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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민의 위대하고 빛나는 일생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2.12.03일 17:21
강택민은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이 공인하는, 숭고한 위망을 지닌 탁월한 지도자이고 위대한 맑스주의자이며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외교가이고 오랜 시련을 겪은 공산주의 전사이며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의 걸출한 지도자이고 당의 제3세대 중앙지도부의 핵심이며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의 주요한 창립자이다.

강택민의 일생은 빛나는 전투적 일생이였다. 70여년의 혁명생애에서 그는 공산주의 리상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당과 인민에 무한히 충성했으며 굳은 의지로 당과 인민의 사업을 위해 분투했다.

당중앙 13기 4차 전원회의 이후 국내외 형세가 매우 복잡해지며 세계 사회주의가 심각한 곡절을 겪는 준엄한 고험 앞에서 강택민은 당의 중앙지도부를 이끌고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에 긴밀하게 의지하여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을 수호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21세기에로 이끌어가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공훈을 세웠으며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충심으로 되는 애대와 국제사회의 광범한 찬양을 받았다.

1926년 8월 17일, 강택민은 강소성 양주시의 한 애국지식분자가정에서 태여났다. 강택민은 어려서부터 애국주의사상과 민주혁명사상의 계몽을 받았으며 학자가문(诗书世家)의 가정 분위기 속에서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강택민은 일찍 양주동관소학교와 양주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양주중학교에서 공부하는 기간에 그의 고향은 일본침략군에 의해 점령되였다. 그는 매화령에 있는 명나라 애국명장 사가법의 묘를 자주 찾아가서 추모하고 사공사(史公祠)의 영련(楹联)에 씌여진 “떨어진 매화잎은 망국의 피눈물 같고 옛 신하의 마음은 그믐달처럼 이그러져있네.”(数点梅花亡国泪,二分明月故臣心)를 읊조리며 비분한 심정을 토로했다.

1943년, 강택민은 남경중앙대학 전기학부에 입학, 진보적 학생들의 항일애국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뒤 강택민은 상해교통대학 전기학부에 전학하여 공부했다. 1946년 4월, 강택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공산주의 전사로 되였다. 강택민은 당의 지하공작에 적극 종사하면서 국민당 반동통치를 겨냥한 반기아, 반내전, 반박해 애국학생운동에 참가했으며 혁명동지들을 엄호했다.

1947년, 강택민은 상해교통대학 전기학부를 졸업하고 상해량복실험공장에 취직하여 기사, 공무 과장, 전무공장 주임, 동력직장 주임 등 직무를 력임했다. 이 사이 그는 로동자 대중들과 청년회 야간학교 직업청년들 속에서 혁명선전사업에 종사하였고 1949년에 로동자 대중을 조직하여 공장 보호 활동을 전개하면서 상해의 해방을 맞이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초기에 강택민동지는 선후로 상해익민식품1공장 제1부공장장, 상해비누공장 제1부공장장, 제1기계공업부 상해제2설계분국 전기제품전문과 과장 직무를 맡았다. 익민식품공장에서 근무하던 기간에 그는 ‘광명표’ 식품 브랜드를 연구제작하고 창립했으며 항미원조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인민지원군에 전문 공급되는 통졸임식품을 조직 생산했다. 제2설계분국에서 근무하던 기간에 그는 새 중국의 첫번째 국산 증기타빈발전기 설계 사업을 주최했다.

1954년 9월, 강택민은 조직의 배치에 따라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 건설에 참여했고 1955년 4월에는 모스크바 쓰딸린자동차제조공장에 가서 실습하였다. 1956년 5월 귀국한 후 그는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에서 동력처 부처장, 부총동력사와 동력분공장 공장장 등 직무를 력임했다. 1961년, 석탄 공급이 긴장해지자 강택민은 동력보이라를 원유로 바꿔 태우는 대형 프로젝트의 총지휘를 맡았고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완성되였다.

1962년, 강택민은 제1기계공업부 상해전기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전근되여 해당 연구소의 과학연구 지도 사업을 책임졌다. 그는 당시 국가에서 시급히 필요로 했던 J02 소형 비동기전동기(异步电机) 계렬의 설계 임무를 주최하고 완성했다. 1964년과 1965년, 강택민은 선후로 중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일본, 프랑스에서 거행된 국제전기기술위원회 년회에 참가했고 아울러 국외의 전기과학기술 발전 정황을 고찰했다.

1966년 5월, 강택민은 무한열공기계연구소 소장, 대리 당위 서기를 맡았으며 9월에는 당위 서기를 맡고 원자력발전설비 설계 사업을 조직하였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강택민동지는 충격을 받았다. 1970년말 강택민동지는 제1기계공업부로 전근되여 사업하게 되였고 1971년에 중국제1기계공업부가 로므니아에 파견한 전문가조 총조장을 맡고 중국에서 원조한 11개 공장의 건설사업을 책임지고 령도했다. 1973년에 귀국하여 강택민은 선후로 제1기계공업부 외사국 부국장, 국장을 담임하였다. 1973년, 1974년에 강택민은 선후로 중국대표단 부단장, 단장을 맡고 련방독일과 로므니아에서 펼쳐진 국제전기기술위원회 년회에 참가했다. 1976년, 강택민은 대표단을 인솔하여 파키스탄에 가서 중국 원조 공장 건설 정황을 고찰했다. 1978년, 강택민은 중국기계공업대표단 비서장을 맡고 유럽 6개국을 방문, 우리 나라 기계공업기술 수준을 다그쳐 향상시키고 제품의 세대교체를 다그치며 플랜트(成套) 기술장비 제공 능력을 향상시키고 기계제품의 수출을 확대하는 등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대책과 건의를 제출했다.

