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들교육에 실패한 나의 부친께서 어린 손녀를 보면서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손녀 교육을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면 내가 아주 잘할 수
있을텐데!!!” 그때마다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데 대학시험을 3주정도 앞둔 딸아이 마중을 가면서 나도 갑자기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아이교육을 처음부터 시킨다면 참
잘할 수 있겠는데...
하여튼 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늦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소 안 잃은 분들이나 할 수 있는
싱거운 소리이다.
나이 쉰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니 인간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인간사회에 대해서, 학문에 대해서 무언가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깨달음이
온다. 그래서 지천명의 나이라고 하나부다.
딸아이가 태여나고 나름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아이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해주려고 노력을 해왔다.
제 딴에는 넓은 세상을 경험했고 동서고금을 주름잡을 수 있는 독서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인간과 세상을 인지하는 학문의
지름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사실은 오판이였다.
인생사에서 가장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농사라고 한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가 잘못된
농부의 마음가짐 때문인 것 같다.
30대에 내가 갖고 있던 학문에 대한 리해, 인생에 대한 리해, 인간사회에 대한 리해는 지극히 천박하고 미숙했었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만족 못하는 자식농사의 결과는 농부의 잘못인 게다.
지금 와서 딸아이 교육에 대해 유감스러운 일들이 참 많다. 후회해봤자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다. 자녀교육에 힘쓰기보다는 자신의 교육에
더 힘써야 했었다. 미숙한 자가 자녀교육에 힘을 쓰면 쓸수록 바른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사실은...
자신에 대한 교육이 제일 좋은 자녀교육이다.
김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