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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들의 '불신지옥' 횡포, '표현의 자유'인가?

[기타] | 발행시간: 2012.06.21일 08:08
고대 로마시대에는 주피터 신전의 계단 꼭대기에 서서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외친 사람은 즉각 체포되어 사자의 밥이 되었다. 그로부터 1500년이 흐른 후 똑같은 장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사람 역시 즉각 체포돼 이단으로 규정되고 화형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표현 자유의 역사>(로버트 하그리브스 지음, 오승훈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

종교는 오랫동안 검열 권력으로 군림했다. 마녀 재판은 신앙과 양심에 대한 검열이었으며, 서적을 중심으로 문화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엄격한 검열이 시행되었다. 갈릴레이의 <천문 대화>,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등은 중세 금서 목록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책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니, 책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를(또한 인쇄자와 판매자를) 처벌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브루노는 투옥과 고문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산 채로 화형 당했다(☞지난 연재 바로 가기 : 화형을 당할 때도 그는 떨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브루노처럼 강건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신념을 철회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었다. 그 '관용'의 내용은 참수형을 한 뒤에 시체를 불태우는 것에 불과했지만.

마녀 재판이란 어차피 증거가 없었다. 애당초 '마녀'라는 게 없는데 무슨 증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피고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대중에게 설득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무언가 마녀를 특정하고 차별화할 근거는 필요했다. 그런 때 애용되던 것이 불의 심판과 물의 심판이었다. 불구덩이 속에 맨몸으로 집어넣어서 정해진 시간에 죽지 않으면 무죄, 타죽으면 유죄. 꽁꽁 묶어 물속에 넣었을 때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무죄, 부력 때문에 가라앉지 못하면 유죄.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앞 다투어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재판관들이 '실업자'가 될 수는 없었으니 죄인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했다. 에스파냐 종교 검열에서는 형식적 개종을 넘어서 내면까지 완전히 개종한 것을 입증하라고 요구했으며, 그 입증에 실패한 자들을 처단했다.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해되었고, 몇 십만의 유대인이 스페인을 탈출했다.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박멸'된 뒤에는 신교도들을 대상으로 종교 재판이 행해졌다.

성경을 감히 자국어로 번역하고자 했던 자, 삼위일체설을 믿지 않는 자, 성경만을 믿을 뿐 사제들의 권위를 부정하려 했던 자들처럼 교리 상의 이견을 가진 자들만 대상이 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내 딸이 처녀라는 것을 성모 마리아가 처녀라는 것보다 더 확신한다"고 말했던 아버지처럼 사소한 언행까지도 줄줄이 밀고당하여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교황(이노센트 4세)은 아예 고문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처형된 자의 재산은 몰수되어 밀고자와 교회가 차지했으므로, 재산을 노린 종교 재판이 횡행했다. "원한이 있는 자, 적대자, 노예 그리고 하층민들이 피고인을 이단자로 몰아 어떠한 심문도 없이 고문하고 감금하며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처형을 무기로 그들의 영혼을 위협한다." 브루노가 아니라 교황 식스토 4세의 비판이다. 교황조차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는 것.

이에 비한다면 중세의 이슬람은 다른 종교에 대해 훨씬 관대한 편이었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은 이교도라는 이유로 모든 주민을 학살했지만, 나중에 그곳을 수복한 이슬람은 기독교도를 단지 추방하기만 했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상투어는 이런 역사를 반전시킨 사기에 불과하다.

종교 검열은 근대 이후 국가 검열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종교 검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살만 루시디는 <악마의 시>를 발표했다가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으며, 반 고흐의 손자이면서 유명 영화 감독인 테오 반 고흐는 이슬람 비판 영화를 만들었다가 살해당했다. 중세에는 주로 기독교가 종교에 의한 표현 자유 억압의 주체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이슬람교가 그 주역으로 떠오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관용과 평화를 설파한 성인들의 가르침이 어쩌다가 그 후예들에게는 남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대 이후 서구에서 종교 검열이 약화된 것은, 종교의 위세가 약해진 반면 인권과 표현 자유에 대한 인식은 지속적으로 높아진 덕분이다.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예수와 십자가에 대한 비판적 예술 행위에 대해 내성을 충분히 길러왔다. 예컨대 화가 알리 하순은, 성모 마리아가 쓴 왕관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그려 넣었다. 게다가 코란 구절을 아랍어로 적어놓기까지 했다. 3대 유일신교의 상징을 혼합하여 그 종교의 뿌리가 동일함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2010년 이탈리아 경마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진 깃발에 새겨졌지만, 교회는 간단한 성명서 하나로 대응했을 뿐이다.