1978년 12월에 소집된 당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는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던’ 것을 과단하게 결속짓고 당과 국가 사업 중심 전략의 전이를 실현,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시기를 열어놓았고 새 중국이 창건된이래 당의 력사상 심원한 의의를 가지는 위대한 전환을 실현했다. 1980년, 강택민은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 국가외국투자관리위원회 부주임 겸 비서장, 당조 성원을 담임했다. 그는 대외무역을 확대하고 국외 선진 기술과 설비를 유치하며 외자를 흡수하고 리용하는 등 방면의 정책을 제정하는 데 참여했으며 광동, 복건 두 성에 대한 국가의 특수정책과 령활한 조치의 구체적인 관철 사업을 분장(分管)했으며 동시에 경제특구의 계획 설립에 참여했다. 경제특구의 창설은 당과 국가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진행한 위대한 장거이며 또한 이왕의 경험이 부족하고 처음부터 모색해야 할 새로운 사물이였다. 1980년, 강택민은 선후로 타이,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향항, 메히꼬, 아일랜드 등 국가와 지역을 고찰하면서 수출가공단지, 자유무역단지, 변경경제단지의 정황을 알아보고 그 가운데서 중국이 경제특구를 창설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경험을 연구하고 섭취했다. 같은 해 8월, 강택민은 5기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제 15차 회의에서 광동, 복건 두개 성에 경제특구를 설치할 것과 에 대해 설명하여 회의가 관련 의안을 심의 채택하는 데 중요한 의거를 제공했다.

1982년 5월, 강택민은 전자공업부 제1부부장, 당조 부서기를 맡았고 1983년에는 부장, 당조 서기를 맡았다. 그는 생산 1선에 깊이 들어가 조사연구를 하여 전자공업의 ‘기반을 다지고 수준을 향상시키며 품질을 틀어쥐고 효익을 추구하며 8배로 늘이고 10년을 초과한다’는 발전 방침을 제출했다. 또한 전자공업의 구조조정과 기술개조를 조직지도하고 직접회로, 컴퓨터, 통신 및 계통공정 등 중점 항목의 과학연구개발과 생산 사업을 강화하여 전자공업이 국가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위해 더욱 잘 봉사하도록 했다. 1982년 9월, 강택민은 중국공산당 제1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85년, 강택민은 상해시 시장, 중공 상해시위 부서기를 담임했고 1987년 중공상해시위 서기를 담임했다. 그는 경제건설이라는 이 중심을 단단히 틀어쥐고 네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개혁개방을 견지하고 물질문명 건설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매우 중시하면서 상해의 개혁 발전과 안정을 전력을 다해 촉진했다. 그는 상해 경제발전 전망계획과 도시건설 전망계획을 지도 제정하여 20세기말에 이르러 상해를 개방형, 다기능적이며 산업구조가 합리하고 과학기술이 선진적이며 고도의 문명을 갖춘 사회주의 현대화 도시로 건설한다는 발전 방침을 제출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포동을 개발하며 포동을 국제화, 중추화, 현대화의 세계 일류의 새로운 도시구역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방면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한 뒤 여러 방면의 적극성을 충분하게 불러일으켜 상해 경제사회발전 목표를 실현했다. 그는 민주당파 격월 좌담회, 신문계 리론계 격월 좌담회 등 제도를 창도하고 건립했다. 그는 과학기술혁신으로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중시하여 중대 프로젝트 결책 전문가 론증 제도를 건립했다. 상해의 대외개방을 확대하기 위해 그는 상호 리해, 상호 신뢰, 호혜상생, 장원고려(长远考虑)의 대외 경제 교류 발전의 네가지 원칙을 제출했다. 그의 창도하에 상해시정부는 해마다 반드시 인민을 위해 몇가지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방법을 채택하여 광범한 대중들의 의식주행 방면의 실제 문제들을 힘써 해결하고 대중들의 생활을 개선했다. 1987년 11월, 당중앙 13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89년 봄과 여름이 바뀌는 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엄중한 정치풍파가 발생했다. 그는 기치가 선명하게 동란을 반대하고 사회주의국가정권을 보호하고 인민의 근본 리익을 수호할 데 관한 당중앙의 정확한 결책을 옹호하고 집행하였으며 광범한 당원, 간부, 대중에 긴밀히 의거하여 상해의 안정을 유력하게 수호했다.

