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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사회부 기자 '대낮에' 유모차 끌고 도심길 걸어보니…

[기타] | 발행시간: 2013.09.14일 10:27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평일 낮 유모차 끌고 서울 시내 걷기. 워킹맘, 그것도 사회부 기자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데스크의 지시로 '벌건 대낮'에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 약 3㎞, 성인 걸음으로 44분 정도가 소요되다는 이 길을 12일 오후 유모차와 함께 걸어봤다.

날씨는 마침 해가 나지도, 비가 오지도 않는 산책하기 좋은 '흐림'. 15개월 난 딸아이, 이은설양의 기저귀와 간식, 여벌옷, 장난감, 손수건, 물티슈 등으로 가득한 백팩을 메고 오후 1시30분 광화문광장에서 야심차게 출발했다.

◇의외로 잘 정돈된 횡단보도 턱

서울의 중심, 광화문이라서 일까.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만난 횡단보도의 턱은 유모차, 자전거 등의 바퀴가 지나가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횡단보도를 지나 청계광장에 들어서자 왼편에서 청계천 입구의 인공폭포 물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신난 듯 유모차 안에서 발을 구르며 사방팔방 세상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함께 산책길에 나선 친정어머니 역시 오랜만에 딸, 손녀와 길을 걸으니 신이 나셨다.

시청광장에 들어서니 추석을 맞아 장터가 들어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가뜩이나 좁은 인도에 천막이 들어서고 그 옆을 유모차를 밀며 지나가려니 괜히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현주야, 거기 물웅덩이 조심해라." 전날까지 비가 왔던 탓인지 군데군데 있는 물웅덩이는 유모차를 밀기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플라자호텔, 웨스틴조선호텔 등을 지나 한국은행 본관 앞에 이르니 큰 사거리와 횡단보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역시나 횡단보도 턱은 경사가 져 있어 유모차를 밀고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많이 좋아졌다. 유모차를 끌고 이렇게 시내를 누빌 수 있다니, 세상 많이 변했네." 어머니의 감탄과 함께 유모차는 매끄럽게 굴러갔다.

명동역 근처로 진입하니 한 카페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지 굉음을 올리며 불꽃이 튀고 있었다. 아이가 놀랄까 걱정하며 지나가는데 한 인부가 유모차를 발견하더니 잠시 공사를 멈출 것을 지시한다. 고맙다고 목례를 하며 공사현장 옆을 서둘러 지나갔다.

서울프린스호텔 옆을 지나니 남산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다 왔구나' 하는 마음도 잠시,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에 유모차 손잡이를 쥔 손이 후들거렸다.

손에 힘을 주고 유모차를 밀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아이는 엄마가 힘든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모차 안에서 몸부림을 치며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것에 대해 싫증을 냈다. 아이를 달래며 길을 오르길 반복,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어머니와 함께 유모차를 번갈아 밀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도착하자 둘 다 한여름 등산한 것처럼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남산 3호터널 입구에 케이블카와 연결되는 무료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던데, 다음부터 유모차와 함께 남산에 오를 일이 있으면 꼭 이를 이용하리라 다짐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3시. 포털 사이트가 알려준, 성인 걸음으로 44분 정도가 걸린다던 이 길이 유모차를 밀고 오니 1시간30분이 걸렸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입장은 무료, 길가에 펼쳐진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딸과 함께 센터에 들어섰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서울시가 국내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원, 육성하기 위해 1999년에 설립한 시설로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용 극장인 ’서울애니시네마‘, 기획·테마 전시공간,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직접 느껴보는 체험공간 등이 있다.

유모차를 끌고 건물 입구로 가는데 이런, 모두 계단이 아닌가. 어머니와 함께 당황해하고 있자 경비가 다가와 건물 옆쪽에 자동문이 있어 유모차는 그 쪽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체험공간이나 극장을 이용하기엔 딸이 아직 어리다고 판단, 전시실 등을 구경하며 건물 전체를 둘러봤다. 딸아이는 복도에 있는 각종 만화 캐릭터 모형을 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흘렸던 땀과 고생이 보람으로 느껴졌다.

◇부족한 시민의식 여전

유모차를 밀고 1시간30분 동안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들은 유모차 안 아이를 보자 "귀엽다"며 덕담을 건넸고 일부는 길을 내주기도 하는 등 상당수 사람들이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족한 시민의식을 그대로 내비쳐 아이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산책길에 나선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점심을 먹으려 한 건물에 들어서니 식당이 2층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작은 공간의 엘리베이터가 모습을 드러냈고 일부 사람들은 좁은데 유모차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에 대한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유모차를 밀치면서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거의 끝난 점심시간이 그들을 급하게 만든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 가관은 인도에서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이었다. 바람을 타고 뒤에서 걸어가는 아이와 엄마에게 그대로 담배 연기가 닿았지만 좁은 길 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차도와 인도 경계 턱에 불법주차를 해놓은 얌체족도 유모차의 행진을 주춤거리게 만든 주요인 중 하나였다. 차를 피해 차도로 내려가 높은 턱을 다시 오르길 몇 번 반복, 서울은 넓고 불법주차 차량은 많았다.

유모차는 스스로 걷기 힘든 아이들의 발이자 부모에게는 아이와 함께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좋은 외출수단이다. 하지만 우리네 엄마, 아빠들은 우리나라에서 유모차로 길을 걷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토로한다.

울퉁불퉁한 도로, 차도와 인도를 경계 짓는 높은 턱,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없이 계단뿐인 건물과 좁은 엘리베이터 등은 유모차와 함께 외출한 부모들을 한숨짓게 한다.

게다가 유모차를 태우길 꺼리는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 유모차 바로 앞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인도를 걷는 흡연자들, 좁은 길이나 공간을 유모차가 차지하면 눈총을 주는 사람들 등 사람들의 유모차에 대한 배려 부족은 아이와 함께 외출한 엄마, 아빠를 위축되게 만든다.

뉴시스와 베이비뉴스는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영유아들의 보행권 보장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도로 및 교통시설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시, 서울시의회, LG전자 후원으로 지난달부터 '유모차는 가고 싶다' 연중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15일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특설무대에서 서포터즈 소망식을 개최, 영유아 보행권 확보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번 행사가 유모차와 함께 외출한 부모들의 마음을 활짝 웃게 해줄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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