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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해동지와 민족구역자치제도 /김영만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11.03.29일 07:59
주덕해동지 탄생 100돐에 즈음하여

- 김영만 원 주정협 부주석

금년 4월 우리는 걸출한 공산주의자이며 우리 당의 우수한 민족간부인 주덕해동지의 탄생 100돐을 맞이하게 된다. 주덕해동지의 양성과 령도하에서 사업하던 세월을 돌이켜보노라면 저도 몰래 오랜 지도일군이자 오랜 스승이였던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모의 감정이 북받쳐오름을 금할수 없다.

필자는 1948년 8월 할빈민족간부학교에서 학습할 때 주덕해동지를 알게 되였다. 그때 그는 아직 40세도 안된 혈기왕성한 청년이였다. 나에게 다가온 그의 첫인상은 신중하고 친절하며 상냥하고 붙임성이 좋다는것이였다. 당시 그는 동북행정위원회 민정부 민족처에서 처장 겸 민족간부학교 교장을 맡고있었다. 반년이 넘는 학습기간 주덕해동지의 몇차례의 강의와 연설에서 나는 심각한 교육을 받았다.

당시 주덕해동지는 할빈민족간부학교에서 강의할 때 민족리론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민족문제는 혁명 전반 문제의 일부분으로서 혁명에서 승리하여야만 해결할수 있다. 조선족문제도 조선족인민들이 다른 민족과 함께 손잡고 반봉건, 반관료주의혁명에서 최종 승리를 하여야만 해결할수 있다. 민족리익은 반드시 무산계급 전반 리익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조선족 유지인사들은 민국초기에 이미 조선족자치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반동통치하에서는 아예 실현할 방법이 없었다. 수많은 혁명청년들은 민족해방을 위하여 중국혁명에 뛰여들었는데 주덕해동지가 바로 그중의 걸출한 대표이다. 주덕해동지는 남정북전하면서 모든 정력을 중국혁명과 조선족의 해방사업에 바치였고 민족구역자치제도의 건립과 시달에 토대를 닦아놓았다.

1949년 봄, 주덕해동지는 중공연변지위 서기 겸 연변전원공서 전원으로 전근하였다. 당시 그는 연변에서 조선족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것이 인재양성이라고 여기였다. 주덕해동지는 민족구역자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연변대학건설을 기획하였다. 비록 건국전이긴 하지만 그가 일찍 이런 거창한 계획을 구상하고있었다는것이 참말로 대단하였다. 당시 연변의 많은 지식인들이 조선반도에 나가다보니 인재가 부족하였다. 주덕해동지는 동북3성의 지식인들을 동원하고 흡수하여 연변대학에 와 교편을 잡도록 하였고 또 외지에 파견하여 연수하는 경로를 통하여 인재를 양성하여 중국에서 처음으로 소수민족대학을 창설하였다. 몇해 사이에 연변대학에서는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는데 연변의 당정기관 특히 문화, 교육분야의 간부 대부분은 연변대학 졸업생들이였다.

주덕해동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속히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청사진을 계획하고 실시하였다. 건국초기 길림성당위의 령도하에 연변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회복하기 시작, 몇년동안의 노력을 거쳐 농업이 발전하고 공업이 일떠섰으며 인민생활이 큰 개선을 가져왔다.

조선전쟁이 폭발하면서 그 불길이 연변에까지 뻗쳤다. 중앙정부의 령도하에 연변인민은 항미원조운동에서 앞장서 참전참군하고 전선에 뛰여들었으며 항미원조의 승리를 위하여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당시 주덕해동지는 연변의 형세를 분석하고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설립할 조건이 이미 구비되였다고 여겼다. 1951년 가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2주년을 경축할 때 주덕해동지와 최채동지는 중앙인민정부로부터 국경관례활동에 참가하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주덕해동지는 북경에서 전국정협좌담회가 열리는 기회를 빌어 연변조선족자치구를 건립할데 관한 요구를 중앙에 제기하였다. 최채동지도 민족좌담회에서 같은 요구를 제출하였다. 1952년 봄, 중앙은 팽택민을 단장으로 한 민족고찰단을 연변에 파견하여 한 면으로는 당의 민족정책을 선전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연변의 정황을 료해하여 북경으로 돌아가 중앙에 보고하였다. 1952년 여름 중앙정부는 정식으로 연변조선족민족자치구를 설립할데 관한 보고를 비준하였다.