1989년 6월, 당중앙 13기 4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다. 그는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확고하게 지적했다. “당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이래의 로선과 기본정책은 변하지 않았고 반드시 계속하여 관철 집행해야 한다. 이 기본문제에서 나는 아주 분명하게 두마디를 하련다. 한마디는 확고부동하게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마디는 일관성있게 전면적으로 집행하는 것이다.” 같은 해, 당중앙 13기 5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하였다. 1990년 3월, 7기 전국인대 3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 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는 제목의 보고를 했다.보고에서 그는 등소평 중국특색 사회주의건설 리론의 전당에서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할 것을 제출하고 중국의 경제 체제 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확정하고 기회를 틀어쥐고 발전을 다그치며 정력을 집중하여 경제건설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중앙 14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고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1993년 3월, 8기 전국인대 1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1997년 9월, 중국공산당 제 1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는 제목의 보고를 했다. 보고는 등소평리론의 력사적 지위와 지도적 의의를 중점적으로 명백하게 론술했으며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의 당의 기본강령을 제출했고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가 공동 발전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의 하나의 기본경제제도라고 명확히 했다. 의법치국,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을 강조하고 우리 나라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세기적인 발전의 웅위로운 목표를 명확히 했다. 당중앙 15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고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1998년 3월, 9기 전국인대 1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자>는 제목의 보고를 했다. 보고는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분투목표를 제출하고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는 근본적인 요구를 명백하게 론술했다. 당중앙 16기 1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2003년 3월, 10기 전국인대 1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당중앙 13기 4차 전원회의 이후 강택민은 중국특색 사회주의건설을 지도하는 실천 속에서 전당과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인솔하여 당의 기본리론, 기본로선, 기본강령을 견지하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하고 어떤 당을 어떻게 건설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으며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을 형성하였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리론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켰다.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은 맑스주의의 기본원리를 견지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중국의 발전 변화가 당과 국가 사업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였는바 새 사상, 관점, 론단으로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을 계승하고 풍부히 하였으며 발전시켰다.

강택민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발전도로 문제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고 반드시 발전을 당 집권흥국의 첫째가는 중요한 일로 삼아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끊임없이 개척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그는 아래와 같이 제기했다. 전당 사업의 대국은 기회를 포착하고 개혁을 심화하며 개방을 확대하고 발전을 촉진하며 안정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는 반드시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할 방침이다.당의 기본로선의 모든 내용을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경제건설이라는 이 중심과 4가지 기본원칙, 개혁개방이라는 이 두가지 기본점을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위대한 실천에 통일시키고 현대화 건설의 전반 과정에 일관시켜야 한다.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발전은 확고한 도리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시종 견지해야 할 전략사상이다. 경제가 발전해야 떳떳이 살 수 있으며 락후하면 얻어맞는다.우리의 경제력, 국방력, 민족응집력이 끊임없이 증강되기만 하면 “풍랑이 일어도 끄덕없이 안정적으로 나갈 수 있다.” 그는 당과 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정세를 깊이 분석하면서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전반 국면을 종합해보면 21세기 첫 20년은 우리 나라에 있어 반드시 단단히 틀어쥐여야 하고 크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시기로서 반드시 주동적인 정신과 우환의식을 가져야 하며 기회를 잡아야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며 개척 진취해야지 낡은것을 답습해서는 안되며 전국 인민의 지혜와 힘을 집중하여 건설을 하고 전심전력으로 발전을 도모해야 하며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의 조화로운 발전을 끊임없이 촉진해야 한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 나라 경제, 정치, 문화가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행보이고 우리 나라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을 전면적으로 건설되는 행보인 것이다. 그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우리가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제반 사업,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인민들의 현실적인 물질문화생활 수요에 착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민의 자질 향상을 촉진하는 데도 착안해야 한다. 즉 인간의 전면적인 발전을 힘써 추진해야 한다. 인간의 전면적인 발전을 추진하는 것과 경제, 정치, 문화의 발전을 추진하고 인민의 물질문화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상호 전제이고 기초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개혁 발전 안정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처리해야 한다. 개혁은 동력이고 발전은 목표이며 안정은 전제이다. 개혁의 강도, 발전의 속도와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통일시키고 인민생활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을 개혁 발전 안정 관계를 처리하는 중요한 결합점으로 삼고 사회안정 속에서 개혁발전을 추진하며 개혁발전을 통해 사회안정을 촉진해야 한다.

