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벽두다. 지난해는 음력으로 경인년, 흰호랑이의 해라 백호가 한번 따웅하더니 눈깜빡할 사이에 한해가 훌쩍 넘어갔다. 그뒤를 곧이어 옥토끼가 깡충깡충 뛰여오니 어느새 신묘년에 잡아들었다. 그래서 공자가 내가에 이르러 “흘러가는것이 이와 같느니라”하고 읊조렸으리라!
이제 며칠후면 대한 그리고 보름이 지나면 립춘이다. 올해는 음력설이 립춘전날로 동행하고있다. 세월이 류수와 같아 정말 광음을 다투어야 하는가보다.
민속학자 천수산선생에 따르면 예로부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이라 하였다. 이외에도 정월단, 세수(岁首), 년수(年首), 정초(正初) 등 여러가지 설법이 있다. 이런 설법의 유래를 고증해보면 《삼국유사》에는 이렇게 기재되였다. 매년 첫번째 해일(亥日), 자일(子日),오일(午日)에는 온갖 일을 꺼리고 근심되고 하여서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는데 이를 달도(怛忉)라고 한다. 그래서 설날을 “섧다”, “슬프다”는데서 기원되였다고도 한다. “몸을 사린다”, “근신한다”고 하여 “신일(慎日)”이라 하고 나이를 하나 더 먹는다고 하여 세(岁), 만물이 소생한다고 하여 산소크리트어로 “살(sal)”이라고도 하였다.
옛사람들은 또한 일년 사계절에 따라 명절을 네번에 나뉘였는데 음력 원단(元旦)을 춘절, 여름을 맞아 단오절을 하절(夏节), 가을을 맞아 중추절 우리 민족은 추석을 추절(秋节), 겨울에 진입하여 동지날을 동절(冬节)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날은 작은 설이라면서 동지오그랑죽을 써 먹는 습관도 생긴것이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춘절, 다시 말하면 음력설을 쇠는 습관이 전해내려왔다. 실상 음력설은 지구촌의 중화권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공동으로 즐기는 민족을 초월하고 국계를 벗어난 만천하가 공동으로 즐기는 전통적인 명절이다. 여기는 리념의 다름도 정치적색채도 띠지 않고 오직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에 대한 동경, 미래의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축원, 가정과 고향에 대한 사랑, 친척과 친우들에 대한 우정 등 인간본능에서 출발한 순수한 명절인것이다. 여기서는 피부와 종족이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이 포섭되고 모든 인간들에 접수되는것이다.
설명절은 련휴일과 본질적구별이 있다. 련휴일은 국가가 공민들에 대한 복리의 성질을 띠고있는바 일주일간 사업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재충전하여 일을 더욱 추진하자는데 있다. 하기에 당사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배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설명절은 그 내포가 아주 심오하다. 심오한 문화적내포와 민족적정신, 풍속과 습관을 동반하고있는것이다. 가족과 민족적응집력을 키우는 수단의 하나로서 그 문화적풍경선을 이룬다.
음력설은 고향을 찾고 온 가정이 단란하게 한자리에 모여서 천륜지락을 향수하는것이 기본이다. 일자리를 찾아서 돈벌이감을 찾아서 그리고 기타 일로 하여 지구촌의 그 어디를 가든지 설에만은 되도록이면 고향을 찾고 부모곁을 찾아서 한자리에 모인다. 지난날에는 오지 못하게 되면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였다. 비록 인젠 자취를 감추었지만 지어 전보까지 쳤다. 현대인들은 메일을 쓰고 인터넷을 통하여 화상상봉도 하면서 정을 나눈다.
지난해 년말에 거행된 전국인구보편조사에도 나타났지만 우리 겨레들의 인구가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는 대폭 줄었지만 료녕성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늘어났다. 한국인들이 가세한것을 포함하여서 말이다.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960만평방킬로메터의 신주땅의 방방곡곡에 그 어느 구석이든지, 지구촌의 그 어느 땅에서 나갔든지 거지반 고향을 찾고 뿌리를 찾아온다. 그제날부터 내려온 미풍량속이 지금까지 그 맥을 끈끈하게 잇고있는것이다.
이제 며칠후면 신묘년의 첫날 음력설이다. 이제 이 날만은 정말 모든것을 제쳐놓고 즐겁게 온 식구가 즐기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자. 설이 지나면 또 한해를 눈코뜰새 없이 맴돌아야 할터인데 말이다. 그래서 특히 화제에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