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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군인정신으로 당성을 고수한 사람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10.15일 14:18



  "곤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군인정신이고 원칙과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 당성이라고 배웠습니다."

  군인으로 18년, 공직에서 26년, 44년 세월을 당과 인민에게 충성한 조동의 좌우명이다.

  1969년 1월, 16살 앳된 나이에 해방군 모 부대에 입대한 조동은 5 년간의 행군훈련으로 강철의지를 련마했다. 170cm 안되는 작은 키의 16살 꼬마병사는 몇살 이상 큰형님들과 똑같이 매일 평 균 150리 강행군 훈련을 소화했다. 60근도 넘는 배낭이 어깨를 짖눌렀고, 발에 물집이 져 땅을 딛을 때마다 머리 끝까지 통증 이 닿았으며 령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 랭방에서 자야 하는 고통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당돌하고 승벽심이 남 달랐던 조동은 모든 훈련을 훌륭히 완성해냈다. 꼬마병사의 남다른 각오와 근성을 지켜본 부대 당조직은 1971년 4월, 조동을 당원 으로 받아들였고 1976년에는 포병련 부련장, 1982년에는 련장, 1983년에는 부고장(부영급), 1985년에는 고장(정영급) 에 발탁했다. 정영급 간부로 승진한 조동은 장사해방군간부문화학교 제1기 학생으로 파견돼 문화학습 기회를 갖게 되였고 동란의 시 기 철령조중을 하루 밖에 다니지 못했던 공부의 한을 원없이 풀었다. 포병지휘원은 수, 리, 화 방면의 지식이 필수라고 생각한 조동은 남들이 다 자는 밤에도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학습했고 다들 소풍 나갈 때도 도서실로 향했다.

  "좋은 기회가 왔는데 놓치면 안된다 하는 마음이였습니다. 덕분에 로산방어전 때 오차없이 포사격을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조동의 노력은 로산전선에서 빛을 발했다. 1985년, 한창 학습에 매진중이던 조 동은 부대를 따라 로산전선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곧바로 운남에 도착한 조동은 전우들과 함께 투탄, 사격, 지뢰매설, 은페연 습, 공격연습을 50일간 진행한 후 로산전선으로 나갔다. 전장터에서 조동은 포사격을 지휘하여 공을 세웠고 최전선인 모이동(猫耳洞) 에서 장장 108일간 전투를 하기도 했다.




△ 지휘소에서 작전계획을 회보하고 있는 조동

    "정신력 싸움이였어요. 수시로 총탄이 날아올 위험이 있었고 식사와 생리현 상 해결이 모두 최악의 상황이였지만 부대원 모두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대승을 거두었어요." 습하고 더운 날씨에 피부병이 도져 다 들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전투를 했다는 '모이동이야기'는 조동이 몸소 겪은 실화다. 모이동에서의 전투를 승리적으로 마 친 조동은 전투 3등공을 수여받으며 군생활에 원만한 마침표를 찍었다.



△ 모이동에서 알몸으로 전투



△ 로산전선에서

   1986년 10월, 조동은 퇴역을 명받고 철령시석유회사의 기률검사원으 로 배치받았다. 새로운 일터에서도 조동은 굳은 신념을 갖고 부대 지휘원 시절 관리능력을 과시해 조직과 회사 직원들의 인정을 받았 다. 그는 유고(油库) 주임, 철령석유회사 제1지사 경리, 철령석유회사 단위서기, 철령석유회사 기률검사위원회 서기 등 요직을 거쳐 가며 모두가 인정하는 원칙적인 령도간부로 립지를 굳혀갔다. 그리고 1997년, 전 직원 투표로 철령석유회사 총책임인 경리로 되였 다. 경영난으로 부채만 1억이 넘고 직원 임금도 제대로 발급 못해 성에서 책임자를 여럿 파견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공정하 고 원칙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조동이 나서자 직원들도 호응했고 산만하던 인원관리가 줄이 잡히고 효률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반년 만 에 직원임금 발급 문제가 해결되였고 이듬해 성관할 철령석유회사가 중앙직속 중국석유 철령판매분회사로 개편되는 호재가 겹치며 회사 는 고속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 전성기를 이끌어낸 조동은 2002년 뜻밖의 선택을 한다. 권 력에 련련하지 않은 그는 주동적으로 행정권인 경리직을 내려놓고 당위서기직에서 당건설 사업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조동 은 "회사가 이미 성장궤도에 올라선 데다 저는 당사업이 더 편했어요"라며 쿨하게 답했다. 그리고 2008년 중국석유료녕판매회사 순 시원으로, 2012년에 퇴직하여 공직생활에 원만한 마침표를 찍었다.

  강철같은 군인, 유능한 공직자였던 조동은 민족사업에도 열정을 불태웠 다.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와서부터 민족사업에 관심을 가졌는데 리홍광 장군 등 렬사들을 안치한 철령조선족렬사묘 이전에 큰 힘을 보태는 등 민족사회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조동은 2004년부터 7년간 철령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부리사장직을, 2011년 7 월부터는 협회 리사장을 맡으며 8년간 철령시조선족사회를 이끌어왔다.

  재임기간 조동은 항상 책임감있고 앞장서는 리더였다. 그가 맡은 8년간 협 회는 2012년 료녕성조선족민속절을 철령에 유치해 전 성 조선족들의 이목을 철령에 집중시켰고, 《철령시조선족지》를 편찬해 철령에서 의 조선족 발자취를 정리, 기록했다. 모두 조동이 앞장서 자금을 쟁취하고 지원을 이끌어내 성사시킨 사업이다.



△ 당령 50년 기념메달을 받은 조동

  

  조동은 공직에서나 조선족사회에서나 당당한 리더로 설 수 있은 비결을 말 할 때면 능력적인 부분보다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신념을 지킨 것에 무게를 둔다. "돈은 많이 '밑졌죠'. 하지만 제가 떳떳하지 못 하면 직원들이 따라주겠습니까? 민족사회가 인정하겠습니까?" 소신을 지키며 살아온 삶에 더없이 만족한다는 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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