강택민은 21세기 첫 20년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단계이며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발전 단계와 발전 전략에 대한 풍부함과 발전이며 우리 나라 국정에 부합되고 인민의 념원에 부합되며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충분히 모든 적극적인 요소를 동원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데 유리하다고 제기하였다. 20세기 90년대, 강택민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제3단계 전략 목표를 실현하는 데 대해 전망적인 전략적 사고를 하였다. 그는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제3단계 전략 목표를 실현하는 청사진을 초보적으로 그렸다. 그는 다음 세기를 전망하면서 목표는 아래와 같다고 했다. 첫 10년에 국민총생산액을 2000년에 비해 두배로 늘여 인민의 초요생활을 더욱 넉넉하게 하고 비교적 완비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형성한다. 다시 10년의 노력을 거쳐 창당(建党) 100주년 때에는 국민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각종 제도를 더욱 완비하게 한다. 세기 중엽의 건국 100년에 이르러서는 기본적으로 현대화를 실현하고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다. 당중앙 15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진일보 아래와 같이 제기했다. 우리 나라는 신세기부터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가속 추진하는 새로운 발전단계에 진입할 것이다.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그는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분투목표를 천명하였으며 본세기 첫 20년에 력량을 집중하여 10여억 인구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더 높은 수준의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여 경제가 더욱 발전되고 민주가 더욱 건전하며 과학교육이 더욱 진보하고 문화가 더욱 번영하며 사회가 더욱 조화롭고 인민생활이 더욱 풍족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화 건설의 제3단계 전략 목표를 실현하는 데서 반드시 거쳐야 할 승상계하(承上启下)의 발전단계이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보완하고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관건적인 단계이기도 하다.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근본 임무에 관하여 강택민은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반드시 력량을 집중하여 사회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최우선에 놓고 선진생산력의 발전을 끊임없이 촉진해야 한다. 이는 당이 시종 시대의 선두에 서서 선진성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구현이자 근본적인 요구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람은 생산력 가운데서 가장 결정적인 력량을 갖고 있다. 지식인을 포함한 로동계급, 광범한 농민들은 시종 우리 나라의 선진생산력 발전과 사회의 전면적인 진보를 추진하는 근본 력량이다. 사회변혁 과정에 나타난 민영과학기술기업의 창업자와 기술자, 외자기업에 초빙된 관리기술자, 자영업자, 사영기업주, 중개조직의 종사자, 자유직업자 등 사회계층은 모두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업의 건설자이다. 그는 인재 자원은 제1자원으로서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는 모두 당과 국가 사업의 장원한 발전과 인재의 총체적 수요에 착안하여 인재 양성, 인재 유치, 인재 사용 등 3개 환절을 단단히 틀어쥐고 인재전략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그는 사회생산력의 발전을 추진하는 데서의 과학기술의 중요한 역할을 고도로 중시하면서 우리는 강대한 과학기술실력이 없으면 사회주의 현대화도 없다는 도리를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지식 혁신과 과학기술 혁신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국가 지식혁신 체계를 건설하며 자주혁신 능력을 증강하고 기술 발전의 도약을 실현할 것을 제기하였다.그는 사회주의의 생산관계와 상부구조를 끊임없이 보완하여 생산력의 해방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더욱 넓은 통로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택민은 새로운 실천과 결부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리론적 사고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그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쏘련 해체, 동유럽 격변의 교훈 및 ‘문화대혁명’과 같은 극히 굴곡된 교훈을 진지하게 총결해야 한다. 그 원인을 깊이 분석하면 두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반드시 사회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둘째, 반드시 사회주의 개혁을 진행하여 자국의 실제에 부합되는 사회주의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혁신은 한개 민족 진보의 령혼이며 한개 국가의 번영과 발전의 무궁무진한 동력이므로 반드시 확고부동하게 각 방면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개혁은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전체적으로 추진하고 중점적으로 돌파하며 점진적으로 해야 하고 제도 건설과 혁신을 중시해야 한다. 20세기 90년대에 그는 리론혁신을 견지하고 시대와 더불어 전진하는 중국공산당원의 거대한 용기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개혁 목표와 기본틀을 확립하였고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가 공동으로 발전하는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기본경제제도와 로동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분배제도를 확립하여 전면적인 개혁개방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 1992년 6월, 그는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현대화를 실현할 수 없다. 등소평의 남방담화 정신에 근거하여 그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라는 표현법을 사용할 것을 명확히 제기하여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 소집을 위해 중요한 사상리론준비를 하였다.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수립을 중국 경제 체제 개혁의 목표로 정식으로 확립하였다. 당중앙 14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수립의 총체적 계획을 제정하였다. 20세기말에 이르러 우리 나라는 이미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기본틀을 초보적으로 세웠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가 공동으로 발전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기본경제제도이다. 공유제의 실현 형식은 가능하고 다양해야 한다. 주식제는 현대 기업의 자본 조직 형식으로서 자본주의도 사용할 수 있고 사회주의도 사용할 수 있다. 반드시 조금도 동요없이 공유제 경제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야 하며 반드시 조금도 동요없이 비공유제 경제의 발전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인도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국유자산 관리 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경제 체제 개혁을 심화하는 중대한 임무로서 국가의 소유를 견지하는 전제하에 중앙과 지방의 두가지 적극성을 충분히 발휘시켜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국유기업은 우리 나라 국민경제의 버팀목이고 국유기업 개혁은 우리 나라 경제 체제 개혁의 중심고리로서 전반 국유경제를 잘 운영하는 데 착안하여 큰 것을 잘 틀어쥐고 작은 것을 살려 국유기업에 대해 전략적 개편을 실시해야 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현대기업제도를 수립하는 것은 국유기업 개혁의 방향으로서 ‘재산권이 명확하고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며 정부와 기업의 분리, 과학적인 관리’의 요구에 따라 국유 대중형 기업에 대해 규범화된 회사제 개혁을 실시하여 기업이 시장에 적응하는 법인실체와 경쟁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시장 기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고 거시적 조정을 강화하는 것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기본요구로서 거시적 조정 체계를 서둘러 건전히 하고 보완하며 금융, 재정, 계획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거시적 조정 수단과 조정 기제을 보완하며 적당한 긴축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조정 강도를 파악하는 데 주의를 돌려야 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분배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광범한 대중들의 직접적인 리익과 적극성의 발휘에 관계되므로 로동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분배제도를 보완하며 효률을 우선시하고 공평을 고루 돌보며 경제 발전 수준에 부응하는 사회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건전히 하며 도시 종업원 기본양로보험제도와 기본의료보험제도를 완벽화하고 실업보험제도와 도시 주민의 최저생활보장제도를 건전히 하며 농촌양로, 의료보험과 최저생활보장 제도의 건립을 모색해야 한다.