중공연변지위는 주덕해동지를 주임으로, 동옥곤동지를 부주임으로, 최채동지를 비서장으로 한 연변조선족자치구준비위원회를 건립하였다.

이때로부터 주덕해동지는 전력을 다해 자치구설립준비사업을 틀어쥐였다. 당시 그는 자치구사업을 기획하는데서 가장 중요하고 관건적인 절차는 바로 힘을 모아 애국주의와 민족리론, 민족정책 선전교양을 착실히 하여 광범한 간부와 군중의 인식을 일층 통일시키고 민족구역자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한 인식을 명확히 하는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조국관문제,이것은 근본적으로 정치립장문제이다.당시 력사적원인으로 하여 적지 않은 간부와 군중들은 그릇된 조국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자치구건립문제를 론할수 없었다. 당시 어떤 간부들은 “쏘련은 무산계급의 조국이고 조선은 진정한 조국이며 중국은 거주하고있는 곳”이라고 여겼다. 이에 대하여 주덕해동지는 중국조선족의 백여년 동안의 력사로부터 중국은 조선족의 조국이라는것을 론증하였다. 그는 “19세기중엽 조선족은 연변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몇십년의 간고분투를 거쳐 자기의 땀방울로 연변대지를 일구어냈고 피와 생명을 바쳐 자신의 고향을 건설하였다. 새로운 생산관계속에서 조선족은 자기 민족 내부는 물론이고 한족 등 기타 민족과도 광범위한 경제적교류를 전개하였다. 조선족의 운명은 중국의 기타 민족과 밀접히 련계되고 조선족은 중국의 한개 소수민족으로 되였다. 일본제국주의가 연변을 침략했을 때에도 조선족은 역시 기타 민족과 함께 항일하여 고향을 보위하고 연변을 보위하였다. 항일전쟁 승리후 연변의 조선족은 또 해방전쟁에 참가하였다. 해방구의 조선족은 기타 민족과 동등하게 토지를 나눠가지고 진정으로 토지의 주인이 되였다. 이른바 조국은 바로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의 모든 권리를 향수하는 동시에 공민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국가를 말한다. 하기에 중국은 곧 조선족의 조국이다”고 말씀하였다. 당시 광범한 간부와 군중들은 주덕해동지의 조국관에 대한 해석을 듣고 마음속으로 깊이 감복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설립하는 문제에서 적지 않은 동지들이 부동한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일부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모호한 인식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연변에서도 쏘련처럼 련방제를 실시하고 동맹공화국을 건립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문제는 중대한 리론문제이며 또한 중요한 정치문제였다. 주덕해동지는 인내성 있게 당시 쏘련은 왜 련방제를 실시하고 중국은 왜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실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석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실제로부터 출발해야 정확한 방침정책을 내놓을수 있다. 쏘련은 중국과 다르다. 당시 로씨야는 자본주의국가이고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국가들은 모두 로씨야의 통치를 받고있었다. 그리고 주변국가들은 모두 단일민족형식의 국가였는데 쏘련이 국가련방제를 실시하면서 여러 나라들이 동맹공화국의 형식으로 쏘베트련방에 가입하였다. 이와 달리 중국은 예로부터 다민족이 통일된 국가이다. 비록 짧은 시기의 분렬이 있었지만 대부분 력사는 그래도 다민족이 통일된 집권국가였다. 민족분포정황에서 보면 여러 민족은 장기간 교류하고 서로 영향주고 서로 동화하며 또 여러 민족이 서로 교차되여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였다. 사실은 국내의 어느 민족구역이든 모두 단일한 소수민족이 아니며 민족구역마다 모두 몇개 민족이 뒤섞여 살고있다. 당중앙과 모주석은 쏘련의 모식과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지 않고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적인 진리를 중국의 민족정황과 서로 결합시켰다. 그리하여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실시하는것을 중국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제도로 하였다. 이렇게 하면 중앙의 통일령도아래 소수민족의 거주지방에서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실시할수 있다. 큰 거주구역이든 작은 거주구역이든 모두 부동한 급별에 따라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실시할수 있다. 한개 소수민족이 규모에 따라 성급민족자치를 실행할수도 있고 현급민족구역자치를 실행할수도 있다. 례를 들면 조선족은 연변에서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세우고 민족자치제도를 실행하고 장백현의 조선족은 현급조선족자치현을 건립하였으며 동북3성의 기타 조선족거주지역은 조선족자치향을 건립하였다. 이 제도는 소수민족들이 모두 민족자치의 권리를 향수할수 있게 하였다. 이 제도는 민족자치와 구역자치의 상호 결합으로서 소수민족이 자체로 내부사무를 처리하면서 자치권리를 향수하는것이다. 이외 기타 민족과 다른 지방 한족들이 향수하는 여러 권리까지 향수하는것이다. 이 제도는 정치적요소와 경제적요소의 상호 결합이고 중앙의 통일령도와 자치지방의 통일이며 중앙권위를 수호하고 중앙의 방침정책을 집행하는 좋은 경로이다. 그리고 타방으로 자치지방의 특수성에 따라 방침정책을 령활하게 장악하여 중앙과 지방의 적극성을 충분히 조절할수 있는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구 설립을 준비하는 몇개월동안 연변에서는 특별히 애국주의교양, 민족리론과 민족정책교양사업을 전개하여 전 주 간부, 군중들의 조국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였고 각계, 각민족 대표대회 소집을 위해 공고한 사상기초를 닦아놓았다.

