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춘
며칠전 나는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많은 환자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핸드폰과 텔레비죤을 보고 있었다. 간혹 빨리 진료해달라고 아우성치는 환자들도 있었으나 간호사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간호사의
인내로 병원은 대뜸 조용해졌다.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며 옆에
있는 잡지를 꺼내 펼쳤다. ‘둔감’력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생활에서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눈치채지
않고 영향력도 덜 받는 사람을 ‘둔감’력이 높다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행복지수도 높다고 씌여있었다.
‘둔감’력에 대해 흥취를 가진 나는 요즘 외과
의사라는 독특한 경력을 가진 일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둔감력(鈍感力)》이란 책을 사서 읽어봤다. 이 책의 주제는 둔감한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편해 언제나 혈관이 열려있어 혈액순환이 잘된다는 것이다. 장이 예민해서 복통을 호소하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둔감’한
장을 가진 사람은 조금 상한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했다.
반면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은 긴장과 짜증으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고 시각과 청각도 예민하면 감각기관의 로화가 빠르게 찾아온다고 했다. 치명적인 것은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둔감’한 사람은 상처받을 말을 듣거나 열을
받아도 밤에 푹 자고 나면 잊어버린다 했다. 사회에서는 ‘예민함’이 성행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둔감’함이 더 쓸모가 있다는 게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다.
이 책을 보면서 둔감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배울 수
있었다. 나쁜 일은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 설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러버리는 사람, 어떠한 음식도 맛나게 먹는 사람 등등 이러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평온한지, 성공적인 지를 다시 알게 해준 책이였다. 전 내용의 요점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예민함, 날카로운 것만이
재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병원의 그 이름 모를 간호사의 얼굴이 또 떠오른다.
얼굴에 아무런 노기도 없이 꾸짖음도 삼가하면서 아우성을 치는 환자를 안심시키는 그 형상이 돋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와 판판 다르다.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세상이 상상하기조차 바쁘게 돌아간다. 쏟아지는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써비스)나 위챗 등은 ‘둔감’함보다 예민함을 증폭시킨다.
인터넷의 의존도는 점점 커져 우리에게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되지만 과도한 업무로도 추진되여 만성화된 정신적 스트레스로 불안과 갈등을 일으킨다.
또한 생활절주가 빨라지면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빨리빨리’로 성취감을 나타내려고 한다. 이러한 성과주의로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충동질하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음주, 흡연으로 해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오히려 질병을 유발하거나 ‘화병’을 만든다.
서로 차를 몰고 가다가 부딪쳐서 차가 약간 긁혔다고
차에서 내리자 마자 다짜고짜로 대방을 후려갈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중장소에서 대방이 부주의로 자기의 발을 디디거나 몸을 약간 밀어놓았다고
손가락질을 하며 마구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다 ‘둔감’력이 결핍으로 초래된 악과이다.
우리는 조화로운 사회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자면
우리는 우선 서로 대방에 대해 리해하고 존중하고 허용할 줄 알아야 한다. 쩍하면 화를 내거나 훈계하거나 손찌검하는 습관은 문명사회에서는
금물이다. 서로 인내할 수 있는 그런 ‘둔감’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무반응’을 훈련하고
쓸데 없는 자존심을 버리기 위해 예민한 감정과 뇌리에서 몸의 감각을 ‘둔감’하게 해야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마음
씀씀이에서도 완벽한 사람보다 ‘둔감’력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삶을 진취적이고 도전적으로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길림신문/ 배영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