20세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택민은 경제 글로벌화가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추세를 단단히 파악하고 중국이 발전하고 진보하며 부강해지려면 반드시 대외개방을 해야 하며 세계 각국의 경제, 과학기술, 문화와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모든 선진적인 것을 흡수하고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우리는 관련 정책을 한층 더 보완하고 대외개방을 계속 확고부동하게 확대하며 대외개방의 형식과 내용을 끊임없이 풍부히 하고 대외개방의 질과 수준을 끊임없이 제고하며 전방위, 다차원, 넓은 령역의 대외개방 구도를 보완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당이 우리 나라 경제 발전과 개혁개방의 수요로부터 출발하여 내린 중대한 전략적 결책으로서 우리 나라 대외개방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표징한다. 강택민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 원칙을 천명했다. 첫째,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중국의 경제 발전과 개혁개방의 수요이며 마찬가지로 세계무역기구도 중국을 필요로 한다. 12억 인구의 중국이 참가하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는 완전하지 않으며 세계 경제의 발전에도 불리하다. 둘째, 중국은 개발도상국이고 사회생산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 개발도상국의 조건으로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셋째,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 그 권리와 의무는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중국은 중국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초과하는 지나치게 높은 호가(要价)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지도 원칙에 따라 중국은 세계무역기구 가입 협상 과정에서 시종 주도권을 장악하여 2001년 12월에 정식으로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이 되였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외상 직접투자를 진일보 유치하고 외자 리용 질과 수준을 제고하며 상품과 써비스 무역을 진일보 확대하고 시장 다원화 전략을 실시하며 질적 승리를 견지하려면 경제특구는 혁신 우세를 높이고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그는 ‘해외진출’ 전략을 실시하는 것은 대외개방의 새로운 단계의 중대한 조치이며 ‘인입’과 ‘해외진출’은 대외개방의 두 바퀴로서 반드시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중국의 발전과 진보는 세계 각국의 문명 성과를 떠날 수 없다. 대외개방 과정에서 반드시 시종 국가주권과 경제사회안전을 수호하는 데 주의를 돌리고 국제 위험의 충격을 방비하고 해소하는 데 주의를 돌려야 한다. 대외개방 확대와 자력갱생 견지의 관계를 잘 처리하고 립각점을 자신의 힘에 의거하는 기초에 두어야 한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관하여 강택민은 우리는 발전도상국이므로 현대화를 실현하고 발달국과의 차이를 줄이는 관건은 비교적 높은 속도와 비교적 좋은 효익을 가진 국민경제 발전의 길을 개척하여 경제성장 방식을 조방형에서 집약형으로 전환하고 국민경제의 지속적이고 빠르고 건전한 발전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속도와 효익의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려면 반드시 발전 구상을 갱신하고 경제성장 방식을 조방형에서 집약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 운행의 질과 효익을 높이는 데서의 관건은 구조의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서 경제구조를 전략적으로 조정하고 내수를 확대하는 것은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의 장기적이고 기본적인 립각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신형의 공업화의 길을 걷고 정보화로 공업화를 이끌며 공업화로 정보화를 촉진하여 과학기술 함량이 높고 경제 효익이 좋으며 자원 소모가 낮고 환경오염이 적으며 인력자원 우세가 충분히 발휘되는 신형의 공업화의 길을 개척하고 과학교육흥국 전략과 지속가능발전 전략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농업, 농촌, 농민 문제는 시종 우리 당과 국가의 전반 국면에 관계되는 근본적인 문제이며 도시와 농촌의 경제사회발전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현대농업을 건설하며 농촌 경제를 발전시키고 농민 소득을 증가하는 것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중대한 임무이다. 세기가 바뀔 무렵에 그는 전당과 전국 인민에게 시기를 놓치지 말고 서부대개발 전략을 실시해야 한다고 명확히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목적은 전국 인민의 생활 수준과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취업은 민생의 근본이며 취업을 확대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현재와 향후 장기간의 중대하고 간고한 임무이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정치 건설에 관하여 강택민은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정치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중요한 목표이며 사회주의 정치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 나라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발전의 필연적인 요구이며 중국공산당이 인민을 령도하여 인민민주의 장기적인 실천을 견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연적인 결론으로서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업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법칙성 인식을 한층 더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발전시키려면 가장 근본적인 것은 당의 령도를 견지하고 인민을 주인으로 삼고 의법치국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며 사회주의 민주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며 민주제도를 건전히 하고 민주 형식을 풍부히 하며 공민의 질서 있는 정치 참여를 확대하여 인민이 법에 따라 민주선거, 민주결책, 민주관리, 민주감독을 실행하고 광범위한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민대표대회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해야 한다. 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며 가장 광범위한 애국통일전선을 공고발전시키고 당의 민족정책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민족구역자치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며 평등단결호조의 사회주의 민족관계를 공고발전시키고 여러 민족의 공동 번영과 진보를 촉진해야 한다. 당의 종교 신앙 자유 정책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법에 따라 종교 사무를 관리하며 종교가 사회주의사회에 적응하도록 적극 인도하고 독립자주, 자체처리 원칙을 견지하며 경외에서 종교를 리용하여 침투해 오는 것을 단호히 막아야 한다. 당의 교민 사무 정책을 진지하게 관철해야 한다. 그는 기층민주를 확대하는 것은 사회주의 민주를 발전시키는 기초적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법치국을 실시하여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법제 건설을 강화하며 의거할 수 있는 법이 있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의거하고 집법은 반드시 엄격하고 법을 어기면 반드시 추궁함으로써 국가의 제반 사업이 점차 법제화 궤도에 오르도록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정치체제 개혁은 사회주의정치제도의 자기 보완과 발전으로서 우리 나라 국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실천 경험을 총화하는 동시에 인류 정치문명의 유익한 성과를 참고하되 절대 서방 정치제도의 모식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기했다. 제도 건설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제도화, 규범화, 절차화를 실현해야 한다. 그는 사회 안정을 수호하는 사업을 고도로 중시하고 참답게 잘하여 안정되고 단결된 사회 정치 국면을 힘써 수호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문화 건설에 관하여 강택민은 중국특색 사회주의문화는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응집시키고 격려하는 중요한 력량이고 종합국력의 중요한 징표이며 당대 중국에서 선진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바로 중국특색 사회주의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고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제기했다. 반드시 의식형태 령역에서의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의 지도적 지위를 견지하고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으로 사회주의문화 건설을 통솔하며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방향과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을 견지하고 주선률을 고양하며 다양화를 제창해야 한다. 과학적인 리론으로 사람들을 무장시키고 정확한 여론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며 고상한 정신으로 사람을 만들고 우수한 작품으로 사람들을 고무하며 선진문화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건강하고 유익한 문화를 지지하며 락후한 문화를 힘써 개조하고 부패한 문화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민족정신은 한 민족의 생존과 발전의 정신적 버팀목으로서 세계적 범위의 각종 사상문화의 상호 격돌에 직면하여 반드시 민족정신을 고양하고 육성하는 것을 문화 건설의 극히 중요한 임무로 삼고 국민교육의 전 과정에 포함시키고 정신문명건설의 전 과정에 포함시켜 전체 인민이 시종 앙양되고 진취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주의 법제 건설, 의법치국을 꾸준히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도덕 건설, 이덕치국을 꾸준히 강화하여 법제 건설과 도덕 건설을 긴밀히 결합시키고 의법치국과 이덕치국을 긴밀히 결합시켜야 한다.

