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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2)-넝마주이에 나선 소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1.30일 13:23

가난에 기가 눌려 동무들과 말도 걸지 못하던 학생 최정금(뒤줄 오른쪽 두번째).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물자공사의 종업원들도 모두 나를 알게 되였다. 생산물자공사의 회계 리명옥의 어머니는 내가 어린 나이에도 집을 돌볼줄 안다면서 나를 대견하게 여기여 늘 맛갈스런 먹거리를 갖다주군 했다. 아주머니의 그 자애로움과 선량함에 나는 평생 감격해했고 고마움을 표달하기 위해 그가 세상뜰 때까지 친딸 못지 않게 살뜰히 보살펴드렸다.


어려울 때, 배고플 때 눈물과 함께 씹어먹었던 그 만두는 부유해진 먼 후날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더 맛있고 영원한 진미로 가슴속에 남아있었다. 힘들었던 그 시절 내가 받았던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후에는 응당 크게 갚아야 한다는것이 나의 마음속 신조로 되였다.

비록 적잖은 석탄콕스들을 주어왔지만 불쏘시개가 없으면 안되였다. 처음에 나는 무엇으로 불쏘시개를 하는지 몰라 어머니가 거적을 짜다 남긴 벼짚으로 볼쏘시개를 했다. 그런데 벼짚이 불에 잘 붙지 않아 여간만 애를 태우지 않았다. 벼짚에 불을 붙이고 한손으로 풍구를 돌리면 붙으라는 불을 붙지 않고 매캐한 연기만 온 집안 가득 차군 했다. 밖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내가 반나절이 되도록 약을 달여내지 못하니 아버지가 약을 드셔야 하는데 빨리빨리 달이라고 재촉해댔다. 나는 안타까운 나머지 눈물만 소리없이 삼키군 했다.

후에 나는 콩깍지가 불쏘시개에 좋다는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가을이 끝나면 나는 콩밭에 가서 콩깍지를 주어오기 시작했다. 콩깍지를 주으면서 콩이삭도 주을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주어온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팔아 푼돈이라도 만들었다. 주어온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팔면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이 어린 나의 마음을 크게 들뜨게 하였다. 나는 온 겨울내내 작은 바구니를 옆에 끼고 밭에 나가 콩알을 주어오군 했다. 날씨가 매섭게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치면서 두손이 꽁꽁 얼어들었지만 나는 내가 주은 콩으로 두부를 해서 돈을 벌수 있다는 일념에 추위도 배 고픔도 항상 잊군 했다.


더 많은 콩을 줏기 위해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쥐굴을 들추어내는 방법이였다. 나무막대기를 쥐굴에 넣고 들쑤셔 쥐를 놀래켜 도망치게 한후 다시 쥐굴을 파서 쥐가 저장해놓은 콩을 파내군 하였다. 때론 쥐굴을 파다가 갑자기 굴속에서 커다란 쥐가 뛰쳐나오면 너무 놀라서 머리칼이 쭈볏해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때문에 쥐굴을 들추는 일을 그만둘수가 없었다. 머리속에는 오직 콩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어야 어머니가 더 많은 두부를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뿐이였다.


그때는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이여서 쥐병같은것은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쥐굴에서 파낸 콩으로 만든 두부라도 우리는 너무나 맛갈스럽게 잘도 먹군 했다. 무엇이든지 먹을수만 있으면 모두 먹어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였는데 쥐구멍에서 파낸 콩으로 앗은 두부는 사치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해 여름 나의 거듭되는 지청구에 어머니는 나더러 어머니를 도와 빨래를 할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는 빨래를 가득 안고 강가에 나가 어머니가 빨래 하던 그 모습을 흉내내면서 옷가지들을 씻기 시작하였다. 빨래가 하나 둘 깨끗이 씻어지면 기분도 좋아져 저도몰래 흥얼흥얼 코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의 중산복이 어느새 내 손가락사이에서 빠져나가면서 강물에 떠내려가는것이였다. 그 중산복은 아버지의 단벌 나들이였던것이다.


급해 맞은 나는 손에 쥐였던 방추를 던져버리고 강물에 뛰여들어 황급히 옷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몇발작 내디디지 않았는데 강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아버지의 옷을 반드시 건져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잊고있었다. 그러나 옷은 강물속에 밀려들어가 인차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너무도 안타까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강기슭을 오르내렸다. 아무리 찾아헤매도 아버지의 중산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옷을 잃어버린후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서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것이 두려웠다. 빨래를 하여 어머니에게 도움을 드린다는것이 되려 아버지께서 그토록 아껴입는 나들이옷을 잃어버렸으니 어머니에께 뭐라고 말씀드린단 말인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나는 물에 흠뻑 젖은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앞에 선 나는 입속말로 겨우 아버지의 중산복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생각밖으로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약간 찌프러진 량미간을 보며 그 괴로움을 읽을수 있었다.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어머니,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를 속씨원히 때려주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더니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것이였다. 《아니야, 네탓이 아니야. 엄마가 엄마구실 못해서 너희들을 고생시키고있구나. 엄마가 어떻게 방법을 대보겠으니 너는 근심하지 말거라…》


어머니는 이 일로 나를 꾸지람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어떻게 하든지 돈을 벌어 아버지한테 꼭 새 옷을 사드리겠다고 속다짐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 갔다 하학한 뒤면 매일마다 거리에 나가 쓰레기들을 뒤져서는 페물들을 주어 수구소에 가져다 팔아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석달후 나는 끝내 돈을 모아 아버지께 새옷 한벌 사드리고야말았다!


/연변국제무역그룹 회장 최정금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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