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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한영남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11.01.13일 10:56
요즘의 우리 문학지들을 보면 30대와 40대들의 글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어 흐뭇하다. 청년작가들의 글은 우선 같은 젊은이로서 공감할수 있는 부분이 많아 독서로의 대화가 보다 편하다는 리유 말고도 나름대로 조합시킨 신선한 언어색갈과 손바닥에 놓인 수은처럼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활발한 사유, 자유분방한 쟝르적구조의 신건축학 등으로 문학지에 생기를 주입하고있기때문이다. 특히 청년작가들의 리더격인 김혁소설가는 소설가의 안목으로 고향이 낳은 겨레의 위대한 시인 윤동주를 소설화하여 각광을 받고있으며 화가 한락연도 소설화한다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 잔뜩 기대치를 부풀려주고있다.

글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조광명시인은 시와 더불어 도시수필을 쏟아내며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이제는 언젠가 접었던 소설펜을 들고 단편소설에 중편소설까지 내놓는것을 보면 이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장편으로 구풍을 몰아오지 않을지 문인들의 귀추가 주목되기도 한다. 중문으로 창작하면서 중국문단에 먼저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우리글로 장편소설까지 련재하고있는 정용호소설가, 드바쁜 사업의 여가에도 단편과 중편, 수필과 가이드수기, 아빠일기까지 쏟아내며 녹슬지 않은 붓을 자랑하는 장학규소설가, 작품량은 많지 않지만 진지한 창작태도로 자신의 작품마다에 혼을 불어넣기에 열심인 량영철소설가, 거기에 막 마흔에 육박하고있는 구호준소설가와 조룡기소설가… 이들은 우리 문학의 단층현상을 걱정하시는 모든 이들을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해주며 나름 문학과의 전쟁에 자신이 던진 출사표를 항상 기억하고있는 참다운 작가들이다.

그런가하면 리범수, 박초란, 리진화, 김경화, 김금희, 박룡길 등 30대들과 20대 대표인 김서연은 몇 안되는 우리 문학지들을 휩쓸면서 신진력량들의 문학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그 작품량이나 작품질로 세상에 알리고있다. 지역적으로 보아도 상대적으로 문학인들이 많은 연변 말고도 장춘, 길림지구, 흑룡강지구, 료녕성, 청도, 강남 등 지역으로 변별되는 그들의 문학은 활발한 조짐을 보이고있고 문학모임 같은것도 꽤 자주 눈에 밟혀와 그걸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조선족문학의 전망은 한결 밝다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심하거나 룰랄라를 부르지 못하는 리유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 리유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오늘 이 마당에 내놓고 같이 고민해보고저 한다.

  1, 문학테두리-신변잡사와 시대적 동보

인간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차피 겪게 되는 이런저런 시대적 대환경을 떠날수 없다. 이름하여 시대적동물인것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창작임에도 그 창작물에 그 시대의 모습들이 얼비치는것을 어쩔수 없게 된다. 력사제재를 쓴다고 해도 오늘날의 작가의 붓끝에서 다뤄지는 력사소설이나 장편서사시 등은 오늘날의 현실모습들이 녹아있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하물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것을 쓰는 수필은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문제는 청년작가들이 지나치게 신변잡사에 안주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다. 아무래도 문학은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것을 다뤄야 보다 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수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적 높이거나 세계속의 우리의 자세 등으로 미루어보면 다소 처지고있다는 안타까움이라고나 할가. 청년작가들이 수상은 많이 하고있지만 남겨질만한 력작들이 적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이 면에서 김혁소설가의 <시인 윤동주>는 굵직한 테마에 어울리게 범민족적인 공백을 메운 좋은 보기라 할수 있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명시들이거나 세계급 명편들은 하나같이 그 시대의 아픔과 그 시대를 살고갔던 인간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력사책이 아닌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 시대의 인간군상들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한국작품만 보면서 그것만이 문학의 자대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될줄로 안다. 중국, 일본 나아가서 아시아나 미국, 유럽의 작품들을 많이 섭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을 메워가는 일만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문학인들의 바른 자세가 될것이다. 특히 중국사정을 무시하거나 경제가 아직 덜 발달했다는 리유로 5천년 문명을 자랑하는 중국의 문화를 우습게 여기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반드시 짚고넘어갈것은 중국문학은 결코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것처럼 저 경제만큼이나 세계선진국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을뿐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막강한 저력을 가지고있다고 봐야 한다는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학테두리를 좀 더 넓혀야 우리 청년작가들한테서도 <보바리부인>이나 <모란이 피기까지는> 같은 작품들의 탄생을 기대해볼수 있을것이다.