강택민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은 기간에 국방과 인민군대 건설에 대해 많은 중요한 사상을 제기하여 강택민의 국방과 군대 건설 사상을 창립했다. 그는 공고한 국방을 건립하는 것은 우리 나라 현대화 건설의 전략적 임무이며 국가 안전 통일을 수호하고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중요한 보장이라고 제기했다. 모택동의 군사사상, 등소평의 새시대 군대건설사상을 지침으로 하여 정치적으로 합격되고 군사적으로 강하며 작풍이 우수하고 규률이 엄명하며 보장이 유력한 총적 요구에 따라 승리할 수 있고 변질되지 않는 두가지 력사적 과제를 긴밀히 둘러싸고 확고부동하게 중국특색 정병의 길로 나아가고 인민군대의 혁명화, 현대화, 정규화 건설을 강화해야 한다. 시종 사상정치 건설을 우리 군의 제반 건설의 첫자리에 놓고 인민군대의 성격, 본색, 작풍을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 그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절대적인 령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우리 군의 군혼으로서 인민군대를 령도하는 당의 근본 원칙과 제도를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의 새로운 군사변혁의 도전을 맞이하고 중국특색 군사변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20세기 90년대에 중공중앙과 중앙군사위원회는 새로운 시기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군사전략방침을 확립하고 전략지도에서 중대한 조정을 실시하여 군사투쟁준비의 기점을 일반 조건에서 국지전에 대처하던 데로부터 현대기술 특히는 첨단기술 조건에서의 국지전에서 승리하는 데로 전환시켰다. 그 후 군사투쟁 준비의 기점을 정보화 조건에서의 국지전에서 승리하는 데로 전환시킬 것을 한층 더 제기했다. 새로운 형세하에서 우리 군의 군사투쟁준비의 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하고 우리 군 건설의 주요모순을 틀어쥐였으며 우리 군 건설과 개혁의 발전 방향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했다. 그는 군대, 무장경찰부대와 정법기관은 일률로 더는 상업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다고 제기했다. 그는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의 조화로운 발전 방침을 견지하고 경제 발전의 토대에서 국방과 군대의 현대화를 추진하여 자신의 첨단기술 무기장비의 ‘비장의 무기’를 조속히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조국통일대업을 완수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근본 리익이며 대만 동포, 향항 오문 동포, 해외 교포를 포함한 전 중국 인민의 공동한 념원이다. 그는 향항, 오문에 대한 중국정부의 주권 행사 회복에 대한 일련의 준비 작업을 지도했다. 1997년 7월 1일에 향항 귀환을 실현했고 1999년 12월 20일에 오문 귀환을 실현했다. 그는 선후로 향항, 오문에 가서 중영 정부, 중뽀 정부가 거행하는 향항, 오문 인수인계식에 참가했다.향항과 오문이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한 나라, 두 제도’의 리론과 실천을 풍부하게 했다. 향항, 오문이 조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한 나라, 두 제도’ 방침을 전면적으로 정확하게 관철하고 엄격히 향항기본법, 오문기본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향항, 오문 두 특별행정구 행정장관과 정부의 업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향항, 오문 각계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단결시켜 향항과 오문의 번영, 안정, 발전을 공동으로 수호하고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의 확고한 지지 아래 두 특별행정구정부는 아시아 금융위기 및 내외 경제환경 변화가 가져다준 충격과 영향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각계 인사들을 단결시켜 일련의 사회와 경제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하였으며 사회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유지했다. 강택민은 대만 문제 해결의 대국을 파악하여 량안 쌍방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구현하는 ‘92공동인식’을 달성하도록 추진하고 량안 협상을 추진했다. 1995년 1월, 그는 는 중요 연설을 발표하여 현 단계에서 량안 관계를 발전시키고 조국의 평화통일 진척을 추진하는 8가지 주장을 제기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토대와 전제이며 우리는 무력 사용을 포기하는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는 결코 대만 동포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연설은 조국통일대업을 완수하려는 확고한 결심을 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만 동포들의 념원과 대만의 실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였는바 해내외의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문공무비(文攻武备) 총방략을 제기하여 분렬을 반대하고 ‘대만독립’을 반대하는 중대한 투쟁을 지도했다. 그는 국가가 통일되고 민족이 부흥하려면 대만 문제가 무기한 지연될 수 없는바 우리는 전체 중화 아들딸들의 공동한 노력을 통해 조국의 완전한 통일이 반드시 하루빨리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정중히 지적했다.

