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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5]《심양현상》과 길경갑씨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5.06일 17:21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5)


ㅡ심양기원그룹 길경갑리사장의 인생도전

길경갑(吉京甲) 프로필

1964년 료녕 심양 출생


1981년 중국인민해방군 입대 윁남자위반격전 참가


1986년 심양시 북릉향 화평촌 공청단서기


1990년 심양액압물자회사 경리


1992년심양공업대학 경영학 전공


1994년 심양시당학교 수료


1995년 심양화신그룹 당총지 부서기


1999년 심양화신그룹 리사장 및 당총지 서기


2004년 심양기원그룹 리사장




사회직무

2004년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2008년 월드옥타 심양지회 회장


현재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 월드옥타 심양지회 명예회장


심양시청년기업가협회 부회장

심양시조선족련의회 부회장

심양시조선족교육협회 명예회장

황고구화신조선족소학교 명예교장

심양시조선족문학회 《청년생활》 고문

심양시 우홍구 인민대표

심양시청년련합회 상무위원

심양시정협 위원 등

주요영예

윁남자위반격전 참가 개인 3등공과 집단 2등공 세움


료녕성향진기업가


심양시우수기업가

세계한민족청년상

심양시우수정협위원

심양시민족단결진보개인

중국조선족10대신예기업가

대한민국 제1회한민족청년상

한국외교통상부 장관상 등

21세기 새로운 력사의 장을 펼치면서 료심대지에 《심양현상》이란 신조어가 출현하였다. 《심양현상》은 출현하면서부터 조선족인구의 도시에로의 대이동과 출국행에 따른 인구급감, 민족학교의 페교, 조선족촌공동화 등 력사적진통기를 겪고있는 전반 조선족사회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강한 센세이숀을 불러일으켰다. 《심양현상》 신드롬의 주역은 이 시기에 설립된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와 협회 회장직을 맡은 길경갑씨이다.

역경을 헤치고


1986년 10월, 윁남자위반격전에 참가하고 복원한 길경갑은 고향인 화평대대(화신그룹 전신)에 돌아와 공청단서기를 맡았다. 얼마후 촌영기업인 심양액압물자공사 경리로 임명되여 기업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대대지도부에서는 그를 심양시당학교에 파견, 3년간 당학교학습을 끝낸 그는 돌아와서 화신그룹 당총지 부서기로 발탁된다. 이 기간 그는 북릉향인민대표, 우홍구 정협위원으로 당선되고 우홍구우수로동자, 우홍구우수당원으로 표창받았다. 1999년 4월, 그동안 쌓은 성과로 하여 30대의 젊은 나이에 그는 화신그룹 당총지 서기 겸 리사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화신그룹은 소농경제의 농업생산대로부터 58개의 기업을 소유한 기업그룹으로 발전했지만 산재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룹소유의 농경지가 부당하게 팔려나갔고 촌기업이 많다 하나 촌민생활에는 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그는 우선 부당하게 팔려나간 농경지의 값을 돌려받는데로부터 착수해 수백만원의 자금을 회수한데서 촌영경제발전에 기반을 마련했다. 대다수 촌민들은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대신 일부 사람들한테서 인심을 잃기도 했다.


여태까지 그는 대다수 촌민들의 지지만 있으면 무사태평인줄로 알고 일을 추진했었다. 대가 바르고 재력이 있고 입김이 센 사람들을 묶어세워야 했다. 그는 기업인들을 찾아나섰다. 자기를 가장 반대하는 기업인부터 찾아가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면서 진정을 보여주자 기업인들이 하나둘씩 뭉치기 시작했다. 힘있는 지지세력이 형성되자 사업이 척척 진척되였다.

관할범위내에 있는 커다란 소택지를 메우고 거기에 그룹청사를 짓고 촌민들을 위한 아빠트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미친놈의 짓》이라고 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또 동북 최대의 페강재교역시장을 건설하고 정부의 지지하에 심양지역 곳곳에 널려있던 페강재시장을 통합했다.

아빠트단지가 건설되자 촌민들에게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했고 강재시장에서 나오는 수입을 촌민들의 복리를 해결하는데 돌렸다. 화신그룹은 그때부터 60세이상 로인들에게 달마다 경로금을 지급하였는데 당시 전국적으로 이런 로인복지혜택을 제공하는 촌은 몇개에 지나지 않았다. 로인사업뿐만 아니라 녀성사업, 후대관심사업 등 복지사업이 주거환경변화와 함께 줄기차게 진척되였다. 화신그룹은 더는 이전의 화평대대가 아닌 명실상부한 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처음에 그를 반대하고 불신하던 사람들도 그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촌영경제체제전환에 발맞추어 집체기업을 사영기업에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집체기업이여서인지 기업이 커질수록 기업주가 살찌는 대신 그룹은 여위고 촌민들에게 돌려지는 리득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집체기업을 사영기업으로 개편하려 하자 다년간 집체라는 큰산에 업혀 리득을 챙겨왔던 기업주들은 한결같이 반기를 들었다. 아직 기업체제개혁의 진의를 리해하지 못하는 그들이였기때문이였다. 누군가 나서서 모범을 보여주어야 했다. 여러 날의 고민끝에 길경갑은 자신이 솔선하기로 했다.

