년 기준)의 라면을 소비하는 걸로 추산된다. 1주일에 1.4개의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다. 소비자가 가장 많이 찾는 라면 제품의 가격은 700원대. 커피 한 잔에 3000원이 넘고, 도너츠도 1000원을 우습게 여기는 시대에 라면은 2008년 이후 같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700원대의 돈을 주고 라면만큼 큰 만족감을 주는 상품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했다.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올해 처음으로 2조원대 고지를 밟을 걸로 전망된다.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전통의 강자에 이어 풀무원도 경쟁 대열에 가세하면서 양보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세계시장 진출도 활발해 80여개국에 수출, 식품 한류의 선봉에 서 있다. 라면의 변주도 화려하다. 마니아들은 라면 회사를 무색케 할 정도로 다양한 조리법의 라면요리를 뽐낸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라면요리가 많다”고 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눈물 젖은 라면이 아닌 웰빙을 위한 음식으로, 라면은 새로운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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