변화무쌍한 국제정세에 직면하여 강택민은 세계 정세 발전의 총적 추세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일련의 외교와 국제 전략사상을 제기하여 중국특색 사회주의 외교 리론과 실천을 풍부히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평화와 발전은 여전히 현시대의 주제로서 세계 다극화와 경제 글로벌화는 곡절 속에서 발전하여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기회와 유리한 조건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세계대전은 예견할 수 있는 시기내에 발생하지 않을 것인바 비교적 긴 시기의 평화적인 국제 환경과 량호한 주변 환경을 쟁취하는 것은 실현될 수 있지만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국제 정치 경제의 낡은 질서는 근본적으로 개변되지 않았다. 평화와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한 요소가 증가하고 전통적인 안보 위협과 비전통적인 안보 위협의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패권주의와 강권정치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남북 격차가 더욱 확대되며 세계는 아직도 아주 불안하고 인류는 많은 준엄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는 평화와 발전은 여전히 현 시대의 주제로서 국제 풍운이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시종일관 독립자주의 평화외교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중국 외교정책의 취지는 세계 평화를 수호하고 공동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발전도상국과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기본 립각점으로 삼고 발달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선린우호를 계속 강화하고 이웃과 화목하고 이웃을 동반자로 하며 지역 협력을 강화하고 주변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제3세계와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고 상호 방조와 지지를 강화할 것을 제기했다. 그는 세계가 다극화로 나아가도록 적극 추진하고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추진하며 세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명 교류와 상호 참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중국은 계속 다자간 외교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유엔과 기타 국제 및 지역성 기구에서 역할을 발휘하고 발전도상국이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다. 그는 시대의 수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안전관을 세울 것을 제기했는데 핵심은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협력이다. 그가 추진하여 설립한 상해협력기구는 처음으로 중국이 참여하여 설립을 추진하고 중국 도시의 이름을 딴 지역성 협력기구로서 그가 창도한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협상, 다양 문명 존중, 공동 발전 도모의 ‘상해정신’은 당대 국제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일으켰다.