2004년초, 그는 결연히 사직을 제출했다. 촌민들이 말리고 향정부에서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마침내 2004년 8월, 그는 화신그룹 리사장 겸 당총지 서기직을 사직한 뒤 심양굉달(宏達)무역회사를 만들고 대외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회사는 눈덩이 굴리듯 커져 불과 반년만에 산하에 무역, 건자재, 디지털, 환보, 건축자재, IT, 실리콘 등 계렬사를 가진 기원그룹으로 성장했고 년간 매출액은 650만딸라에 달했다. 그의 성공은 화신그룹 기업인들에게 모범이 되여 불과 2년내에 그룹내 50여개 기업이 전부 사영화로 전환했다. 소속 기업들의 기업성격전환은 화신그룹의 부담을 크게 경감시키였고 촌민들의 수익도 안정적으로 발전되게 했다.

같은 해 조선족기업들의 친목과 화합을 취지로 한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가 설립되였고 길경갑은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였다.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부터 그의 사유는 화신그룹을 넘어 전반 심양지역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해 고심하는데로 비약한다.

월드옥타행사에서의 길경갑회장


《심양현상》의 탄생


이때부터 그는 더는 한개 민영기업의 지배인만은 아니였다. 심양지역 조선족사회에서 조직하는 각종 대형행사들의 자금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여러 조선족단체와 조선족학교들의 경비난에도 고심해야 했다. 한편 조선족기업인들이 경영과정에서 부딪친 애로사항들도 그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기업가협회는 심양시조선족련의회에서 조직하는 심양시조선족민속절, 6.1북릉유원회, 조선족예술절 등 행사들과 로인협회, 부녀협회, 문학회 등 민간단체들의 행사들, 여러 조선족학교의 행사에 해마다 근 80여만원을 후원했는데 그중 약 30여만원은 길경갑 자신이 부담했다.

한번은 그의 사무실에 심양시로인협회 회원들이 찾아와서 로인활동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하소연했다. 로인들의 사정이야기를 들은 그는 당장에서 1년 활동경비로 5만원을 내놓을것을 약속했다. 그후부터 로인협회에는 해마다 기업가협회로부터 5만원의 활동경비가 어김없이 지원되고있다.

매년 교사절에 심양지역 조선족교원 1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행사를 갖는데 이 역시 기업가협회의 자금후원으로 이뤄지고있으며 료녕지역 조선족 작가와 문학도들로 구성된 심양시조선족문학회도 해마다 기업가협회의 지원으로 여러 가지 행사들을 벌이고있다.

지난 몇년간 심양지역 조선족기업인들은 길경갑회장의 인솔하에 《심양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기업과 문화, 기업과 사회의 공존을 도모해왔고 또 현지 조선족사회와 한국인사회의 공동발전을 위한 진로를 모색하면서 그 모범을 보여주었다.

《심양현상》의 의의는 단순히 기업인들이 기타 민간단체나 개인에게 자금적인 원조를 준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심양지역 조선족사회 각계가 화합과 공생, 공동발전을 전제로 서로 뭉치고 단결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범이고 실천이였다.


글로벌시장을 향해

중한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심양지역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상주하고있다. 그동안 심양지역 조선족들과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단체교류가 매우 빈약했다.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가 설립되고 재심양 한국인회가 비슷한 시기 조직체계가 정비되면서 기업가협회는 한인회와 상호 대화의 물꼬를 틔웠으며 이를 계기로 심양지역 조선족들과 한국인들간의 교류가 보물 터진듯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8년 월드옥타 심양지회 회장직을 맡은 길경갑은 당해 회원사 성원들을 이끌고 글로벌시장진출의 행보를 시작했다. 현재 월드옥타 심양지회는 회원수가 80여명으로 늘어나 서울에서 해마다 갖는 본회의 정기총회에 참가자가 가장 많은 지회로 되였고 따라서 조선족기업인들의 지위와 위상도 날로 부각되고있다.

월드옥타 심양지회는 2008년말 심양한인회와 함께 처음으로 되는 《심양한민족경제포럼》을 시작으로 제2차《한민족경제포럼》, 《동북3성한민족경제포럼》을 개최했으며 2009년 여름에는 심양한인회와 공동으로 국내 최초로 되는 《한국KBS전국노래자랑》과 2010년 7월의 《중국글로벌한상대회 및 한국KBS열린음악회》 등 굵직한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지역사회 홍보는 물론 주류사회에서 민족기업인들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당해 7월 《글로벌한상대회》 때 개최한 《월드옥타총회》는 심양시를 포함한 료녕성을 세계지역의 월드옥타 회원들에게 홍보하였고 동북3성에 대한 투자유치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회원들간 글로벌 네트워크구축 및 경제교류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2011년초 길경갑은 7년간 로심초사하며 키워온 심양시기업가협회 회장직과 3년간 수행한 월드옥타 심양지회 회장직을 동시에 사직하고 두 협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였다.

버거운 짐을 벗어버린 그는 홀가분한 몸이였지만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여전했다. 그는 《당과 정부가 요구하는 조화로운 사회는 어느 한 집단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마땅히 전 사회의 힘이 동원되여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가 되여야 한다》고 력설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심양시조선족사회기금》을 설립하여 로인, 녀성, 청년, 문화예술인 단체와 학교들에 대한 조직적이고 정규적인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고 호소하고 그 실천에 앞장서고있다.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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