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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필] 숨 한번 쉬는 사이, 하이쿠시를 읽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9.09.25일 13:57
[독서만필] 숨 한번 쉬는 사이, 하이쿠시를 읽다



저자 김혁 

적막함이여 / 바위에 스며드는 / 매미의 울음.

손에 잡으면 / 사라질 눈물이여 / 이 가을서리.

너무 울어서 / 텅 비여버렸을가 / 저 매미허물.



 

‘하이쿠’시의 대가 마쓰오 바쇼

문학 후배가 랑송용으로 가을에 관한 시를 선정해 달라하여 서가에서 책을 뒤적이다 찾아낸 시편들이다.

“이리 짧은 걸 어떻게 랑송해요?”

후배는 귀여운 앙탈을 부렸지만 나는 나대로 단 열일곱자에 떠나가는 계절과 그에 담긴 세상사의 무상함을 간파해낸 단시에 빠져들고 말았다.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마쓰오 바쇼 하이쿠시 300수》(상해문예출판사 2019년 4월 출간)를 읽었다.

시집은 은둔과 려행으로 일관했던 ‘하이쿠(徘句)’시의 대가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작품가운데서 선정한 300편을 묶었다.

여기서 ‘하이쿠’란 5·7·5의 음률을 가진 열일곱자로 이루어진 정형시를 가리켜 말한다. 하이쿠는 세계 문학에서 그 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의 형태를 지니는데 하이쿠 한수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겨있고 그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비껴있고 스며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인 듯 싶으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진리와 깨달음을 거대한 여백 속에서 드러낸다.

오래 전에 하이쿠에 대해 아렴풋이 들어알았지만 필자가 제대로 접하고 읽기는 위안부 관련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을 집필하면서 부터였다.



《마쓰오 바쇼 하이쿠시 300수》

소설의 태반이 일본을 무대로 펼쳐지는지라 가장 일본적인 문화에 대해 공부하던중 일본문화의 한 특징인 축약, 생략, 함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표로 엔까, 다도, 목판화 우키요에(浮世)와 더불어 하이쿠시를 연구하게 되였다.

소설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둔 조선족류학생 종혁이와 남경을 침략했던 군인 할아버지를 둔 하루꼬 사이의 파란 많은 사랑의 신표는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시로 이어진다. 책을 집필하면서 은연중 마쓰오 바쇼에, 하이쿠시에 빠져들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를 완성시킨 마쓰오 바쇼는 근대 자본주의가 싹 트며 풍요와 향락이 만연했던 에도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1644년 교또 부근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여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자 곤궁한 살림으로 인해 바쇼는 열아홉살에 지역의 권세 있는 무사집에 들어가 도련님을 시봉하며 지냈다. 년상인 도련님이 하이쿠에 취미가 있어서 친동생처럼 그의 총애를 받은 바쇼도 이것이 인연이 되여 하이쿠의 세계를 접하고 가르침을 받게 되였다.

그러나 도련님이 갑자기 병사하자 충격을 받은 바쇼는 고향을 떠나 에도로 향했다. 에도의 번화가에 도착한 그는 다른 시인의 하이쿠문집을 필사해주며 생계를 이었다. 이 사이에 하이쿠 습작생들이 하나둘 그의 밑에 모이기 시작했다. 언어유희에 치우친 기존의 시에서 탈피해 문학적인 새로운 양식을 갈망하던 이들이 바쇼에게서 진정한 시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에도의 하이쿠 문단은 일대 전기를 맞이했다.

바쇼는 서른일곱살에 ‘옹(翁)’이라는 경칭을 들을 정도로 하이쿠 스승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명성을 드날릴 즈음의 어느 겨울날 바쇼는 돌연 모든 지위와 명예를 내려놓고 에도 접경을 흐르는 강녘의 작은 오두막으로 은둔해 들어갔다. 그곳은 도쿄만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거친 물결에 로출된 지역이였다. 심한 태풍이 불고 식수도 배로 실어다주는데 의지하는 거칠고 척박한 땅으로 바쇼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해 들어갔다. 그때로부터 이 오두막은 ‘바쇼 암’으로 불리게 되였다.

재치와 능란함의 유희를 겨루는 소비형 작품들만 인기가 높던 시대에 바쇼가 바란 것은 인생의 고독과 허무, 그리고 령혼의 구원을 시속에 담는 일이였다. 그래서 에도의 번화가를 떠나 오직 진정한 문학에 대한 갈구만을 가슴에 품고 오두막으로 들어간 것이였다.

이로서 바쇼를 통해 본격적인 하이쿠문학이 탄생하고 단순한 재치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에 깃들인 깊은 시상을 열일곱자의 제한된 형식 안에 응축해 표현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었다.

바쇼의 근본사상은 안주에 대한 거부였다. 40세부터 바쇼는 은둔에 이어 방랑을 시작했다.

들판의 해골 되리라 / 마음 먹으니/ 몸에 스미는 바람

생을 마칠 때까지 내륙 오지의 수천리를 걸었으며 이 려로에서 자연과 합일된 순간들을 경험한 그의 하이쿠시의 대표작들이 탄생했다.

48세가 되던 해의 겨울, 바쇼는 에도로 돌아왔다. 이 무렵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문하생들의 세력다툼에 지친 그는 오두막 문을 닫아걸고 한동안 문단과 절연했다.

51세의 여름, 다시 오두막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 바쇼는 오사카의 길 우에서 생을 마감했다.

길에 병들어도 / 마른 벌에 꿈은/ 헤매고 돈다

바쇼의 사세구(辞世句, 사람이 죽으면서 남긴 글귀)는 이러했다.

바쇼는 문단과 독자의 인기를 얻으며 안락하게 지내기를 포기하고 순수 예술의 험난한 길을 고고하게 걷는 삶을 선택했다.

400년전, 일본에서 나온 하이쿠라는 쟝르는 이어 세계의 수많은 기라성 같은 문호들의 애대를 받았다. 영국의 랑만파 시인 워즈워스와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릴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메히꼬의 옥타비오 파스, 인도의 시성 타고르 등이 하이쿠를 격찬했고 직접 습작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카나다에서 하이쿠 잡지가 발간되고 있고 교과서에 수록하고 있으며 하이쿠 공모까지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빠냐어, 로씨야어, 중국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되였다.

여기서 우리의 문학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세부 단위와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문학뿐아니라 사회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온통 큰 것만을 지향하고 인정하는 일색이다. 큰 것 위주로 굴러가는 이런 사회는 작은 단위에 의해서만이 진정 큰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바쇼의 하이쿠시를 읽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작품의 최우수작들을 읽는 것이다. 위대한 명저들이 그렇듯이 바쇼의 하이쿠는 시공간을 넘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긴긴 여운으로 담고 있다.

숨 한번 쉬는 사이, 하이쿠가 열일곱자로 짧게 함축하고 있는 건 우리의 긴 삶이다.

하이쿠라는 이 돌올한 정형시가 선사하는 건 바로 그런 재치와 감동의 맛이리라! / 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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