  2, 량과 질의 변증볍 허물기

  량적추구를 하느라면 질적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변증법은 가르치고있다. 얼핏 들으면 량산을 하다보면 고품질의 제품의 생산은 거의 불가능한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변증법은 깊은 연구가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서 생긴 어페라고 해야 할것이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량산을 했기에 질적하락이 초래된것이지 량적추구가 결코 질적하락의 전제조건으로는 될수 없기때문이다. 만일 세상 모든것이 꼭 전부 반드시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저 대기업들은 전부 망해야 도리가 맞을것이다. 또 평생 90여부의 장편소설을 써낸 발자크의 작품들도 명작이 없어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질적보장을 하면서도 량산을 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 많고있는 까닭이다. 요즘 우리 청년작가들은 원고청탁때문에 글을 쓰는 경우가 매우 많은것으로 알고있다. 그만큼 많은 기성작가들이 글을 쓰지 않고있기때문이다.

금년에도 본의 아니게 두세가지 우리글 잡지의 편집을 맡아보면서 원고청탁도 많이 했었다. 그렇게 짜맞추기식으로 잡지를 만들어냈던 아픈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하긴 필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금년에 시, 소설, 수필, 평론, 만필 등 각종 쟝르의 글들을 수십편(수)이나 그야말로 몇 안되는 우리글 문학지에 발표를 했었다. 그 전부가 원고청탁으로 쓴 글들이다.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둔 글이라면 그런대로 낯가림이 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필명으로 발표하는것도 너무 부끄러운 글들이였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학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스스로 충전하고 스스로 탁마하면서 스스로 대비해야 할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몇 안되는 우리글 문학지를 읽으면서 그나마 우리 문학에 대한 단갈증을 해소하고 계시는 저 독자분들에 대한 최저의 례의이기때문이다. 문학에 대한, 독자에 대한, 시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을 사명감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시점이다.

  3, 작가적자세와 예술적승화

  글을 쓴다고 모두 작가인것은 아니다. 작가적인 량심과 작가적인 자세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작가라 불리워도 부끄럽지 않을것이다. 어느 한 조각가는 추운 겨울날 자신의 조각품을 안고가다가 그 조각에 자신의 옷을 덮어주고 자신은 그 곁에서 얼어죽었다는 일화를 본 기억이 있다. 미친놈의 짓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작가적인 광기가 얼마쯤 있어야 하지 않을가 싶다. 어느 한 선배가 이미 발표된 자신의 글을 보면서 토 하나 고친것까지 체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작가란 아마 저런 사람이겠지 하고 감탄한적이 있었다. 편집사업을 하다보니 자연 남들의 원고를 볼 기회가 많게 된다. 철자, 띄여쓰기부터 론리적인 착오, 상식적인 오유 등이 란무하는 글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오타라고 가볍게, 쉽게 말하지 말자. 30년전의것인가 아주 오래된 원고를 본적이 있다. 어느 잡지사에서 이미 채용한 원고들을 자료삼아 남겨둔것인데 시간이 꽤 흘러서 이제 그것을 정리하게 되였던 모양이다. 얼핏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그 작가분은 우리 문단에서는 너무 쟁쟁한 원로작가이셨다. 그런데 그런 분이 보낸 육필원고(그때는 컴퓨터가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음)인데 토 한글자가 틀린 곳을 그냥 필로 그어버리고 고친것이 아니라 종이를 원고지 한칸만큼 오려서 그우에 바르게 고친 글을 써서 붙인것이였다. 우리는 과연 오타에 대해 이토록 진지해본적이 있었던가?

자기가 쓴 글을 투고하기전에 한번만 더 훑어보아도 웬만한 오타정도는 쉽게 바로잡혀질것이다. 작가적인 마음가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정말 보다 진지해질 법이다. 그리고 수필이라고 하는데 그냥 감동이야기만 늘여놓은 글을 많이 보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이야기이지 수필이 아니다. 수필로서의 예술적승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수기와 수필의 본질적인 구별이라 할수 있겠다. 언젠가 어떤 문필회에서 산문시와 서정수필의 구별점에 대한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산문시는 아무리 산문투로 씌여졌다 하더라도 우선 시이고 서정수필은 아무리 서정이 질름질름 넘친다 하더라도 결국 수필이라고 저으기 단호하게 말한적이 있다. 하긴 뭇쟝르를 넘나드는 문학형식들도 많은 요즘이고보면 굳이 서정수필이요 산문시요 꼬집는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보다 진지한 작가적자세와 문학글의 예술적승화는 아무래도 우리 청년작가 모두가 한번쯤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가 싶다.