1952년 8월 28일부터 9월 2일까지 연변 각계, 각 민족 대표대회가 연길시의 쓰딸린극장에서 거행되였다. 회의에서는 열렬하고도 심도있는 토론과 심의를 거쳐 연변조선족자치구 시정방침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주덕해동지를 연변조선족자치구 주석으로, 동옥곤, 최채동지를 부주석으로 선거하였으며 연변조선족자치구 정부도 구성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설립은 연변력사에서 새로운 한 페지를 열어놓았는바 이는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이 연변에서의 위대한 승리이기도 하였다.

주덕해동지는 자치구 주석을 담임한후 최선을 다해 경제건설을 틀어쥐고 수리건설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농업생산 특히 소사양업을 대폭 발전시켰으며 농업생산동력문제를 해결하였다. 연변특산농업을 발전시키고 만무과원을 개발하였으며 공업생산과 문화교육사업을 발전시키면서 연변의 현대화건설에 든든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된후 구정부는 계속 민족단결사업을 틀어쥐였고 이 사업을 제도화하고 규범화 하였다. 당시 자치구정부 민정처장이였던 조룡호동지의 건의에 따라 구위원회, 구정부는 9월을 “민족단결교양의 달”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매년 9월이면 민족단결교양월간활동을 전개했는데 내용은 민족정책을 학습하고 민족단결사업경험을 총화하고 민족단결모범을 표창하는것이였다. 이 활동을 통하여 경험을 총화하고 민족단결을 강화하고 각항 사업을 추동하였는바 몇년간의 실천성과가 현저하였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는 연변의 경험을 매우 중시하였으며 각 지방의 고찰단도 분분히 연변에 와 경험을 전수받았다. 그때 신강위글족자치구 서기 왕은무동지는 특별히 고찰단을 연변에 보내여 민족단결경험을 학습하게 하였는데 연변의 경험은 신강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주덕해, 요흔, 전인영 등 로지도자들은 연변에서 민족구역자치제도 등 중앙의 각항 방침정책을 참답게 관철하고 집행하였으며 부단히 민족단결을 강화하고 공농업생산을 힘있게 추진하여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이 편안하게 살고 즐겁게 일하면서 변강을 공고히 하는데 튼실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개혁개방이래 국무원은 세번이나 우리 주를 전국민족단결모범자치주로 명명하여 전국의 전형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주덕해 등 로세대 지도자들이 견실한 민족단결토대를 닦아놓은것과 갈라놓을수 없다.

주덕해동지 탄생 100돐을 기념하며 우리는 로일대 혁명가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당의 민족리론과 민족정책을 창조적으로 관철집행하고 평등, 단결, 호조의 사회주의 민족관계를 구축하며 민족단결을 강화하고 변강을 공고히하며 초요사회건설템포를 다그쳐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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