1999년 미국의 한 시사 주간지는 새 밀레니엄을 맞아 예수의 이미지를 업데이트하기 위한 예술 작품을 공모하였는데 '인민의 예수'라는 제목의 그림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예수를 흑인 여성으로 표상한 작품이었다. "검은 피부에 두터운 입술을 가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채, 슬프지만 자신에 차서 우리를 찾아 나선, 예수의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한 심사위원장은 수녀였으며, 이 잡지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였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예수의 이미지를 오늘날 미국에서 찾는다면 흑인 여성이 됨직하다. 오늘 한국에서 예수는, 부처는 어떤 모습으로 업데이트 되어야 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이에 비한다면 한국의 종교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신성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인내력이 매우 약한 편이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아직 표현 자유에 대한 관용을 배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동성애 찬양은 사탄'이라면서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19금'으로 만들었고(3년 전에는 '무해' 판정이었다), 박원순 시장에게 압력을 가해서 동성애자 단체 방문 축사를 무산케 만들었다. 동성애냐 이성애냐 하는 문제는 성적 취향의 문제에 불과하다. 달리 표현하자면 딸기를 좋아하느냐 아니면 수박을 좋아하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딸기 파'가 많다고 해서 '수박 파'를 구박해서야 되겠는가. 취향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그건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나 지키면 되는 일 아닌가. 왜, 무슨 권리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믿음과 취향을 강요하는가.

한국 기독교계가 검열 권력으로 군림하는 사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다빈치 코드> 등의 영화에 대해서도 신성모독의 혐의를 두면서 상영 반대 운동을 벌였다. 공영방송이 자기네 목사의 비리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려 하자, 그 방영을 저지하고자 나선 신도들도 있었다. 보기 싫으면 자기들이나 보지 않으면 될 일 아닐까. 왜 남의 사생활과 문화 향수권까지를 자기들이 결정지으려 하는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신들의 종교 자유는 매우 공격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소위 포교라는 이름 아래 단군상(檀君像) 목 자르기, 불상(佛像)에 십자가 긋기 등을 서슴지 않는다. 대표적인 보기는 아마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일 것이다. 이 문구는 중세 종교 재판을 문자의 차원에서 반복하고 있다. '내 종교를 믿지 않으면 너는 지옥행'이라는 협박을 지하철 앞에서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그 협박에 못 이겨 '전향'하는 사람이 5000만 명 중에 단 하나라도 있으려나. 오히려 이런 협박의 공로를 인정받아 나만이라도 천국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닐까.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미국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 근본주의 목사는 코란을 공개 화형에 처했고 이라크 주둔 미군 역시 코란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마녀 재판에서 애용되던 소위 '불의 심판'과 '물의 심판'이 골고루 행해진 셈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타 종교에 대한 부당한 폄훼와 공격으로 이어질 때도 과연 우리는 그것을 관용해야 하는가. 표현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물론 이런 행동은 타인의 종교에 대한 모욕임에는 분명하고, 편견에 가득 찬 선동이나 치기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현 자유를 인정할 도리밖에 없다. 그들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할 뿐 적어도 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현대 이슬람이 자행하듯이 테러로 응징하겠다는 자세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모두 소중한 자유이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충돌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런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표현 자유에 의해 비판받더라도 종교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것임에 반해, 종교에 의해 표현을 제한할 경우 표현의 자유는 그 본질을 훼손당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타종교에 대한 비방행동은 종교 자유를 넘어선 것이지만 표현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세월은 진리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한때 기독교도라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지만 나중에는 기독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살해했다. 그 사이에 1500년이 흘렀을 뿐이다. 지금은 이성애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동성애자였다. 그뿐인가. 근대 초기까지도 가톨릭에서는 이성애까지도 죄악시했다.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위한 성교라면 죄악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동성애는 죄악이고 박원순은 그 단체에 가면 안 된단 말인가.

바뀐다. 당신이 철칙이라고 믿는 것들도 결국은 바뀐다. 니체의 말대로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 문제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해갈 뿐이며, 불변의 진리란 없다. 그러니 당신이 믿는 진리의 이름으로 남의 진리를 억압하지 말라. '불신 지옥'은 코란에 오줌 싸기와 다르지 않고, 당신이 목소리 높여 비판하는 이슬람의 테러만큼이나 위험하다. 수단의 폭력성에 차이가 있을 뿐, 남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가짐만은 동일한 것이다. 어떤 기회를 얻게 되면,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되면, 그 배타성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불신 지옥'이라는 표현 자유를 법으로 금지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조금만 더 악화되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도달할 것이며, 그때는 표현 자유의 허용 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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