  4, 독서-문인들의 영원한 갈증

-저는 중국조선족들의 글을 읽지 않습니다. 읽을 글이 없기때문입니다.-제가 볼수 있는 시집들은 다 보았습니다. 이제는 시를 쓰기만 해야 할것 같습니다. 거의 24시간 메신저와 QQ를 켜두는 필자는 드문드문 답답한 친구들이 걸어오는 말들에 화딱지가 날 때가 있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 그런 친구들은 한두편의 작품을 발표하기만 하면, 또는 한두개의 문학상을 수상하기만 하면 대단한 작가나 된듯이 으시대기 십상이다. 천만에!문학작품에는 요행수가 있을리 만무하다. 앙금이 앉은만큼에 비례된 글이 나오기때문이다. 여기서도 김혁소설가는 좋은 표본이 되고있다. 지난 1996년 처음 김혁소설가의 집에 갔을 때 그 책장의 어마어마함과 거기에 미여지게 실려있는 책들을 보면서 감탄했던적이 있다. 지금도 그의 집 벽 한면을 다 차지하는 책장을 본 사람들은 김작가의 방대한 독서량에 혀를 내두르군 한다. 그 벽 한면을 차지하는 책장에 책이 두벌 세벌로 꽂혀있다면 말 다 한셈이 아닌가. 김창희시인, 홍군식시인, 량영철소설가 등도 독서광이라 할수 있다. 문인들은 독서에 대해서만큼은 영원히 갈증을 느끼는 군체이다. 지난 세기 90년대를 주름잡던 중국 최고의 작가들을 조사해본 결과 그 92%의 작가들이 <미쳐버린> 독서광이였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이 책 저 책에서 한두구절씩 뽑아 모자이크해서는 자기의 글인듯이 내놓는 어리석음은 두절되여야 할줄 안다. 어떻게 기회가 마련되여 한국에 가게 되였다. 일행은 십여명. 그런데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돌아보고 나온 사람들의 손에는 고작 한두권의 책들만 들려있었다. 리유인즉 책이 너무 많이서 고를수 없었다는것이다. 문제는 그것이다! 독서를 할줄 아는 사람은 책을 고를줄도 안다. 북경 왕부정서점 같은데 가서 자기가 보고싶은 책을 고를줄 아는 사람은 독서를 할줄 아는 사람으로도 통한다. 금년 여름에는 운 좋게도 북경에서 열린 국제도서박람회에 참가할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출판사들에서 자신들이 펴낸 베스트셀러와 신간들을 부스에 진렬해놓고 팔기도 했는데 만국기들을 무색케하는 그 도서의 다양함과 광고의 현란함에는 그저 혀가 홰홰 내둘러졌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다. 신간들을 보면서 발빠른 정보들을 입수하지 않으면 우리의 작가들이 때지난 우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된다는 얘기를 하고싶었다. 요즘처럼 건강이 우선시되던 때도 드물었다. 건강식이다, 영양식이다, 미용식이다 등 하여튼 이 먹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는 꽤 중대사로 부상하고있는 요즘이다. 그 건강지도서라는 책을 보았다. 영국, 미국의 학자들이 다년간 실험을 거쳐 밝혀낸데 의하면 당뇨병과 설탕은 직접적 관련이 없는것으로 나타났다. 설탕 하면 당뇨병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릇된 생활방식이 당뇨의 제일 큰 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금의 섭취량이 높으면 고혈압을 유발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소금의 주성분인 염화나트륨이 인체속에서 분해되면서 생기는 나트륨이온이 이 고혈압에 최대의 적으로 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요즘은 저나트륨염이라는것이 시중에서 팔리고있다. 말그대로 고혈압에 좋지 않은 염화나트륨의 량을 줄이고 대신 인체에 거의 무해하지만 짠맛을 가진 염화칼륨을 대신 넣은 소금이 그것이다. 독서를 하지 않고 이런 정보량을 어디서 얻으며 이런 정보량을 모르고 재래의 사고방식대로만 글을 쓴다면 언젠가 독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독자들도 우리와 같이 책을 보고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로 더욱 고급스러워진 우리의 독자들에게 웃음거리로 되지 않으려면 독자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수 밖에 없을것이다. 괜히 독자들이 소경 등잔기름값 내는 격으로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젊음이란 가능성투성이라고 한다. 타기(惰氣)를 버리고 작가적인 량심과 작가적인 자세로 자신이 정한 타깃을 위한 알찬 등반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바른 선택이 아닐가 생각을 여며본다. <최고보다는 최선>이라는 말이 류행어처럼 란무하고있다. 그러나 실패작이나 어수룩한 글들을 펑펑 쏟아내면서 최선을 다 했노라고 감히 말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적어도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도라면!

  2010년 12월 14일

흑룡강신문 2011-01-13 09: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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