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KIA와 롯데의 경기가 열렸다. 4회말 1사 2루서 롯데 장성호에게 역전타를 허용한 KIA 선동열 감독이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부산=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 08.06.
어떤 분야의 권위자라고 해도 늘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함이나 불신, 혹은 스스로의 이론에 너무 몰입되는 순간 때때로 나쁜 선택을 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악수'다.
감독 데뷔 후 처음으로 2시즌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할 위기에 빠진 KIA 선동열 감독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선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빠르고 기민한 투수교체 타이밍이 자꾸 어긋난 결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초보 감독이든, 베테랑 감독이든 공통적으로 내놓는 대답이 있다. 바로 '투수 교체 타이밍 잡기'다. 보통 투수를 바꿀 때는 해당 선수의 구위와 상대 타자와의 데이터, 그리고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 등을 근거로 타이밍을 잡는다. 하지만 아무리 최적의 조건에서 투수를 바꾸더라도 자칫 안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투수교체가 어려운 것이다. 늘 '결과'만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잘 바꿨다"는 호평보다 "잘 못 바꿨다"는 비난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어려운 투수교체에 관해 한국 프로야구 감독 중에서 가장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 바로 선 감독이다. 현역시절 최고의 투수였던 선 감독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투수'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깊은 조예를 갖고 있다. 경험을 통해 투수 조련 및 기용 등에 관해서 나름의 이론 체계를 확실히 다져놨다.
김인식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대표팀 투수 코치로 참여한 선 감독에게 투수 교체에 관한 전권을 위임했었다. 또 김응용 한화 감독도 2004년 삼성 감독 시절 당시 수석코치를 맡았던 선 감독에게 투수 조련과 교체 등을 모두 맡겼다. 프로야구계의 거목들이 한결같이 투수 파트에 관한 선 감독의 권위를 인정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올 시즌 선 감독의 투수 교체는 상당히 자주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일관된 기준과 나름의 타이밍에 따라 교체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방법이 자꾸 '악수'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모양새다. 동시에 선 감독 스스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떠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6일 부산 롯데전에서 선발투수 소사를 교체했을 때다. 이날 KIA 선발 소사는 모처럼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있었다. 3회까지 최고 구속은 156㎞가 나왔고, 투구수도 43개로 꽤 경제적이었다. 1회 1사 후 연속안타로 2, 3루의 위기를 겪긴 했지만, 후속 타자들을 모두 범타로 돌려세우며 실점하지 않았다.
그러다 1-0으로 앞선 4회 들어 제구력이 흔들렸다. 선두타자 손아섭의 안타와 도루, 1사후 전준우의 우전 적시 2루타와 장성호의 좌전 적시타로 2점을 허용했다. 갑자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벤치도 조기 교체를 준비했다. 이날 경기에 앞서 선 감독은 "선발이 조기에 무너질 경우 일찍 불펜을 가동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마 4회부터 불펜이 가동됐을 것이다.
결국 소사는 5회를 넘기지 못했다. 5회 선두타자 정 훈에게 2루타, 1사 후 이승화의 기습번트가 행운의 내야 안타로 이어져 1사 1, 3루가 된 이후다. 선 감독은 상대 왼손타자인 손아섭을 상대하기 위해 좌완 롱릴리프 박경태를 투입했다. 손아섭이 앞서 소사에게 2안타를 쳤기 때문에 교체의 적기라고 여긴 듯 하다. 좌타자를 잡기 위한 좌투수, 또 아직 5회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보다 길게 던질 수 있는 투수. 이런 기준으로 고르다보니 박경태가 나오게 됐다.
1승이 목마른 현 시점에서 선 감독의 빠른 교체는 일면 수긍이 간다. 1-2로 뒤진 상황에서 추가점을 준다면 경기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본 판단도 정확했다. 하지만, 박경태의 선택에는 의문이 든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마해영 XTM 해설위원은 "삼진을 잡을 능력이 없는 박경태는 장타를 맞기 쉽다. 오히려 아직 힘이 남는 소사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결과론적으로 박경태를 투입한 것은 최악의 수가 되어버렸다. 박경태는 손아섭에게 쇄기타를 얻어맞았다. '만약 ~으면 어땠을까'하는 가정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투수 교체에 관한 최고 권위자라고 불리는 선 감독이 자신의 명성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원인이야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이런 모습을 벗어나서 과거의 날카로운 교체 타이밍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4강 복귀의 꿈도 점점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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