강택민은 당의 자체 건설을 고도로 중시하고 전당 동지들에게 새로운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개혁의 정신으로 당건설이 직면한 중대한 리론과 현실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여 당이 시종 선진성과 순결성을 유지하고 창조력, 응집력, 전투력으로 충만되도록 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먼저 당을 다스리고 당무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제기했으며 령도 수준과 집권 수준을 제고하고 부패거절 변질방지와 위험방어 능력 증강이라는 두가지 력사적인 과제를 완전하게 제기하고 전당이 진지하게 연구하고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와 같은 다민족 발전도상 대국이 전체 인민의 의지와 힘을 결집시켜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서둘러 추진하려면 반드시 당의 령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강화하고 개선하며 당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전면적으로 추진하여 우리 당이 시종 중국 로동계급의 선봉대인 동시에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선봉대이며 시종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지도핵심이고 시종 중국의 선진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하고 중국의 선진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며 중국의 가장 광범한 인민들의 근본 리익을 대표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는 당의 사상리론 건설을 더욱 두드러진 위치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의 집권 능력 건설을 강화하여 당의 지도 수준과 집권 수준을 높여야 한다. 민주집중제를 견지하고 건전히 하여 당의 활력과 단결과 통일을 증강해야 한다. 자질이 높은 지도간부 대오를 건설하여 생기발랄하고 분발하는 지도층을 형성해야 하며 지도간부는 학습, 정치, 정기를 중시해야 한다. 기층 당건설 사업을 잘하여 당의 계급토대를 증강하고 당의 대중토대를 확대해야 한다. 당의 작풍 건설을 강화하고 개진하여 부패척결투쟁을 깊이 있게 전개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당의 작풍 건설을 추진하는 데서의 핵심은 당과 인민대중의 혈연적 련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 당의 가장 큰 정치적 우세는 대중과 밀접히 련계하는 것이고 당이 집정한 후의 가장 큰 위험은 대중을 리탈하는 것이다. 부패를 단호히 척결하고 방지하는 것은 전당의 중대한 정치적 과업의 하나로 지엽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을 함께 다스리고 종합적으로 다스리는 방침을 견지하며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강도를 점차 높이고 교육을 강화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법제를 건전히 하며 감독을 강화하고 체제를 혁신하여 부패척결을 제반 중요한 정책 조치에 포함시켜 근원으로부터 부패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는 전당 동지들이 시종 공산주의자의 발랄한 생기와 드높은 예기, 호연지기를 유지하고 영원히 인민대중과 한마음이 되기만 한다면 우리 당의 집권 기초는 반석같이 튼튼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택민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전반 사업의 출발점과 귀착점은 가장 광범한 인민의 근본 리익을 끊임없이 실현하고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당의 방침정책을 제정하고 관철하는 기본착안점은 가장 광범한 인민의 근본 리익을 대표하고 부동한 방면의 대중의 리익을 정확히 반영하고 고루 돌보며 전체 인민이 공동 부유의 방향으로 온당하게 전진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는 반드시 시종 당의 군중로선을 견지하고 모든 것은 군중을 위하고 모든 것은 군중에 의거하며 군중 속에서 나와 군중 속으로 들어가며 인민대중의 창조를 존중하고 인민대중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인민대중의 념원을 반영하며 인민대중의 지혜와 힘을 모아 제반 사업을 발전시키고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전반 과정에 로동자, 농민, 지식인과 기타 대중들이 경제와 사회 발전의 성과를 공동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각급 지도간부들에게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취지를 명기하고 강한 충복 의식을 수립하며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가지고 인민을 위한 책임을 엄격히 지키며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 방책을 강구하고 인민을 위해 리로운 일을 많이 하며 시시각각 인민대중의 안위와 복지를 마음에 두고 군중의 질고에 관심을 가지며 군중을 위해 실제적인 일과 좋은 일을 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강택민이 당과 국가의 주요 지도 직무를 맡고 있을 때 우리 나라는 국내외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세계 사회주의에 엄중한 곡절이 나타나는 준엄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는 당의 중앙지도집단을 단결인솔하고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에 긴밀히 의거하여 중국의 주권과 안전에 관계되는 일련의 국제 돌발 사건에 침착하게 대처하였으며 정치, 경제 분야와 자연계에서 나타난 어려움과 위험을 이겨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의 충격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였고 1998년의 홍수와의 투쟁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배가 시종 정확한 방향을 따라 파도를 헤가르며 전진하도록 담보했다.

2004년 9월, 당중앙 16기 4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이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직무를 사임하는 데 동의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 3월 10기 전국인대 3차 회의 제2차 전체회의에서는 강택민의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무 사임 요구를 접수할 데 관한 결정을 채택했다. 지도 직위에서 물러난 후 강택민은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견결히 옹호, 지지하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위업을 관심하였으며 당풍렴정건설과 부패척결투쟁을 확고히 지지했다.

강택민은 직접 《강택민문집》 제1권, 제2권, 제3권의 편집과 심사를 주관했다. 《강택민문집》에는 1980년대말부터 21세기초까지의 강택민의 대표적이고 독창적인 중요한 저작들이 주로 수록되여있어 우리가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을 더욱 깊이 있게 학습 터득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업과 당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계속 추진시키는 데 중요한 교재를 제공했다.

강택민이 창립한 ‘세가지 대표’ 중요 사상은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의 계승과 발전으로서 당대 세계와 중국의 발전 변화에 대한 당과 국가 사업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했다. 이는 당건설을 강화하고 개진하며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자기완성과 발전을 추진하는 강대한 리론적 무기이며 중국공산당의 집단적 지혜의 결정체이고 당이 반드시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할 지도사상이며 당과 인민의 귀중한 정신적 재부이다.

오늘날 우리는 력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더욱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신심과 능력이 있다. 새로운 로정에서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은 습근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강력한 령도하에 더욱 굳게 뭉쳐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두가지 확립’의 결정적인 의의를 깊이 터득하고 ‘네가지 의식’을 강화하며 ‘네가지 자신감’을 확고히 하고 ‘두가지 수호’를 참답게 실천하며 자신자강하고 수정혁신하며 분발하여 용감히 앞으로 전진하면서 한마음한뜻으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한다.

/출처 신화사, 편역 최승호 유경봉 리철수 정현관 김청수 김가혜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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